기타 | 산별노조 전환이 아니라 ‘민주노총 강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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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철순 작성일06-11-30 00:00 조회1,599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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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강화061120.hwp (57.5K) 31회 다운로드 DATE : 2015-06-29 18: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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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노조 전환이 아니라 ‘민주노총 강화’다!
- ‘조직화 전략’과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로
김철순
1. 언제까지 자본에게 비웃음을 살 것인가?
보수언론들이 민주노조운동을 헐뜯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그저 헐뜯는 정도를 넘어서 경멸과 조롱마저 멋대로 퍼부어대는 것 같아 문득 옷깃을 여미게 한다. 사실은 “이 글을 써야지...” 미적대다가 서두르게 된 것도 어느 신문 사설에 정신이 번쩍 들었기 때문이다(중앙일보 11월 17일치). 험담인즉슨 이렇다. “민주노총이 툭하면 ‘총파업이닷!’ 하고 양치기 소년처럼 외쳐댔지만 이제는 조합원들이 외면하지 않니? 너희가 강성으로 나가니까 외면하는 거야! (민주노총, 한국노총 통틀어) 지난해 노조 가입자가 공무원 빼고 150만 6천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10.3%에 불과한데 그러면서 ‘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입네’ 행세하기가 좀 민망하지 않니?”
그래, 아닌 게 아니라 민망하고 남우세스럽다. 그들이 깐죽거리기 전에도 민망했는데 듣고 나니, 이유야 어찌 되었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투쟁동력/정파 갈등/도덕성... 갖은 혁신 논의가 다 일었었지만 정작 성찰을 거듭하고 진작에 실천에 옮겼어야 할 과제는 바로 ‘낮은 조직률’의 문제가 아니던가. 노동자계급이 자본에 맞서 제 목소리를 내려면 우선 노동자가 ‘계급’으로 엮여야(=계급 형성), 그 다음에 차(車)를 띄우든 마(馬)를 내보내든 할 것이 아닌가. 줄어든 병사를 다시 획기적으로 모아낼 방도를 마련하지 않고서는 다른 여타의 궁리가 다 부질없는 일이다. 그래서 새삼스레 되돌아본다.
2. 실정이 어떠한가?
1) 조직률의 하락 추세
노동부 통계로 2004년 현재, 한국의 임금노동자는 모두 천오백만 명이다(1,489만 4천 명). 그 중에 한국노총 조합원이 78만 명, 민주노총 소속이 66만 8천 명이고, 나머지 8만 8천 명이 ‘노총 미가입’ 노조원들이다. 합쳐서 153만 7천명으로, 노조 조직률이 ‘열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10.3%).
올해 공무원노조 13만 명이 민주노총에 들어온 덕분에 ‘민주노총 조합원 수가 한국노총을 앞질렀다’고 사람들이 기뻐했으나 ‘도토리 키재기’를 할 시절은 아닌 듯하다. 노동조합들의 ‘공동 운명’을 숙고해야 하므로.
가장 커다란 사실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시기에 노동조합이 대거 만들어진 뒤로, 조직률이 점점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1980년에 노동자 650만 명 중에 조합원이 95만 명(조직률 14.7%)이던 것이, 1989년 천백만 명 중에 193만 명(조직률 18.6%)으로 급상승하여 정점을 이루었다. 아마 자본/정권의 반격이 시작된 탓이겠지만 불과 3년 뒤인 1992년에는 조합원 173만 명(조직률 14.6%)으로, 20만 명이 줄어들었다. 조직률은 점점 낮아져서 1998년에는 1,230만 명 중에 148만 명(조직률 11.4%)으로, 또 25만 명이 줄었다. 그 뒤로 조합원 수가 몇 만 명 늘기는 했으나 노동자의 숫자가 3백만 명 가까이 더 늘었으므로 조직률이 근래 몇 년을 10%대에서 맴돌고 있다.
2) 조직 구성의 특징과 추이
* 노동조합원의 대부분은 대기업노조(천 명 이상 사업장)에 속해 있다(62%). 그런데 전체 노동자 중에 그 대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5.3%에 불과하다.
* 전체 조합원 중에 86%가 정규직이고 14%가 비정규직이다(04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정규직 630만 명 중에 노조 가입률은 23%이고, 비정규직 784만 명(전체 노동자의 55%) 중에 노조 가입률은 2.4%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가운데 새로 조직된 신입 조합원의 대부분은 ‘풀타임 상용직’이다.
* 비정규직 10명 중에 6명이 제조업과 건설업,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업에 몰려 있고, 10명 중에 8명이 단순노무직과 서비스, 판매직과 기능직, 사무직에 몰려 있다.
비정규직이 각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광공업 40%, 민간서비스업 73%, 공공서비스업 40%인데, 최근의 비정규직 증가는 공공부문이 주도했다.
* 조직률 ‘감소’ 추세는 1990년대에 계속되다가 2000년대에 들어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정규직 채용 중단’ 이후, 정규직 조합원의 평균 연령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3. 왜 조직률이 하락했는가?
1987 노동자 대투쟁에 맞닥뜨린 한국의 자본과 정권은 1990년대 초반부터 새롭게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을 들고 나왔다. 민주노조운동이 이에 제대로 맞섰는지, 시간이 흘렀으므로 이제는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자본과 정권의 전략이 고스란히 통했다.
그들은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탄압 일변도’에서 ‘채찍과 당근’의 양면 전략으로 옮아갔다. 전투적이고 변혁지향적인 세력은 짓누르고, 합법개량주의 세력은 끌어들여 ‘분할 지배’하라! 대차게 들고 일어난 대기업 정규직의 ‘민주노조’는 깨기가 어려우므로 달래서 끌어들이고, 그 나머지 중소·영세·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차별하여 초과 착취하라! 그들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해 주고 임금인상 요구도 받아주는 대신 더 이상의 정규직 채용을 중단하고 정년퇴직 등으로 자연스레 줄어든 인원은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거나 외주하청을 주었다(노동자계급의 양극화와 차별화).
두 번째 작전은 계급적 연대를 이뤄온 조직형태의 파괴였다. 그리하여 지역조직을 토대로 한 전노협이 무너지고 산업·업종별 체계를 토대로 한 민주노총이 생겨났다.
기업별 노조의 산업·업종별 체계 속에서 노조 활동은 기업별 임·단협의 테두리에 갇혀 기업별 실리주의에 점점 물들어갔다. 김영삼 정권은 전노협의 전투적 변혁지향적 노선과 계급적 연대조직의 성격을 허물기 위해, 민주노총 합법화의 전제 조건으로 ‘지역노조협의회의 해체’를 강요했고 이는 관철되었다. 1995년 민주노총의 건설 이후 노조활동이 산업·업종별 체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자 지역연대활동과 지역연대투쟁은 위축되었고 점차 사라졌다.
결정적인 분기점은 IMF 사태였다. 민주노총은 초국적 자본이 강요한 ‘정리해고제’에 합의해줌으로써 계급의 대의를 저버렸다. 그 뒤로 민주노조운동은 변변히 계급연대 전선을 세워내지 못하여 각개격파당했는데 한국통신, 현대자동차 등의 구조조정(정리해고) 저지투쟁을 떠올려 보라.
이 패배가 기업별 실리주의 경향을 더 재촉했다. 언제부터인가, 민주노총의 구호 중에 ‘천만 노동자 총단결로...’가 ‘70만 노동자 총단결로..’로 바뀌었다. 천오백만 노동자를 묶어 세우겠노라는 기개가 시나브로 사라진 탓이다.
그런데 불과 1년 전 김영삼 정권이 정리해고법안을 ‘날치기 통과’한 것을 총파업으로 막아냈음을 떠올릴 때, 이 패배는 불가피한 일이 아니라 주체적 대응의 실패일 뿐이다. 그 뒤로 민주노총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운동을 넘어서지 못했다. 산별 노조 건설은 십년 동안 구호에만 머물렀다. 민주노총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임금 인상 등 제 앞의 현안을 넘어서는 계급적 요구투쟁이나 미조직 노동자들의 조직화 사업 등을 사실상 방기했다. 그들의 초과착취와 무권리 상태를 외면했고 심지어 자신의 고용 안정과 고임금의 전제조건으로 간주하기조차 했다. 기업별 실리주의는 제조업에서는 전투적 경제주의로, 사무전문직에서는 노사 협조주의로 표현되었다.
‘조직률의 지속적인 하락’은 이렇게 노조운동이 무너지고 그래서 ‘고용형태’가 크게 바뀌었기 때문에 일어났다. 물론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산업구조가 고도화된 흐름’ 등등 또 다른 원인들도 짚을 수 있겠지만 1988년까지 줄곧 늘어났던 ‘광공업 취업자’는 1989년 이후로 계속적인 하락 추세에 있다. 계속 팽창하는 서비스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에 성공하지 못하는 한, 조직률을 다시 높이기가 어렵다.
그것들이 ‘규정적 원인’은 아니다.
4.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위기 극복 전략 : 산별노조 전환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뒤로 2004년 무렵 자본은 다시 ‘축적의 위기’를 맞았다. 1997년의 신자유주의 공세가 초국적 자본의 외부 충격에 의해 주도되었다면 지금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는 한국계 초국적자본(재벌)과 노무현 정권이 주도하고 있다. 이 공세를 배경으로 하여 ‘노동운동 위기론’이 한동안 일어났는데 대부분의 논의가 주된 원인을 기업별 노조체제에서 찾고, 그 대책을 ‘산별노조 전환(또는 건설)’에서 구했다.
민주노총이 최근 펴낸 산별연구팀 연구보고서 ‘결론을 대신하여: 산별노조 시대 민주노총의 위상과 역할’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는 “산별노조 전환이 현 정세에서 사활적 과제가 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른 대안이 없어 실효도 적은 총파업투쟁만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것도 우선은 ‘지도부의 무능’을 꼬집어야 하지만 그 바탕에는 ‘기업별노조 체제 하의 총연맹의 한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위원장 직선’ 논란도, 주된 위기가 대표방식의 위기가 아니라 조직 체계의 위기라서 그것이 돌파구가 되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현 정세에서 ‘민주노총 강화’가 옳은 방향이고, ‘산별 노조 전환’이 저절로 민주노총 강화로 이어지지도 않지만 민주노총 강화의 ‘최소 필요조건’은 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 대목의 논증이 매우 허술하다. 그 대목을 먼저 인용한다. “산별노조 전환이 자동적으로 민주노총 강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기업별 노조체제 하에서 민주노총은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산별노조 전환이 민주노총을 강화해주지 않는다면 산별노조 전환과 함께든 아니든 그 방책을 내놓아야 한다. 산별노조 전환이 민주노총 강화에 은연중 도움된다손 치더라도, 그것으로 ‘민주노총 강화의 방책’이 되지는 못한다. 그들도 말하듯이 지금의 정세는 대단히 엄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고서는 ‘민주노총 강화의 분명한 방책’을 내놓는 대신, 느닷없이 ‘기업별체제에서 산별체제로 옮아가는 것’은 세계 초유의 일이라는 엉뚱한 찬양론으로 흘러버렸다. 앞엣 문장을 쉬운 말로 옮겨보면 그 ‘비논리’가 생생히 드러난다. “산별로 간다고 민주노총이 저절로 강화되지는 않지만 어찌 되었든 기업별 체제는 문제가 많지 않으냐? 그러니까 산별로 가면 약간의 도움은 될 것이다.” 물론 기업별 체제는 문제가 많지만, 그 해결방식이 꼭 ‘산별 전환’이어야 한다는 법이 없는데도 ‘산별 전환 외에 아무 대안 경로가 없다’고 지레 못박아 버린 셈이다.
한국노총도 산별노조 건설에 올인하고 있다. 올 3월 3일 ‘한국노총 창립 60주년 기념토론회’ 자료를 간추려 옮기겠다.
이들은 위기의 원인을 여러 가지로 짚었지만 ‘복수 노조의 도래’를 특히 강조한다. 내적 원인으로 노조의 대표성/연대성 등의 위기를 거론하지만 결국 ‘기업별 노조 탓’으로 귀결된다. 해결 방향은 산별노조로 전환해서 사회개혁투쟁에 나서고, 사회적 대화를 이뤄내자는 것이다. 그들의 속내는 다음 글에서 잘 드러난다. “복수노조 시대와 전임자 임금문제를 돌파하기 위해 산별노조 건설을...” 그들은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사업도 ‘민주노총과의 경쟁’ 맥락에서 생각한다. “...이는 조직적 경쟁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그들이 누구인가? 작년 말 비정규직 관련법을 정부와 타협하고, 최근에는 노사관계 로드맵을 경총/정부와 합의하여 ‘어용 노총’의 본질을 다시 널리 드러내지 않았던가.
두 노총의 산별노조 전환 논의는 처음에는 ‘위기 진단’에서 시작했다가 논의 대상이 점점 ‘노사관계 로드맵에 대한 대응’, 더 직접적으로는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대한 대응책으로 옮아갔다. 계급적 대중조직으로서 산별노조를 어떻게 건설할 거냐는 실천적 문제의식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형태’를 어떻게 바꿀 것이냐는 문제로 관심이 좁아들었다.
한국노총이 막연히 ‘전환하자’고 되뇌는 반면 민주노총은 (기업지부, 지역지부 등) 전환 뒤의 조직체계와 운영방식까지 자세히 구상하고 산별교섭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노총이든 낮은 조직률에 따른 ‘대표성의 위기’를 말하면서도 정작 산별 건설의 중핵이 되어야 할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에 대해 별다른 고민이 없다. 그저 산별노조로 가기만 하면 문제가 풀린다는 식이다. 이것은 조직형식주의요, ‘산별노조 물신주의’다. ‘참주 선동’이다!
두려운 것은 ‘묻지 마, 산별’이 사태를 더 그르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계급적 대중조직을 어찌 엮어낼지, 계급의식을 어떻게 북돋울지 변변한 방책도 없는 가운데 그저 ‘간판 갈기’에 몰두해서는 박정희 시절의 어용 한국노총처럼 ‘기업별 노조의 산업별 중앙집중 통제체제’로서 또 다른 괴물이 자라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산별노조 전환과 관련하여 민주노총이 “노조 조직의 포괄성, 집중성, 통제력”을 강조하고 한국노총이 “일사불란한 단일집행체계”를 다짐하는 대목이 못내 개운치 않다.
5. 대안은 무엇인가?
첫째, 조직화 과업에 대해 ‘전략적 사고’를 들여와야 한다. 그동안 노조운동에는 ‘조직화 전략’이 부재하여 그저 열심히 노력하자는 식이었다. 어디든, 심지어 영세사업장 노동자를 엮겠노라는 일반노조도 사업이 주먹구구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니 일손과 돈을 들인 것에 견주어 성과가 보잘 것 없었는데, 이 결과에서 기왕의 조직화 실천이 갖는 문제점을 성찰해내지 못하고 ‘여건이 워낙 나빠서...’ 하고 자신을 감싸기 일쑤였다.
우선 조직 대상의 상태를 과학적으로 조사·연구해야 한다. 그리하여 조직화 대상을 ‘어느 지역, 어느 업종(또는 부문)’으로 선택하고 거기 조직 활동가를 집중 투입한다(선택과 집중). 서둘러 열매를 따려 하지 말고, 수년이나 십년 쯤 꾸준히(!) 정성을 기울인다. ‘미국 국제서비스노조(SEIU)’가 그렇게 했다. 그리하여 뿔뿔이 흩어져 일하는 청소원, 간호사와 간병인, 경비 등 비정규직 노동자 90만 명을 엮어내는 데 성공했다. 민간 서비스 부문에서 신자유주의 고용형태의 악조건을 무릅쓰고! 산별노조들을 합쳐서가 아니라 망망대해 같은 곳에서 미조직 노동자들을 엮어 올림으로 하여!
기업별 노조들을 그러모으는 것이 ‘세계적으로 초유의 일’이라는 허풍은 그만 두어야 한다. 산별노조가 계급적 대중조직으로 서려면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평범한 상식을 다시 떠올릴 일이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지 않은가. 신자유주의적 노동 유연화는 노동자계급을 해체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 맞설 길은 노동자계급을 형성해내는 일이다. 노동자 10명 중 9명을 내버려두고 무슨 ‘산별’을 꿈꾸는가.
물론 ‘조직화 전략’만으로 충분치 않다. 무엇을 위한 조직화냐, 그 내용이 마련되어야만 힘이 붙는다. 미국의 ‘조직화 모델’에서도 드러났듯이 ‘눈먼 조직화’는 조직 기술주의로 흐르고 실리적 노조주의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두 번째 대안으로, ‘사회운동적 노조주의’가 제창되어야 한다. 노동력 상품 판매자의 이익을 쫓는 집단이기주의 운동이 아니라 보편적 인간해방을 지향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추구하는 계급적 운동으로 나아가자는 말이다.
이 방향으로 노조운동이 나가지 못하면, 다시 말해 눈앞의 실리만 쫓는다면 조직화 전략에 들어가는 일손과 돈을 마련하기 어렵다. 민주노총이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기금’을 마련하려고 했으나 지지부진한 탓에 일꾼을 배치하지 못하는 실정을 떠올려 보라.
활동가들이 사명감 없이 이 지리한 과업에 몰두하기 어렵다. 인간해방, 노동해방의 대의를 세워야만 과업을 감당해낸다. 자신이나 남에게나 감동을 불러올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야만 첫 발을 내디딜 수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서비스노조의 ‘조직화 모델’ 실천 사례에서도 사회운동적 노조주의와 결합된 조직화 전략만이 성공한다고 평가되었다. “청소부에게 정의(正義)를!”이라는 그들의 구호를 기억하자.
특히 우리는 노동자계급이 남달리 날카롭게 찢기고 갈라쳐져서 ‘대의 세우기’가 더 절실하다. 응달진 곳의 숱한 노동자들이 서럽게 겪는 인간 차별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계급적 단결이 아득하기만 하다.
심상치 않은 대목을 잠깐 짚는다. 최근 “조직화 모델의 한계를 보완하려면 사회협약(social pact) 정치를 일으켜서 알맞은 제도 장치들을 마련해야 한다(김유선)”거나 “제도화 모델을 함께 추구하자(임영일)”는 제안이 나왔다. 낱말만 다소 다를 뿐, 이 둘은 같은 이야기다. 노사정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든 계급타협적 합의를 통해서든 법과 제도를 마련하자는 말이다. 그런데 아시는가? 이 두 사람의 주장이 한국노총의 ‘사회적 대화체제 구축’ 방침과도 곧장 통한다는 사실을!
터무니없다. 합의나 타협이나 이쪽이 힘이 있어야 가능한데 우리 노동운동의 실력이 지금 그러한가? 신자유주의는 ‘노동을 깨자’는 주의이거늘, 그들에게 그럴 뜻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잊었는가?
왜 이렇듯 공허한 주장이 일어나는지, 사정을 간파하기는 어렵지 않다. ‘산별교섭의 성사’ 문제 때문이다. 산별노조로 전환하여 산별 교섭을 성사하고 산별 협약의 적용 범위를 넓히려면 ‘법과 제도의 강제’가 필수다. 그런데 이들은 산별노조 건설을 ‘투쟁하여 얻는 일’로 여기지 않고, 그저 ‘형태 바꾸기’만 집착하는 까닭에 끊임없이 ‘자본과의 타협’을 들먹이는 것이다. “단체교섭과 투쟁 때문에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지 않느냐. 산별 제도가 들어오면 너희도 이익”이라면서! 그런데 주판알 튕기기야 자본가들이 한 수 위 아니더냐. 눈도 깜짝 않는 자본에게 추레한 꼴만 연출한다. 산별노조로 가면 마치 사회적 합의가 가능할 것처럼 순진한 노동자들을 속이면서!
조직화 전략과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는 ‘운동의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주장이다. 이 패러다임을 구체화할 당면 방침은 무엇인가? 당장의 ‘고리’는 민주노총 강화다. 위기를 돌파할 길도 ‘산별노조로 형태 바꾸기’가 아니라 민주노총 강화다.
민주노총의 문건 ‘산별노조 건설전략’에 서술된 대목을 먼저 옮긴다. “민주노총은 내셔날 센터로서 고도의 정치적, 정책적 역할에 집중하고 각 산별노조는 노동조합의 교섭과 투쟁을 수행하는 역할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 산별노조건설 전략>에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다. (1) 민주노총의 위상 : 노동조합의 내셔날 센터로서 민주노총의 위상은 총연합조직으로 산하 산별노조들의 연합조직, 최고의 정상조직이며, 국가와 정당, 총자본을 대상으로 고도의 정치적, 정책적 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조직 내부적으로는 산별노조 수준에서 하기 힘든 총노동적 과제들을 수행한다. 그래서 총자본에 대한 전국적․전계급적 전선구축, 총노동 차원의 정책연구, 노동자 정치교육 등이 그것이다. 이밖에 산하 산별노조간 조직 관할권의 조정, 조직 분규의 조정 등을 수행한다. (2) 산별노조의 위상 : 산별노조의 위상은 단체교섭의 주체로서 노동조합의 모든 일상활동, 정책활동, 교육활동, 조직활동을 중앙을 중심으로 계획하고 집행한다. 각 산별노조는 사용자 단체와 임단협 교섭의 당사자이며,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강력한 파업투쟁을 조직화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그밖에 각 산별노조에 걸맞는 다양한 정치적, (산업)정책적 활동들을 수행한다.
양자 간의 이러한 역할 분담은 유럽을 모델로 설정된 것인데,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케인즈주의 계급타협의 시대에나 들어맞은 모델이다. 그 직수입은 시대 착오에 장소 착오의 조직 형식주의다.
형식(산별노조) 아닌 내용(계급적 대중조직)을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 눈앞의 자본과 정권은 아예 노동자계급을 해체하겠다는 복안까지 들이미는 실정이다(비정규법, 로드맵, 연금개혁, 산재보험법). 그런데 민주노총 80만 명은 유럽의 한 개 산별노조의 규모에도 미치지 못한다. 두 계급의 역관계가 너무나 비대칭적이다. 그런데 산별노조와 민주노총이 따로따로 일을 맡으라는 모델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민주노총 내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가 14만 명이다. 또 노동자계급 내부의 양극화·차별화가 심해져서 기존의 중소사업장 중심의 금속노조에서조차 산업별 임·단협이 어려웠고, 확대된 금속노조에서는 내부 편차가 더욱 커지기 때문에 당분간 산업별 교섭이 불가능할 것으로 안다. 그러므로 산별노조 중심의 산별노조/민주노총 역할 분담 모델은 재고해야 한다.
지금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는 자본축적의 구조적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오래 이어질 것이다. 이들의 간단치 않은 총공세에는 노동자계급이 총단결하여 맞설 수밖에 없다. 산업별 대응은 산업별 각개격파로 귀결된다는 것, 굳이 설명해야 하겠는가? 자본이 비웃는 80만 소꿉동네를 그것마저도 여러 개의 산별노조로 잘게 나누어 ‘각개 약진’에 맡길 셈인가?
* 민주노총을 투쟁과 단결의 구심으로 세워 내려면 임원·대의원 직선제를 들여와 직접민주주의를 북돋울 일이다.
* 일손과 돈을 민주노총으로 모아야 한다.
* 지역본부의 위상을 높여 조직화 전략과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를 실천할 기초조직으로 구실하게 한다. 지금 이곳에서는 산업별 교섭과 투쟁보다 지역과 전국의 계급적 활동과 투쟁이 더 막중하다.
* 지금 이곳에서 민주노총은 ‘단일노조(One Big Union)'로 자라나야 한다!!
(2006.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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