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정세(군사와 전쟁) | 이라크 철군논의와 평화적인 길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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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엄한진 작성일-1-11-30 00:00 조회1,443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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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쟁전망061213.hwp (33.0K) 5회 다운로드 DATE : 2018-07-17 12: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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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철군논의와 평화적인 길의 의미
엄 한 진(한림대 사회학과)
1. 대안을 요구하는 이라크 문제
지난 12월 6일 공개된 <베이커 보고서>를 계기로 본격화된 철군 논의 등 앞으로 이라크정세에 대한 전망은 전지구적인 대테러전쟁, 동유럽․중앙아시아․중동 등 서유럽 및 러시아의 접경 지역에서 격화되고 있는 미국과 이들 지역간의 헤게모니 투쟁, 그리고 중동문제 일반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대테러 전선의 하나로서 이라크의 상황은 조금도 호전되지 않고 내전 상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제는 국제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아프가니스탄을 닮아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다시 세력을 결집하고 있는 것처럼 이라크에서도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점령군에 대한 저항이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라크인들의 고통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2006년 10월에는 3,709명으로 한 달 희생자수의 최고기록을 경신하였고 걸프전 이후 서방의 경제봉쇄는 이라크 민중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다.
한편 최근 중동 분쟁의 새로운 양상의 하나는 팔레스타인문제가 주변국으로 확산되고 이렇게 확대된 팔레스타인문제가 이라크문제와 연계됨으로써 분쟁이 중동 전체로 번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9․11테러를 빌미로 한 미국의 이라크 점령이 계기가 되어 이제 팔레스타인문제와 이라크, 이란 등이 연관된 걸프지역 갈등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른바 대테러 전쟁의 틀에서 연계되는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제2차 이라크 전쟁에 뒤이은 지난 7, 8월의 제2차 레바논 전쟁은 레바논 전쟁(1975-1990)과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 제1차 인티파다(1987), 걸프전(1991)으로 치달은 지난 중동전쟁의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유사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과거 걸프전이 평화협상의 시대를 열었듯이 최근 극도로 불안정해진 이라크와 중동의 상황을 타개하는 대안으로 철군과 외교적 해결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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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상되는 <평화의 길>의 중동적 의미
한편 <베이커 보고서>에 대해 부시는 아직 두드러진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지만 거기 담긴 요구를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을 터이고 그 대안을 찾는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부시가 보고서에서 제시된 권고안 중 어떤 것을 어떤 식으로 수용할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백악관에 따르면 부시는 가능하면 크리스마스 이전에 이라크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 하니 아직은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부시는 대부분의 제안에 대해 머뭇거린다. 즉각 철군은 이 지역 전체를 불안정과 전쟁으로 몰아갈 것이라며 반대하고, 이란과의 협력관계는 이 나라가 핵을 포기할 경우에, 시리아와의 협력관계는 오랫동안 후견인 역할을 해 온 이웃나라 레바논에 대한 개입을 중지할 경우에 가능하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팔레스타인 문제 등 중동문제에 대한 외교적 노력에 대한 제안은 수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것은 이 협상의 길이 한편으로는 현 상황에서 불가피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라크 침공 이후 격화된 중동 전반의 갈등을 은폐하는 효과적인 방편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중동. 걸프전 이후 아버지 부시는 이스라엘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평화협상의 길을 택했다. 우리는 또다시 10여 년 전처럼 또 다른 마드리드 협상, 오슬로협정 등 수많은 평화회담과 협정을 보게 될지 모른다. 그런데 90년대의 경험을 보면 이런 식의 평화의 길은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길이면서 그러나 더 격렬한 모순의 폭발을 준비하는 일시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당초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게 설정된 이 평화의 길 뒤에는 2차 인티파다 이후의 내전상황과 2차 이라크전쟁, 2차 레바논전쟁 등 더욱 비합리적이고 잔혹해진 폭력적인 양상이 그 뒤를 이었다. 1999년 2차 인티파다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고통만 더 안겨준 지리한 평화협상에 대한 환멸의 표현이었고 2006년 1월 하마스의 총선승리는 이스라엘과의 대화를 통한 평화의 길에 대한 불신의 표현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워싱턴포스트지가 내부 소식통을 통해 얻어낸 부시행정부의 대이라크 정책 변화 시나리오 세 가지 중 하나는 바로 바그다드의 치안확보와 이라크군 창설을 본격화하기 위해 필요한 파병군인의 수 증대이다. 따라서 철군이나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외교적 길에 대한 성급한 논의는 금물이다. 그러나 설사 부시행정부가 외교적 방안을 채택한다 하더라도 이번 2차 이라크전쟁과 2차 레바논 전쟁, 그리고 지난 7년간 쉽없이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붙인 이스라엘의 공세 이후 휴지기가 지나면 새로운 대안과 새로운 세력의 등장이 없는 한 또 다시 폭력의 회오리가 몰아칠 것이다. 그것은 분열, 불안정과 폭력이 적어도 중동지역에서는 미국과 유럽의 전통적인 지배전략이었고 앞으로도 별 이변이 없는 한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1948년 이스라엘 국가 창설 이후 중동지역이 반 세기 이상 겪어 온 것은 바로 이 진전없는 반복이었다.
4. 대안 없는 중동 문제
따라서 문제는 중동문제에 대한 대안, 그리고 이 대안을 담지할 주체의 부재이다. 그리고 이 대안 부재의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고 전망을 제시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수십만의 무고한 이라크인들을 희생시킨 미국과 동맹국들의 범죄, 국제사회가 ‘나 몰라라’ 하는 가운데 저질러지는 팔레스타인의 참극, 그리고 황당한 레바논 전쟁 등 유례없이 극단적인 최근의 중동 현실은 바로 이 대안과 전망 부재의 적나라한 표현이다. 중동 현대사는 최근 논의되고 있는 철군과 평화적인 길이 중동문제 해결의 첫 걸음에 불과함을 말해준다. (2006.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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