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에 연재되고 있는 김승호의 노동세상(2월 10일자) 글입니다.

문중원 열사

김승호(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대표)

필자는 지금 과천 시에 산다. 그곳에 서울경마장(렛츠런파크 서울)이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전태일노동대학 사무실은 용산구 남영동에 소재한다. 그 용산구에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2015년 화상경마장이 개장됐다가 2017년 주민들의 지속적인 반대투쟁으로 폐쇄됐다. 이렇게 경마장들이 인근에 있었지만 무관심하던 필자를 경마장에 관심 갖도록 이끈 것은 경마장 노동자들의 연이는 죽음이다.

지난 토요일 “문중원 열사 진상규명 및 한국마사회 적폐청산을 위한 전국노동자대회”가 민주노총 주최로 과천 서울경마장 앞에서 열렸다. 노동자들은 경마장 구내로 들어가 한국마사회 본관 앞에서 한국마사회를 규탄하는 집회를 가졌다. 그곳은 작년 12월 21일 문중원 열사의 부인 오은주 씨가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함께 마사회 회장을 면담하러 갔다가 가로막는 경찰에 의해 머리채가 잡히고 발로 차이는 폭행을 당한 곳이다. 이어진 경마장 입구 집회에서 노동자들은 차가운 날씨 속에 뜨거운 분노를 표출했다. 문중원 열사의 장인인 오준식 님의 피 끓는 분노에 찬 발언은 노동자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분은 열사의 장모님과 함께 열사의 시신을 냉동차에 얼음을 채워 싣고 상경한 분이다. “이놈들 다 죽이고 나도 죽고 싶은 심정이다.” 이 말은 필자가 1월 28일 충북교육청 농성투쟁을 접고 상경한 다음 광화문 농성천막을 방문했을 때 열사의 아버지 문군옥 님이 토로한 말이기도 했다.

이날 집회는 문중원 열사 투쟁과 관련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어찌하면 문중원 열사 투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인가, 한국마사회를 어찌할 것이며, 문재인 정부를 어찌할 것인가 등등.

문중원 열사의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및 재발방지 대책 요구 투쟁은 문재인 정권에게 청원하는 투쟁으로 성공할 수 있는가? 지난 10여년 동안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요구 투쟁을 비롯한 많은 개별 투쟁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투쟁들은 노동계급 대중의 분노를 조직해서 만드는 전투적 대중투쟁이기보다 여론 주도층인 부르주아계급에게, 공지영이나 조국 등이 불러내는 착한 부르주아계급 분파에게 관심과 지지를 호소하는 측면이 강했다. 그러다가 이들을 대표하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는 이 호소에 정부에 청원하는 것이 결합됐다. 그러나 촛불혁명으로 자칭 진보정권이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당면 요구는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고공투쟁의 상징격인 파인텍 굴뚝투쟁은 이런 한계를 잘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런 식의 호소하고 청원하는 투쟁은 개별 투쟁을 통해 전체 계급역량을 결집하고 확장하지도 못했다. 이런 저간의 경험을 성찰해 볼 때 시민사회라는 이름의 부르주아 계급에게 호소하는 방식의 투쟁을 통해서, 또는 문재인 부르주아 정권에 청원하는 방식의 투쟁을 통해서는 문중원 열사의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및 재발방지 대책 수립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국마사회 적폐를 청산하지 않고 ‘죽음을 경주’를 멈출 수 있을까? 시민사회와 문재인 정부가 한국마사회의 적폐 청산에 기꺼이 동의할 것인가? 따라서 어렵더라도 부르주아계급에게 기대지 말고 노동자 대중의 분노와 투쟁 의지를 조직하고 이 동력으로 문재인 정부와 부르주아 국가를 상대로 대중적·전투적으로 투쟁해야만 소기의 성과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마사회의 적폐는 어떻게 해야 청산될 수 있는가? 마사회에 둥지 틀고 있는 적폐세력을 자유주의 부르주아 세력으로 교체하면 해결될 수 있는가? 그런 식으로는 적폐를 청산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국정원의 경우를 보자. 최근 국정원이 민주노총을 탄압하기 위해 제3노총을 만드는 공작을 했다는 사실이 법원에 의해 확인되어 전 국정원 원장 원세훈과 전 국내담당차장, 전 국익정보국장, 그리고 전 노동부장관 및 한국통신노조 위원장 출신 전 노동부장관 정책보좌관 이동걸 등이 줄줄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민병환 전 국정원 국내담당차장, 박원동 전 국익정보국장과 이채필 전 노동부장관은 법정구속됐다. 이런 범죄집단 국정원은 이러저러하게 개혁하는 것으로 적폐를 청산할 수 없으며, 해체함으로써만 적폐를 청산할 수 있다. 이렇듯이 71년 전에 만들어져서 국민을 도박에 중독시키면서 등수와 승부를 조작하여 선량한(?) 국민을 수탈하고 경영자, 마주들 및 그들과 결탁된 패거리들의 배를 불리는 이런 사기도박 조직을 공기업으로 둘 이유는 ‘1’도 없다. 한국마사회는 도박을 사회적으로 정당화하고 사기도박에 공공성이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백해무익한 존재다. 이날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외쳤던 대로 한국마사회는 즉각 해체돼야 한다. 나아가 경마, 경정, 경륜, 카지노 따위를 정부가 운영하는 자체가 폐지돼야 한다. 이것은 필자가 처음 제기하는 요구가 아니다. 2017년 용산 화상경마장 반대운동 당시 이미 제기됐던 것이다.

이 문제는 문재인 정권이 책임져야 한다. 한 공기업에서 몇 년 사이에 일곱 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래 네 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문재인 정권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관성적으로 대통령에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책임지라고 외치는 식으로는 소용이 없을 것이다. 전교조의 경우를 보자. 2년 반 이상 정당한 노동조합을 법외노조로 두고 있는 현실에 대해 문재인 정권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도 그렇다. 문재인 정권이 비정규직 정규직화 약속을 불이행한 것만 문제 삼아 왔지 잘못된 현실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약속을 이행했느냐 아니냐를 떠나서 부당하고 불의한 현실 그 자체에 대해 문재인 정권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멀쩡한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사용하는 자본주의 사회와 부르주아계급의 공동집행위원회인 부르주아 국가와 그 국가의 경영자인 문재인 정권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책임질 일이 계속 쌓이거나 그렇게 책임질 일이 중차대하면 그를 물러나라고 요구해야 한다. 문중원 열사의 죽음 앞에서 우리 노동계급은 그렇게 문재인 정권에게 문중원을 비롯한 다수의 노동자를 타살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게 진짜로 책임을 묻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