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 연구소
정세와 투쟁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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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정세(경제) | ‘뉴딜’은 경제대공황의 해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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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5-04 11:50 조회9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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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에 연재되고 있는 김승호의 노동세상(54일자) 글입니다.

 

뉴딜은 경제대공황의 해법이 아니다.

 

김승호(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대표)

 

문재인 정부가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422일 청와대에서 열린 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로서 이른바 한국판 뉴딜을 추진할 기획단을 신속히 준비해 주기 바란다.”며 뉴딜이라는 말을 꺼냈다. 이어 428일에는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한국판 뉴딜을 국가프로젝트로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판 뉴딜 추진이 의제에 오르자 거기에 어떤 사업이 포함될지를 놓고 각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대한건설협회는 발 빠르게 정부에 동조하면서 자기 요구를 내놓았다. 협회는 424일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침체된 국내 경기 활성화를 위해 한국형 뉴딜 Build-Korea' 정책 추진을 정부에 건의했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런 토건사업보다 한국형 뉴딜의 핵심은 디지털 일자리 창출’”이라고 얘기한다. 예컨대 <이투데이>는 한국판 뉴딜의 방향이 디지털국가로의 전환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장의 일자리 지키기를 넘어 코로나 이후를 대비하는 미래지향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신산업 육성을 위한 4차 산업혁명이야말로 우리가 선점해야 할 미래이자, 한국경제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활로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모바일 등은 기존 산업의 근간과 일자리 패러다임을 바꿀 혁신의 출발이다. 이런저런 정책을 끌어모아 뉴딜로 뭉뚱그려서도 안 된다. 뉴딜의 분명한 개념부터 정리하고 정책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렇게 자본의 입장에 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한국판 뉴딜에 대해 비판하는 의견도 없지 않다. 강원돈 한신대 신학부 교수는 한국판 뉴딜을 현재의 기획재정부 중심으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획재정부는 그 전신이었던 경제기획원 시절에는 1960년대 초부터 군사정부가 추진했던 경제개발계획의 담당부서로서 국가자본주의 프레임에 갇혀 있었고, 1994년 경제기획원 해체 이후에는 지구화를 앞세운 신자유주의 프레임에 포획되어 있었다. 1990년대 말의 IMF 경제신탁 이후에 신자유주의는 기획재정부의 교리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는 한국판 뉴딜은 수출입국과 재벌육성을 중심으로 한 개발연대의 국가자본주의 프레임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고, 금융과 경제의 지구화에 최대한 적응하면서 극단적인 사회적 양극화를 초래한 현행 신자유주의 프레임을 고수하는 방식일 수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CNBC 취재파일은 과거 IMF2008년 금융위기 때 경제·금융 위기는 극복됐지만 양극화는 더 심화됐음을 상기시키면서, 한국판 뉴딜은 그런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낙수효과가 일어나는 사회개혁이 동반돼야 한다는 전문가의 경고를 전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한데, ‘한국판 뉴딜은 새로운 정치상품이 아니다. 노무현 정권 시절 이미 한국형 뉴딜이라는 유사한 정책상품이 출시된 적이 있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 말 경기활성화 대책으로 한국형 뉴딜혹은 뉴딜적 종합투자계획이라는 것을 내놓았는데, 노동 측의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민주노동당은 참여정부의 한국판 뉴딜은 시장개혁은커녕 재벌에 대한 온갖 특혜성 정책으로 채워져 있다.”고 지적했다. 노무현의 한국형 뉴딜에는 루스벨트의 미국형 뉴딜에 포함돼 있던 경제·사회 체제의 개혁이 포함되지 않았던 까닭이다. 이 점은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에도 해당된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경제위기는 대공황 급의 대위기이다. 이런 대위기 상황에 관성적인 경기활성화 대책으로 임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경기활성화 방향에서 접근할 경우 마비된 경제시스템이 다시 작동되게 만들 수 없을 뿐 아니라 노동대중에게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지금은 경기활성화를 고민할 때가 아니고 사회체제를 어떻게 개조할 것인지를 기획해야 할 때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루스벨트 수준의 체제개혁을 추진할 의향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사실, 뉴딜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루스벨트의 수정자본주의 개혁조차도 결국 자본주의 경제를 시스템 파국에서 구하지 못했고 노동자의 장기 대량실업을 해결하지도 못했다. 부르주아 전문가들의 거짓말과 달리 미국 자본주의는 2차 세계대전에 돌입함으로써 비로소 대불황, 대실업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면 또다시 1940년대처럼 대규모 살상과 파괴를 낳는 전쟁을 벌일 것인가.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구하기 위해 세계대전을 벌이는 반인륜적 범죄를 되풀이해서는 결코 아니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떤 선택지가 남아 있는가? 경제에 관한 발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자본축적의 다른 말인 경제성장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인간의 품위에 걸맞게 살 수 있도록 경제적 제 조건을 사회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경제의 최고목표가 돼야 한다. 노동자·민중에게 알량한 사회안전망이나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좋은 직장 보장, 무상 교육·보육과 보건의료, 주거·주택 보장, 노후·실업·장애 시 적정소득 보장 등 기본적인 생활을 전면 보장하는 것이다.

 

이런 전면적 사회보장이 실시되려면 독점재벌과 부동산소유자들, 금융투기꾼들이 불로소득을 전유하는 소유·지배 체제를 타파해야만 한다. 그와 더불어 기업이 창출하는 이윤의 큰 부분을 국가가 조세로 회수해야 한다. 부동산소유와 금융투기에서 큰 이익이 발생하지 않아야 하고, 만약 이익이 나오면 그 또한 큰 부분을 국가로 회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계급이 정권을 장악하고 노동자가 기업경영에 참여·통제해야 한다. 이것은 루스벨트가 시도한 수정자본주의보다 훨씬 대폭적으로 수정된 자본주의라고 하겠다.

 

대공황 상황에서는 뉴딜이 아니라 이런 체제변혁을 해야만 마비된 경제시스템이 다시 돌아가고, 노동자·민중의 허리가 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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