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 연구소
정세와 투쟁방향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의 <정세와 투쟁방향>입니다.

국내정세(경제) | 여기, 사람이 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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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2-14 10:56 조회7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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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에 연재되고 있는 김승호의 노동세상(1214일자) 글입니다.

 

여기, 사람이 죽고 있다

 

김승호(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대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생()과 사(), 태어나고 죽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그다음 문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이 태어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돼 왔다. 처음에는 농촌에 아기 울음소리가 그쳤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런데 이제는 농촌과 도시 할 것 없이 아기 울음소리가 그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못 하고, 결혼해도 자녀를 낳지 않는 문제다. 지난 3분기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역대 최저이고 세계 최저다. 이로 인해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신생아가 사망자보다 적은 인구 자연감소가 일어나고 있다. 머지않아 일본처럼 총인구도 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력을 사서 상품, 즉 가치와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생산한 상품, 즉 가치를 노동자에게 팔아서 잉여가치를 실현하는 것, 다시 말해 이윤을 획득하고 가치를 증식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된다. 자본은 외국인 노동력을 수입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지만 이 또한 한계가 있고 문제도 많다. 그래서 국가는 저출산 극복에 나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청년들의 노오력이 그러하듯이 거의 효과를 내지 못한다. 한국 천민자본주의 파시즘 정치경제 체제가 생산과정·분배과정 및 소비과정 등 전 과정에 걸쳐 노동자를 극심하게 착취·수탈·억압하면서 심한 고통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한국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발전한 모든 나라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공통된다. 하지만 한국처럼 극단적인 나라는 없다. 그러니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폐지하기 이전에 천민자본주의 파시즘 체제를 변혁하는 것이 선차적 과제로 대두된다.

 

다른 한편 헬조선에서는 사람이 많이 죽는 것이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자연사하는 것이 아니라 비자연적인 이유로 죽어 가는 사람이 많아서 문제로 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노동을 하다가 산업재해를 당해 세상을 떠나는 일이다. 우리나라 산업재해는 박정희가 경제개발을 추진하던 1960년대 당시부터 세계에서 가장 높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지금은 수치상으로 산업재해 발생률이 다소 줄었지만 실제로 산업재해가 줄었다고는 믿기지 않는다.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수는 줄지 않았는데 산업재해 발생은 줄었다니, 공상처리 등으로 은폐되는 산업재해가 많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반면 산재 사망자는 기업이 숨기기 어렵기 때문에 대체로 실제와 통계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정부 통계로도 매년 2천명 이상이 산재로 사망한다. 하루에 6명씩이다. 그 가운데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를 뺀 산재사고 사망자가 900명가량이다. 하루 2.5명꼴이다. 이 같은 산재 사망자 발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최고다! 그런데도 촛불정부는 노동자들이 요구하고 대다수 국민이 지지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거부하고 있다. 거대자본 즉 재벌의 요구 때문임은 긴말이 필요 없다. 자본의 이윤증식이 노동자의 생명보다 더 중하다고 판단하고 재벌을 비호하는 이 정부의 사람이 먼저다는 구호는 거짓이다.

 

오죽하면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여사가 11일부터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에 돌입했겠는가. 단식, 그것은 죽음을 각오하고 하는 투쟁이다. 고 권운상 동지가 쓴 대하소설 <녹슬은 해방구>에 보면 특별사동에 갇혀 옥살이를 하던 비전향 장기수 선생들이 박정희의 살인적인 전향공작에 맞서 단식투쟁을 하다가 세상을 뜨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어찌 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는 이 정부가 산재로 하나뿐인 자식을 잃은 노동자의 어머니로 하여금 그런 단식투쟁을 하게 만든단 말인가?

 

또 하나 주목되는 죽음은 극단적 선택이라는 이름의 자살이다. 언제부턴가 제도권 언론은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순화해서 표현한다. 그렇게 표현한다고 존재하는 현실이 달라지기라도 하는가? 대한민국은 산재공화국인 동시에 자살공화국이다. 2003년부터 2019년까지 2017년 한 해를 제외하고 OECD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다. 2019년 인구 10만명당 26.9명이고, 하루 평균 37.8명이다. 연간 13799명이고, 40분마다 한 명꼴이다. OECD 계산방식으로 10만명당 24.6명인데 OECD 평균 11.5명에 비해 두 배 이상이다.

 

그 가운데서도 청년과 노인의 자살이 주목된다. 10대부터 30대까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장래가 구만리 같은 청소년들이 자살로 세상을 뜨고 있다. 또 노인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6년 통계로 65세 이상 자살률은 53.3명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고, OECD 평균 18.4명의 3배가량이다. 노인 자살률이 최고인 것은 노인 빈곤율이 최고인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거 현대판 고려장 아닌가?

 

그런 자살 가운데 가장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일가족 동반자살이다. 박근혜 정권 시절 송파 세 모녀가 동반자살해 사람들을 슬프게 만들었다.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의 한정애 대변인이 논평을 발표하다 흐느껴서 더욱 그랬다. 그런데 촛불정부 아래서도 가족 동반자살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191231일에는 대전에서 홀로 두 아이를 키우던 남성이 4살 아들을 죽이고 자신도 목숨을 끊으려다 미수에 그친 일이 있었다. 올해 15일에는 김포에서 별거 중이던 여성이 어머니, 8살 아이와 함께 자살했다. 67일에는 강원도 원주 문막읍에서 휘발유 폭발로 일가족 3명이 죽었다. 아들은 흉기로 살해당했다. 그리고 지난달 6일 익산의 한 아파트에서 부부와 자녀 둘, 일가족 4명이 자살을 기도했으나 남편만 살아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연일 OECD 나라들 가운데 경제실적이 가장 양호하느니 어쩌고저쩌고하는 홍보자료를 내보낸다. 경제성장 실적이 양호하면 뭣하나? 정작 그 경제실적을 누려야 할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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