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세(민중운동 동향) | 최근 진보논쟁의 함의와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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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경주 작성일07-03-31 00:00 조회1,561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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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논쟁의 함의와 비판070314.hwp (25.5K) 29회 다운로드 DATE : 2015-05-13 1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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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진보논쟁’의 함의와 비판
이 경주
요즘 한국사회의 위기 진단을 놓고 진보진영으로 분류되는 학자들 간에 벌어진 논쟁에 설 연휴 무렵 노무현 대통령이 7300여자에 이르는 장문의 반박을 가하면서 끼어들자, ‘진보논쟁’이 뜨거운 화두로 등장했다.
애초 논쟁은 그 동안 노 정권을 꾸준히 비판해온 최장집 교수가 올 1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정부는 무능력과 비개혁 때문에 실패했으며, 실패한 이상 특단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한나라당으로 정권을 넘기는 것은 당연하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 원인으로, 사회적 갈등을 제도정치 안에서 해결하지 못한 채 운동정치(포퓰리즘=민중주의)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정치를 무력화한 데 있다. 한나라당 집권에 대한 ‘대중의 두려움’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요지로 발언한 데서 시작됐다.
이 같은 최 교수의 발언에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가 반박을 하고 나섰다. 그 골자는 다음과 같다. “최 교수가 한국 정치의 위기에 대한 ‘지적’은 올바르게 했지만 ‘진단’에서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했다.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다는 지적에는 동의하지만, 원인은 잘못 짚었다. 참여정부가 정당과 국회를 배제한 데 실패 원인이 있다는 최 교수의 주장과는 반대로, 사회적 힘을 이끌어내는 ‘진보적 민중주의’ 전략을 구사하지 못한 것에 참여정부 실패 원인이 있다. 제도정치로 갈등을 수렴하는 노력을 안 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보수적 저항을 돌파하는 제도정치 바깥의 사회적 힘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진보적 민중주의는 사회경제적 개혁을 급진적으로 구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데, 그러려면 신자유주의 확산에 따르는 대중의 분노를 급진적 방향으로 키워야 한다. 제도정치가 정상화하고 그 제도적 틀로 사회적 갈등을 흡수하기 위해서라도 ‘민중주의적 사회운동’이 뒷받침돼야 한다. 나아가 노무현 정부의 실패 문제를 진보세력과는 아무 상관없는 ‘타자의 문제’로 바라보아서는 안 되며, 민주노동당 등 진보세력과 열린우리당 등 중도자유주의세력을 포함한 진보·개혁 세력 전체가 지닌 본질적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 가령 참여정부는 지나치게 정체성에 집착해 집권 기반을 협소화했을 뿐, 보수적 대중의 동의를 얻어내 함께 가는 기반확대 전략을 쓰지 못했다.”
이 두 사람의 논쟁에 서강대 손호철 교수가 합류한다. 손 교수는 조 교수의 최장집 비판에 대체로 의견을 같이 하면서도, “최장집 교수의 지적 중 경청해야 할 부분은 바로 제도정치(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시민사회(개혁 세력)로부터의 분리에 바로 노무현 정부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라며 “자유주의 세력이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한나라당에 정권을 내줘야 한다”는 최 교수의 주장에 동의를 표한다. 손 교수는 한나라당의 집권이 역설적으로 긍정적 요소가 있다며, 정권이 한나라당 쪽으로 넘어가면 오히려 한국정치가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집권해 한나라당 식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한국사회가 사회적 양극화와 민중 생존의 파탄을 경험”하면 “문제의 핵심이 신자유주의에 있다는 걸 직접 체험”하게 될 것이고 그럴 때 민주노동당 등 진보세력에게서 대안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최 교수가 말한 ‘두려움의 동원 정치’를 다시 거론한 손 교수는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안에서까지 ‘한나라당에 권력이 넘어가도 좋으냐’는 식으로 윽박질러 문제를 풀려는 것은 코미디”라며 “이제 유치한 ‘두려움의 동원 정치’는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손 교수의 주장은 조 교수의 논리에는 여전히 ‘두려움의 동원 논리’가 깔려있으며 이것이 향후 또 다시 ‘반수구연대’의 깃발 아래 결집하자는 실천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한 반론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에 조희연 교수는 손 교수의 한나라당 집권 긍정 논리는 최 교수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며, “한나라당 집권 촉진 운동을 해야 한다는 오해도 나올”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손 교수의 논리는 “한국 자본주의가 더 파국적인 상황을 맞아야 대중이 더욱 급진화하고 변혁운동 기반이 강화된다는 1980년대식 인식을 떠올리게 한다”며 이는 매우 위험한 논리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한나라당의 집권은 한국에서 ‘신보수주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1930년대 독일에서 바이마르 공화국이 붕괴한 뒤 긴 파시즘 시대가 열린 것처럼 진보세력에게 불리한 상황만 안겨줄 것이라고 진단했다. 조 교수는 2004년 탄핵반대 투쟁에서 확인됐듯이 올바른 일반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진보세력의 공간도 확장시킨다며, “탄핵반대 투쟁이 열린우리당에게만 혜택이 돌아온 것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대약진에도 결정적 계기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2007년 대선도 마찬가지”라며 “현재와 같은 구도로 지속되는 것이 좋은가, 한나라당의 패권적 구도가 흔들리는 것이 진보정당의 약진에 좋은 것인가 한번 생각해보라”고 주문했다.
사실 이번 일련의 논쟁들은 새롭게 돌출된 것이라기보다 그간 진행되던 논쟁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에 불과하다. 여기서 우리는 생산적 논의를 위해 이번 논쟁의 함의를 비판적으로 고찰해보자. 먼저 작금의 진보논쟁이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라는 말은 매우 일면적이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이번 논쟁에 개입한 세 학자의 평가는 약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노 정권이 일차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에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정작 이 논쟁의 배후에 깔려 있는 핵심의 하나는 한국정치의 실패를 설명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하나의 시도로 ‘87년 체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극복할 것인가가 놓여져 있다.
그 동안 ‘87년 체제의 극복’이라는 의미를 담은 ‘87년 체제론’이 처음 논의되기 시작한 곳은 당초 노동운동이 분출한 1987년을 기점으로 삼았던 노동학계였다. 그러다 <창작과 비평> 2005년 봄호가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와 87년 체제’를 주제로 권두좌담을 펼치고 올여름 이를 주제로 대규모 학술회의를 준비하면서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분야로 ‘87년 체제론’이 확산되어 왔다.
그렇다면 ‘87년 체제’란 무엇인가? 논쟁을 촉발시킨 당사자 중의 한 명인 최장집 교수에 따르면 ‘87년 체제’는 운동의 민주화와, 그럼에도 구체제와의 혁명적 단절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기존 체제의 연속선상에서 제도화된 것을 말한다. 그렇기는 해도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에 의하면 87년 체제의 성취로 “한국은 ‘예외국가’에서 ‘정상국가’로 전환했다”. 김 교수는 87년 이후 한국사회는 ‘군부 개입의 가능성 차단(문민정부), 수평적 정권 교체(국민의 정부), 권력기관의 민주화(참여정부)’로 절차적 민주화가 달성되었다고 설명한다. 다만 정치에 비해 경제적 사회적 민주화는 지체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 교수는 ‘87년 체제’의 특기할 만한 현상으로 87년 이후 정치사회(정당)의 부분적 자율성 증대에 의한 “국가(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부조응, 민주화 세력 중 일부 영남 세력이 산업화 세력과 연합(3당합당)한 것, 지역주의 강화” 등을 꼽고, 87년 이후 한국 정치의 구조적 특징으로 ‘권위주의적 국정운영’과 ‘정치 부패의 온존’과 ‘분열적 지역주의’ 그리고 ‘대립과 투쟁의 정치문화’가 형성됐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 1987년 민중항쟁을 계기로 탄생한 ‘87년 체제’는 한국의 자유주의세력이 한편으로는 변혁적 노동자민중세력과 손잡고, 또 한편으로는 관료적 권위주의 세력과 손잡아 그들의 기득권과 신자유주의를 강화해간 과정 그 자체였다. 즉, ‘87년 체제’란 1987년 당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 김종필 등 1노3김이, 노동자 민중의 혁명적 진출을 만류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우선 쟁취’와 ‘비판적 지지’를 앞세우며 개량화한 운동세력 일부를 포섭하여 타협한 헌정 지배질서를 일컫는 것으로 이는 정치적으로는 5년 단임의 대통령제와 결선투표 없는 대통령 직선, 단순다수제에 의한 소선거구제를 핵심 내용으로 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민중들은 정치적 해방을 ‘일시적․ 부분적’으로 맛보기도 하였지만, ‘87년 체제’는 정치경제적으로 노동자민중들을 더욱 속박하는 결과를 낳았다. 노동자민중의 열망을 저버리고 기묘한 ‘87년 체제’를 만들어낸 자유주의세력들은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강대국 위주의 ‘무장한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계급 간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말았기 때문이다. 특히 1997년 이후 IMF 체제 하에서 초민족자본의 대행기구인 IMF가 강요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자유주의세력들이 적극 수용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급속한 결합으로 한국사회는 비정규직의 양산, 대량실업과 부동산 폭등에 따른 사회 양극화, 불평등한 사회 구조의 고착 등이 심화된 ‘민주적이되 더욱 투명한 계급사회’가 되고 말았다.
다음으로 이제까지 진보진영의 ‘87년 체제론’은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한계와 그 원인을 87년 헌정지배체제의 태생적 불구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지나친 구조 결정론적 현실인식을 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는 레이몽 부동(R. Boudon)이 80년대에 유행시켰던 ‘사악한 결과(perverted effect)’라는 개념처럼 모든 것을 정치구조나 제도에 책임을 전가하는 전형적인 책임회피의 논리를 제공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노대통령이 과거 제기한 바 있는 한나라당과의 대연정론이나 최근의 개헌안도 ‘87년 체제’의 극복을 주요 명분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볼 때, 현 한국사회의 위기를 자신의 신자유주의 개혁에서 야기된 실패라기보다 ‘87년 체제’에서 배태된 지역구도 탓으로 돌리려는 노무현의 책임 회피에 논리적 협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부르주아 국가의 민주주의가 폭력성과 입헌성, 배재성과 통합성의 모순적 통일로 이루어진 입헌과두제”라는 요하네스 아그놀리 (전 베를린 자유대학 교수)의 지적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김호기의 말대로 ‘87년 체제’가 이른바 정치적 측면에서 “‘군부 개입의 가능성 차단(문민정부), 수평적 정권 교체(국민의 정부), 권력기관의 민주화(참여정부)’로 절차적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하지만, 이는 언제나 ‘국가보안법’ 존재 하에서의 절차적 민주화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이른바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노태우 정권 시절 ‘10% 일 더하기 운동’부터 현 노무현 정권의 노동유연화와 같은 전면적인 신자유주의정책과 구조적 사회양극화 현상의 고착이 남았을 따름이다.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계급운동과 사회운동에 대한 탄압-최근에 일어난 비정규직 법안 개악과 한미FTA 저지투쟁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사실을 떠올려 보라-과 핵심계층과 주변계층의 양극화에 기반을 둔 차별화 전략인 ‘두 국민전략(two nations strategy)’은 부르주아 입헌민주주의에 내재된 폭력성과 배제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앞서 살펴 본 대로 이번 논쟁 당사자들은 ‘87년 체제’란 운동에 의한 민주화와 기존체제라는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헌정지배체제로, 그 후 20년 간의 ‘87년 체제’에서 정치적 민주주의는 이룩했으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지체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한국 사회의 정치적 보수화 및 사회적 양극화의 원인은 실질적 민주주의의 미성숙에 있고, 민주주의의 역전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제도정당(강조-인용자)을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최장집과 “한국사회에서 사회개혁의 역동성은 항상 시민사회 내의 사회운동(강조-인용자)에서 시작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사회운동의 혁신을 통한 시민사회의 저항적 활성화가 현재의 위기를 벗어날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조희연의 주장은 87년을 통해 달성한 ’제한적인 민주주의‘를 어떠한 방향에서 완성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으로 변전되고 만다. 손호철 역시 “한국의 국가성격은 아직도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민주주의를 기준으로 해서도 ’제한적 정치적 민주주의(limited political democracy)' 내지 ‘제한적 형식적 민주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보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이들이 부르주아 입헌민주주의 국가 내에서 종별적인 정치적 민주화와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이론적으로 ‘당연히’ 분리하고, 그러한 분리를 내용적 혹은 실체적 분리로 여기도록 만듦으로써 국가 물신주의적 경향을 고루 간직하고 강화하는데 이바지하는 것에만 있는 게 아니다. 알려진 대로 한국 사회의 담론 지형은 1990년대 들어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전면화하는 가운데 사회구성체 논쟁이 퇴조한 자리에 왕년의 자칭 맑스주의자들이 설파한 ‘국가-시민사회’ 혹은 ‘국가- 정치사회-시민사회’라는 구분법에 급격히 경도되었다. 반면 몇몇 이론가들만이 이들의 몰계급적 도식의 이론적․실천적 결과를 경계하며 비판적 담론 투쟁을 고민했다. 예컨대, 김세균의 ‘국가- 시민사회-토대-민중사회’나 손호철의 ‘국가- 정치사회-시민사회-토대’ 등의 시론적 모색은 이러한 고민의 소산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은 국가-사회관계 연구의 핵심인 ‘시민사회의 해부’로부터 출발하지 못하는 이론적 불철저함으로 인해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채 절충적 이론화에 그치고 말았다.
때문에 90년대에 이 땅에 대량 살포된 것이 자유주의적 시민사회론이었다. 이 시각은 국가의 개입과 이에 대항하는 시민사회의 자율성 간의 관계이며, 최소한의 국가 개입과 최대한의 시민사회 자율성 지향을 두드러지게 강조한다. 국가는 공적 영역, 시민사회는 사적 영역으로 규정하면서 두 영역의 분리와 사적 영역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민사회는 법률적으로 동등한 사적 시민들의 자유로운 활동공간이다. 여기서 시민사회의 자율성은 ‘시민적 자율성’과 ‘경제적 자율성’ 양자를 포괄하는데, 특히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사적 소유와 경제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경제적 자율성’이 중심 논리가 된다.
현실적으로 국가와 시민사회가 분리되어 있으며 시민사회의 중심적 내용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해도 부르주아 입헌민주주의 국가 속에서 그 ‘시민사회’의 내용은 어떠할 것인가? ‘억압적 국가/국가에 반하는 시민사회’라는 잘못된 설정 속에서 ‘시민사회에 의한 국가의 민주화’ 혹은 ‘시민사회에 의한 제한적 민주주의의 완성’이란 구호가 가당키나 한 것인가. 시민사회의 시민들은 법률적 형식에서는 동등할지 모르지만 실질적으로는 자본의 사적 소유와 시장의 자율성으로 인해 실질적으로는 불평등하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부르주아 계급이 경제적으로 지배하는 부르주아 사회일 뿐이다. 그리고 국가 역시 ‘공정한 심판자’가 아니라 시민사회에서의 계급지배를 후원하고 정당화하는 지배 장치일 뿐이다. 그러므로 ‘시민사회’는 보호되어야 할 자율성의 공간이 아니라 해체되어야 할 계급적 불평등과 적대의 공간이 아니겠는가. 묻건대, 한국사회의 실질적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 제대로 된 ‘제도정당’을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며 준비가 안 됐으면 한나라당으로 정권을 넘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언설은 논외로 치더라도 시민사회의 저항적 활성화가 현재의 위기를 탈출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주장 속엔 변혁적 계급운동은 과연 포함되는지, 포함된다면 그 위상은 어떤지 궁금하다.
최근 들어 여기저기서 부쩍 소란스러운 것이 정치의 계절이 도래했음을 실감나게 한다. 수구들이야 그렇다 치고 자칭 진보진영에도 이 계절풍의 영향은 예외가 아니다. 먼저 정대화 상지대 교수, 최열 환경재단 대표,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양길승 녹색병원장 등이 주축이 되어 ‘새로운 정치운동’으로 2007년 대선에 적극 개입하겠다며 출범한 ‘창조한국미래구상(준)’은 출범토론회 발제문에서 “지금은 노무현 정권뿐 아니라 진보개혁세력 전체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라며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등 기존 정치세력은 대안이 될 수 없으며, ‘새로운 정치운동’만이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창조한국미래구상(준)이 표방하는 구상은 수구보수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 “정책을 중심으로 진보개혁세력의 단일후보를 추대한다”는 것으로, 결국 ‘진보’는 빈 수사이고, 현실적으로 ‘개혁’에 강조점을 두면서 이제까지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밀월을 즐기며 권력의 단맛을 즐긴 자유주의 시민운동의 이니셔티브를 계속 쥐고 가겠다는 속내를 노골화했다는 점에서 아주 시대착오적이다.
한편 전국민중연대, 통일연대,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단체가 중심이 되어 한국진보연대(준)도 출범했다. 이번에 출범한 진보연대(준)에는 민족해방(NL) 계열 단체들도 대거 참여한 반면 민중민주(PD) 계열 단체들은 대거 불참한 것이 특징이다. 진보연대(준)는 내부 자료에서 “노무현 정권에 대해 분명한 선을 긋고 비타협적인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데 아무런 이견이 없다”며 “2004년 전국민중연대 주요 간부들이 대통령 탄핵 반대운동에서 주도 역할을 한 것에 대해서 반성해야 한다”고 때늦은 참회의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한총련, 범민련 남측본부 등 진보연대(준)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들의 면면을 보거나, 이들이 참회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노골적으로 ‘반한나라당 투쟁’을 외치는 것을 보아 진보연대(준)의 대선운동이 반미와 연계된 ‘반수구’ 전선으로 갈 가능성이 염려스럽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역시 2007년 대선의 목표로 “진정한 진보정치 세력으로서의 수구 보수와 진보의 대립점을 주 전선으로 하여 선거투쟁을 전개하고 이를 통해 당의 위상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진보민중진영의 지지를 모아가는 것”을 설정하고 있다. 한미 FTA, 부동산, 한반도 평화, 사회연대정책, 대안경제 정책을 주요 쟁점으로 부각시키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정계개편이나 개헌논쟁,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변수 속에서, 이제 창당된 지 6년여 만에 급속히 운동성을 탈각한 채 체제내화 되어가며 꺼져가는 환상만 부추기는 현재 민노당 정도의 실력으로, 과연 잠복되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진보-개혁세력의 대통합론’의 쓰나미를 이겨내고 사민주의 우파 정책이나마 지켜 갈 수 있을지 무척 의문스럽다.
자못 흥미로운 것은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의 움직임이다.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는 ① 민주노동당과 한국진보연대의 강화와 자주적 민주정부의 기반 구축 ② 진보개혁세력의 대연합과 미국과 한나라당의 재집권기도 분쇄 ③ 미국의 식민지배와 친미보수세력을 청산할 수 있는 사회정치적 환경 마련을 2007년 대선의 3대 목표로 제시하며, “6.15의 방패로 미국의 개입을 차단하고 반보수대연합의 창으로 친미보수세력을 고립시키며 범국민적 반미, 반보수투쟁으로 정국을 압도하면 현재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아무리 높아도 대선은 진보개혁세력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될 것이며”, “상반기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반보수대연합이 실현되어 진보개혁세력의 후보단일화(강조-인용자)가 가능해지고 제2의 반미촛불대투쟁이 전 사회를 뒤흔들면 대선은 무조건 승리할 수 있다.”고 그들의 희망사항을 적고 있다. (「2007년 겨울 반미반전전국일꾼전진대회」) 이는 내심으론 민주노동당 정도의 남한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조차 달가워하지 않는, 북한 김정일 정권의 의중이 반영된 선거전술이라고 판단된다.
정치의 계절을 맞이한 이들 자칭 진보세력의 모습은 매우 다른 듯 보이지만, 수구보수세력 까지를 포함해서 사실 커다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현실의 전선을 ‘수구․보수와 진보․개혁’ 세력의 대립으로 설정하여 사실상 상호 적대적 의존 속에서 이들이 정작 공통적으로 노리는 것은 ‘수구․보수와 진보․개혁’ 세력의 대립으로 설정하여 독자적인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진출과 세력화를 막으려 한다는 점이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보수 대 진보’ 혹은‘수구 대 개혁’ 세력으로 그릇된 대당관계를 설정하여 독자적인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진출과 세력화를 꾀하는 움직임에 ‘수구좌파’라는 붉은 딱지를 붙이며 배제하려 든다.
‘민생 파탄’의 근간을 이루는 고용 없는 성장, 사회양극화로 표현되는 현재 빈곤의 확산은 이들이 주장하는바 ‘무능한 좌파정부’ 실정 탓이 결코 아니다. 87년 이후 20여년의 역사를 민주화와 사회변혁을 향한 ‘민중항쟁’을 중심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자유주의세력과 군부독재세력과의 합의된 이행‘을 근간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는 이래서 중요하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87년에 분출한 ‘민주주의와 사회변혁’을 향한 대중적 열망을 봉쇄하고 등장한 3대에 걸친 이른바 ‘민주정부’는 ‘민중항쟁을 통한 민주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그 정치적 성과를 독식한 채 ‘재벌중심의 세계화’를 완성해 온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란 점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필연적인 결과로서 경제위기, 금융화와 투기자본의 활성화를 통한 경제위기 극복전략이 낳은 노동자 민중의 권리 축소와 부정부패, 대중의 정치적 불신과 환멸은 바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처한 현재 ‘위기’의 본질이 다름 아닌 ‘신자유주의 개혁’ 자체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낳은 삶의 위기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안정을 찾으려는 대중적 열망을 현혹시키며, ‘무능한 좌파정부’와 ‘성장을 저해하는 집단이기주의 세력(사회운동)’을 적으로 규정하며 인민을 동원하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수구세력의 행태는 그들 스스로 비판하는 ‘포퓰리즘 정치’일 뿐이다. 이명박에 대한 대중들의 뿌리 없는 지지는 이들에 대한 기대감이라기보다는 민생파탄과 절망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왜곡 표출된 형태라고 봐야 한다. 이 틈을 탄 한나라당과 수구언론들의 “좌파정권이 나라를 말아먹었다.”는 선동은 정확히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좌파의 실패’로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대중의 끓어오르는 분노가 이러한 사태를 만들어 낸 근본원인에 대한 정확한 비판과 미래를 예비하는 행동으로 모아지지 않고 ‘좌파가 문제’라는 수구우익들의 인민주의적 선동이 무비판적으로 먹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편으론 노동자 민중의 미래에 대한 대안을 준비하고 이를 집합적으로 실현하려는 진정한 사회운동이 부재한 현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한나라당과 수구들이 내세우는 “‘법치주의와 자유시장주의’를 중시하여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서민위주의 중장기 경제성장정책을 펼치며, 더불어 IT, BT, NT, 환경, 조선, 항공, 서비스산업 등 미래형 산업을 집중 육성하여 성장 동력을 창출한다는 것이다”는 ‘국가선진화전략’은 사실은 김종필 류의 변형된 ‘기승전결론’이자, 흘러간 ‘발전국가론’을 다시 읊조리고 있는 공허한 레토릭에 불과하다.
요컨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몰락’과 ‘지배정치의 위기’를 목도하는 상황에서, 우리 노동자민중이 이 시점에서 제기해야 할 진정한 쟁점은 “수구보수냐, 진보개혁이냐”가 아니라 “초국적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냐 노동자민중이 주도하는 대안세계화냐”를 혹은, 이 전선에 기반한 변혁을 중심으로 한 ‘좌냐 , 우냐’ 하는 대결 구도란 점이다. 이번 논쟁은 학술적 토론에서 시작해 대선이 다가올수록 대선 개입 문제와 경선 방식, 선거구제와 권력구조를 포함한 개헌문제 등 구체적 현안에 이르기까지 점차 다양한 지점에서 쟁점화 될 것이다. ‘87년 체제’ 또한 종말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포스트 87년 체제’를 형성할 수 있는 중심 세력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현 집권 신자유주의 개혁보수 세력이나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같은 제도정치 세력이나 소위 시민운동 혹은 노동자민중 세력까지 모두 현 정치지형과 사회적 합의수준에 대해 불만을 느끼고 있지만, 이를 변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지는 못하다.
더구나 지난 1월 11일 대국민담화문을 통해 발표된 노무현 대통령의 이른바 ‘원 포인트 개헌안’은 ‘대통령 4년 연임제’로 제한이 되어있을 뿐, 이와 필수적으로 연관될 수밖에 없는 여타 권력구조 개편에 관한 안은 물론, 2005년 당시 개헌 논의가 촉발되었을 때 제기되었던 영토조항(제3조), 경제 민주화를 위한 국가의 규제 및 조정권(제11조), 국회의원 면책특권(44조)과 불체포 특권(45조) 등의 논점을 전혀 다루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번 개헌안을 놓고 개헌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열린우리당의 분당 사태에 제동을 거는 한편, 대선 판도와 이 안의 함수관계를 둘러싼 복잡한 정치적 계산을 놓고 한나라당을 흔들려는 ‘정략적 목적’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한나라당은 개헌논의에 매우 부정적이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는 노무현의 ‘원포인트 개헌안’에 대해 "선거만 생각하는 대통령"이라면서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까지 말했다.
이에 따라 설사 개헌 논의가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중도에 추진력을 잃고 좌초하거나, 최소한의 권력구조 변경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진단도 나온다. 현행 헌법이 개헌안 발의의 요건으로 국회 정족수 2/3 동의조항을 둔 것도 걸림돌이다. 주요 정치세력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반대한다면 개헌은 불가능한 셈이다. 노무현은 정말 모든 정파에 이득이 되는 개헌이라고 믿고 있는 걸까? 그래서 개헌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걸까? 지금 구도라면 개헌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구도를 바꿔놓는다면? 개헌 카드가 지금의 구도를 바꾸는 촉매 역할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나 ‘87년 체제’의 종말이 반드시 개헌과 같은 절차를 동반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작년 4월 탄핵정국이 보여준 것처럼 역사는 의사당내에서의 질서정연한 토론과 타협보다는 힘과 힘이 맞부딪히는 가두를 더 선호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나 원칙에 근거해 현실정치를 비판하고 새로운 정치적 실천을 해야 하지만, 냉소주의나 정치 무용론과 같은 반정치적 태도를 경계해야한다. 또한 우리는 지지율 몇 퍼센트 등락에 온 신경을 기울이는 ‘선거운동’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선거투쟁’을 벌여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권리 위에 잠자는 자의 권리는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최근 진보논쟁과 정세변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실천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2007.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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