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 부르주아 정치의 헤게모니 상실과 사회구성체 논쟁의 필요성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6-12 14:10 조회207회 댓글0건첨부파일
-
부르주아 정치의 헤게모니 상실과 사회구성체 논쟁의 필요성.BAK (17.0K) 2회 다운로드 DATE : 2023-06-12 14:10:51
본문
매일노동뉴스에 연재되고 있는 김승호의 노동세상(6월 12일자) 글입니다.
부르주아 정치의 헤게모니 상실과 사회구성체 논쟁의 필요성
김승호(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대표)
세상살이는 힘든데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전태일은 수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을 물질화 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 그 이후 50년 이상이 지났다. 인간들은 희망의 가지를 붙들고 살아가고 있는가? 헬조선에서 청년들은 3포, 5포, 7포, N포를 말했다. 3포가 연애·결혼·출산 포기라면 5포는 여기에 취업과 내 집 마련이 추가되고 7포에는 인간관계와 희망이 추가됐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이 말이 실감난다. 결혼과 출산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 것은 만인이 아는 사실이고, 집값 폭등으로 청년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은 사라졌다. 제로성장 시대이다 보니 괜찮은 일 자리에 취업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현대자동차 생산직 신입사원 모집 경쟁률이 450대 1이라는 이야기를 보라. 그러니 인간관계를 포기하고 집에 틀어박혀 있는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나고, 생의 희망을 포기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26일 정유정이라는 한 20대 초반 여성은 과외중개앱에서 알게 된 또래 여성을 집으로 찾아가 살해하고 여행용 가방에 넣어 낙동강 인근 풀숲에 버렸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정유정이 사이코페스냐, 아니냐만 주목할 뿐이다. 꽃다운 청년들을 인간성이 상실된 괴물로 형성하는 사회체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최근 통계를 보면 이 같은 인간관계와 희망을 포기하는 추세가 10대 청소년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지난 4월16일 서울 강남에서 한 여고생이 고층건물에 올라가 투신자살했다. 그는 이 과정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생중계했다.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일이 버젓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꽃다운 10대들에게 마약 사용자도 늘어나고, 자살률도 늘고 있다. 부르주아 계급 정치인들은 이런 어두운 현실은 덮고 K팝, k드라마, k푸드, k뷰티가 어쩌고 하면서 대한민국 자랑 하고만 있다.
최근 한 권의 책과 한 편의 논문을 읽었다. 김종법 대전대 교수의 <그람시와 한국 지배계급 분석: 그람시의 역사적 블록 개념과 한국적 적용을 중심으로, 2015>와 최용섭 교수의 <Overcoming the division bloc and its limitations: a Gramcian approach to South Korean social formation(분단블록의 극복과 그 한계: 그람시 이론을 통한 한국 사회구성체 분석, 2018)>이다. 책과 논문은 그람시의 ‘헤게모니’와 ‘역사적 블록’ 개념을 원용해 한국 지배계급을 분석하려고 했고, 이를 통해서 한국의 사회구성체를 해명하고자 했다. 그 책과 논문의 결론에 토론이 필요한 지점이 없지 않지만 오랫동안 망각된 한국사회의 사회구성체에 대한 논의를 재개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회구성체(사구체) 논쟁’은 19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반에 걸쳐 활발했다. 그것이 네 권의 책으로 집대성되어 발행된 바 있다. 그 만큼 많은 연구와 논의가 있었다. 이 논쟁은 한국 사회 혁명·변혁의 노선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와 관련이 있었다. 한국 사회 혁명·변혁 노선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구성체적 성격이 무엇인지 밝히고 그것을 근거로 일정한 노선을 정하는 것이 과학적이라고 간주된 것이다. 이 ‘사구체 논쟁’이 노동·민중운동 발전에 기여했는지 아닌지는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 한국 노동운동·사회운동을 극심하게 정파로 갈라지게 하는 역할을 했다는 부정적 평가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사회운동을 이론에 의해 이끌도록 자극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어쨌든 이 사구체 논쟁은 당시 노동운동·사회운동의 혁명운동적 성격을 반영한다. 이러했으므로 1990년대 초 소련 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혁명·변혁운동이 급속히 퇴조하자, 그에 따라 사구체 논쟁도 사그라들었다. 혁명운동이 아닌 개혁운동에서 한국사회의 사회구성체적 성격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어진 사회구성체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약간의 개량만을 추구하는 것이 운동의 지배적 조류가 됐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사구체 논쟁이 끝난 지 20년이 지난 2010년대에 위와 같은 책과 논문이 발표된 것은 사회현실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시기는 미국 발 세계금융공황 이후 불황이 장기화하고 있던 때다. 어떤 식으로든 모순적인 자본주의 현실을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더 구체적으로 그 책과 논문은 한국 사회가 개혁을 넘어 혁명적 변혁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최용섭 교수의 논문은 한국정치학회 2021년 학술상 논문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는데, 선정 이유에는 이런 점도 포함됐을지 모른다.
최용섭 교수는 논문에서 한국 정치의 현실을 헤게모니(패권이 아니라 지도력)가 부재한 공백상태로 규정했다. 쉽게 말해서 분단체제 안에서 그것을 배경으로 노동자·민중을 가혹하게 착취·억압해온 지배세력의 헤게모니는 전두환 정권의 5.18 학살과 IMF 사태로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항-헤게모니를 형성, 그들을 대체하려고 했던 자유주의적 민족주의 집단(민주당)은 이 수구세력을 극복하는 데 실패했다고 파악한다. 지금의 헤게모니 공백상태는 그 결과다. 그들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유주의적 민족주의 집단은 지배블록의 실세인 독점재벌을 중심으로 한 경제체제를 타파하지 않았다. 또 그것과 결합된 상부구조인 반공파쇼 정치체제도 타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유주의적 민족주의 집단이 크게 반성하고 이러한 과제를 받아 안고 기존 헤게모니 집단과 지배블록을 대체할 수 있을까? 2차 사회구성체 논쟁의 과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