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 윤석열 내란 사태 한 달 이후의 전망, 투쟁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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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1-24 16:39 조회41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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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내란 사태 한 달 이후의 전망, 투쟁방향
2025년 1월 8일
김승호(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 이사장)
1. 한 달 동안의 사태 진행 개요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8분경에 선포된 비상계엄과 윤석열의 친위 군사쿠데타는 여섯 시간 만에 실패로 종료되었다. 그러나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1차 비상계엄에 대해 국회에서 해제가 결의된 이후에도 윤석열은 즉각 계엄을 해제하지 않고 2차 계엄선포를 기도한 정황이 다수 있다. 예컨대 계엄령 해제를 발표한 이후에도 정보사 병력을 한 동안 원대복귀 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는 국민의 강력한 반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그리고 1차 탄핵소추안 표결이 있었던 12월 7일 오전 대국민 담화에서 윤석열은 어떠한 법적·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윤석열은 12월 7일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정세가 유리해졌다고 판단, 태도를 확 바꾸었다. 12월 12일 오전 장장 30분에 달하는 네 번째 담화문을 발표하여 비상계엄을 종북 반국가세력을 척결하는 고도의 통치행위로서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강변하며 “최후의 순간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함으로써 3차 쿠데타를 기도했다. 윤석열이 선전포고한 이 3차 쿠데타 기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싸움은 12월 14일 저녁 윤석열이 국회에서 탄핵소추 됨으로써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윤석열과 그를 지지하는 수구보수 정치세력은 탄핵소추안이 204표 찬성으로 간신히 국회 문턱을 넘었음을 보고 3차 쿠데타를 계속 밀고 나가기로 결정했다. 이날도 여당은 당론으로 탄핵에 반대하였으나 투표에는 참여했다. 결과는 탄핵소추안 가결이었다. 당 대표 한동훈이 내놓고 탄핵 가결을 주장한 탓이 컸다. 이렇게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여당 국힘당의 주류는 격앙하여 한동훈을 당 대표에서 축출하고 전열을 정비했다. 그리고 탄핵심판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여론전을 펼치는 쪽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전광훈의 태극기 부대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윤상현 의원은 12월 28일(토) 광화문 태극기집회에 나가 무릎을 꿇었다. 이에 앞서 그는 동짓날에 있은 남태령 농민투쟁을 “난동세력은 몽둥이가 답”이라며. 파쇼적 언어로 매도했다. 이제 투쟁은 국회 내 투쟁으로부터 국회 밖의 태극기 부대와 형광봉 부대의 힘겨루기로 전환되었다. 국회에서의 표결에서 찬반 의석 분포는 거의 고정되었다.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내놓고 탄핵에 찬성한 네댓 사람을 제외하고는 국힘당 의원 가운데 당론을 이탈하는 의원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행정부의 법률안 재의 요구는 대부분 국회 문턱을 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싸움의 승패는 결국 거리·광장 투쟁과 여론전에 의해 결판날 것이다. (1월8일 국회의 쌍특검 재의 표결에서 이탈 표는 각각 4표(김건희 특검)와 6표(내란 특검)였다)
그리고 그 거리·광장 투쟁의 무대는 농민들의 남태령 대첩 이후 광화문과 헌법재판소로부터 윤석열이 머물고 있는 한남동 관저 일대로 바뀌었다. 장소가 이렇게 된 데는 윤석열이 열성 지지자들을 관저 주변으로 불러 모은 데서 시작되었다. 윤석열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배후 조직인 (신) 자유연대를 불러 모았고, 1월 1일에는 한남동 관저 주변에 서 밤샘농성을 하고 있던 지자들에게 함께 끝까지 싸우자는 편지를 보냈다. 또 하나의 요소는 ‘비상행동’이 탄핵과 파면 요구로는 대중의 투쟁 욕구를 담아내기 부족하다고 판단해서 윤석열 체포·구속 요구를 전면화한 데 연유한다. ‘비상행동’은 12월 27일(금) 윤석열 체포와 구속을 위한 시민대회와 행진을 관저 일대에서 실시했다.(농민들의 트랙터 시위의 주된 요구도 ‘체포와 구속’이었다. 행선지도 광화문과 관저였다.) 다른 한편 윤석열 내란범죄에 대한 수사를 전담하고 있는 공조본이 윤석열에게 세 차례에 걸쳐 공수처에 출두하라는 소환장을 보내고 윤석열이 이에 응하지 않자 작년 12월 31일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체포를 시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차 체포 시도는 1월 3일에 있었다. 이 시도는 경호처의 완강한 육탄방어로 저지되었다. 6일까지 재차 체포를 시도하라고 많은 청년과 노동자들이 한남동 관저 인근 거리에서 눈을 맞으며 6일까지 노숙투쟁을 했다. 그러나 공수처는 체포를 재차 시도하지 않았다.
이로써 국가기관을 압박해서 체포·구속을 이끌어낸다는 것이 여의치 않음이 드러났다. 공수처는 최상목 권한대행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최 권한대행은 이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공수처는 여당과 야당 양쪽으로부터 맹비난을 받았다. 국힘당이 비난한 것은 권한 없는 기관이 불법적으로 체포를 시도했다는 것으로 비난의 이유는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이후 확실하게 내란수괴 윤석열을 체포하라는 여론의 압박을 받아 공수처는 재차 체포를 시도하고자 체포영장 연장을 신청하여 1월 7일 체포영장을 재차 발급받았다. 일각에서는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빗발치는 여론에 압박을 받아 체포를 재차 시도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공수처가 과연 완강한 경호실의 저항을 뚫고 윤석열을 체포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후 투쟁은 소강상태로 들어가고 태극기 부대의 일부는 헌재의 신속한 재판진행을 방해하는 압박을 가하고자 집회장소를 헌재 인근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윤석열을 지키고자 관저 주위를 지키고 있다. 한편 ‘비상행동’은 헌재 탄핵소추 안에 내란죄를 제외하였고 이것이 새로운 쟁점으로 되고 있다. 이후 이 문제를 둘러싸고 내란 세력과 내란 반대 세력 사이에 치열하고 지루한 이데올로기 투쟁이 전개될 것이다. ‘비상행동’의 주중 대중투쟁은 소강상태다. 그러나 주말에 광화문에서 윤석열 체포를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예정돼 있다.
2. 행위자
이런 사태 전개의 행위자는 크게 넷이다. 하나는 윤석열과 그 일당이고, 그 둘은 민주당과 야권 정당들이다. 그리고 셋은, 민주당도 포함되어 있지만 단순히 민주당 외곽조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정치세력들을 둘러싸고 있는 국민과 민중이 있다.
특이한 것은 ‘비상행동’에 20대 여성이 대거 참여하고 있고 이들 가운데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부분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지점이다. 반면 태극기 부대에는 종래처럼 노년 남성과 여성이 대거 동원되고 있고 간간이 20내 남성이 참여하고 있다. 전자에는 노동자·농민 같은 기층 민중운동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면 후자에는 전광훈과 극우 기독교 세력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태극기 부대에는 이스라엘 국기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종래와 다른 점이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본질이 지난해 이-팔 전쟁으로 대대적으로 폭로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성조기는 여전히 이들의 필수품이다.
정치적 행위자로서 언론의 흐름도 무시할 수 없는데, 한겨레·경향 같은 자칭 진보언론은 물론이고 조중동 같은 수구보수 언론들도 윤석열의 계엄선포와 내란책동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라는 점이다. 이들 수구보수 언론은 윤석열의 그런 무모한 친위 군사쿠데타 기도가 보수를 궤멸시키고 있다고 보고 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보수는 개혁적 보수가 아니라 여전히 수구적 보수이다. 이들은 수구적 보수와 개혁적 보수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다. 이 수구보수 언론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가 주목된다. 지금은 윤석열의 내란행위를 맹비난하고 있지만 이후 태도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주목할 것은 이런 정치지형이 미국의 그것과 매우 비슷하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정치가 미국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데, 바이든 정권 하에서는 이것이 혼란스러웠다. 수구보수 언론들이 미국 자유주의 정권인 바이든 정권을 지지했고 자칭 진보적이라고 주장해 왔던 한국 민주당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서 침략자 이스라엘 편을 드는 바이든 정권을 지지했다. 앞으로 한국의 수구보수 세력은 트럼프의 공화당과 비슷해질 것이고 자유주의 정당인 한국의 민주당은 미국 민주당과 비슷해질 것이다. (전광훈은 트럼프 취임식에 자신이 초대되었다고 떠벌였다.) 그리고 둘 다 미 제국주의 정책을 지지하고 추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문화적으로 윤석열 당은 미국 트럼프 당과 비슷하고, 한국 민주당은 미국 민주당과 비슷하다. (태극기 부대는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데 그 이유는 성소수자 합법화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노무현 정권 당시부터 계급의제를 배제하고 인종적·성적 정체성을 동원한 정체성의 정치를 펼쳐 왔다. ‘비상행동’의 집회에서는 차별에 대해서는 수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계급적·민족적 지배와 착취·수탈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들어보기 힘들다. 그 두 가지 - 정체성 정치와 계급정치 - 가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어떻게 융합할지 두고 볼 일이다.
3. 민주당과 친 민주당 사회운동의 투쟁방향(전략): 반보수(실은 수구) 개혁주의
이재명은 여러 차례 ‘빛의 혁명’을 입에 올렸다. 그는 2016년에는 ‘손가락 혁명’을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2016년에나 지금에나 그가 말하는 혁명의 알맹이가 무엇인지는 매우 애매모호하다. 그는 윤석열의 내란기도가 실패한 직후 “국민들이 ‘피를 흘리지 않는 혁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그가 말하는 ‘혁명’은 ‘개혁’을 거창하게 포장한 수사(레토릭)에 불과할 것이다. 이것은 민주당과 친 민주당 사회운동이 주도하는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의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단어 앞부분에 ‘사회’라는 수식어를 붙이건 대(大)를 덧붙이건 결국 ‘개혁’이다. 이는 전노협이 ‘노동해방’ 기치를 내릴 때 민주노총 준비위원회가 ‘사회개혁’을 기치로 내세웠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 헬조선변혁전국추진위원회(줄여서 헬조선변혁)는 분명하게 민주혁명이 필요함을, 더 구체적으로는 반자본 급진 민주주의혁명이 필요함을 주장해 왔다. 더 구체적으로는 천민자본주의 파쇼 체제를 타파하고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천민자본주의란 생산력에서의 비교우위를 통해 자본의 집중과 축적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정경유착으로 시장을 독점하여 소비자를 수탈한다거나 중소기업에 대한 수탈을 통해 이윤을 획득하고 즉 지대를 추구하고 자본을 축적하는 독점재벌이 지배하는 경제를 말한다. 이것은 경쟁을 배제하는 독점이며, 독점이되 전근대적인 독점이다. 이것의 유지를 보장하는 것이 상부구조에서의 파쇼 통치체제이다. 많은 사회운동은 한국사회가 산업화와 민주화 둘 다 성취한 모범국가인데 무슨 파쇼냐고 응수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사회운동 좌파 쪽에서 오히려 강하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 정치학자 쉐보르스키 따위가 사회혁명을 예방하기 위해 제안한 ‘민주화 이행’을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으로 ‘착오’한 데서 비롯된다. 개발도상국들에서의 민주화는 군사파쇼를 민간파쇼로, 경성 파쇼를 연성 파쇼로 대체한 것이다. 87년 체제란 이같이 군사파쇼를 민간파쇼로, 경성파쇼를 연성파쇼로 대체함으로써 사회혁명을 막고자 한 예방혁명이었다. 이 지점은 중남미의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서나 동아시아의 필리핀과 한국에서나 같다.
혹자는 신자유주의는 파쇼와 병행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도입되던 시기가 민주화 이행이 이루어지던 시기와 겹치다 보니 생겨난 착오이다. 그러나 세계를 넓게 보면 판단은 달라진다. 개발도상국 가운데 신자유주의를 처음 도입한 칠레는 피노체트로 대표되는 군사파쇼 국가였다. 한국의 전두환도 1980년 집권 후부터 신자유주의를 도입했는데, 그는 세계가 알아주는 군사파쇼였다.
이런 이유로 이들 민주당과 친 민주당 사회운동은 이른바 87년 체제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87년 체제가 노동계급과 민중의 정치적 진출을 봉쇄하는 질서라는 사실을 이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87년 체제 안에서 수구보수 세력을 약화시키고 자신들이 계속 집권하면 “만사 오케이”라고 생각한다. 또는 노무현처럼 수구보수 세력과 공존하면서 정권을 교체해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을 진보로 수구세력을 보수로 포장하여 호명한다. 그리고 공존하면서 대립하는 존재로 인정한다. 심하게는 적대적으로 공존하는 관계로서 이 관계를 선호한다.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이들은 이 87년 체제의 수혜자들이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이들은 국가권력을 가질 수 있었고 물질적 부도 향유할 수 있었다. 이들은 지식 엘리트로서 지배층에 진입했거나 중산층에 진입했다. 여기에는 육체노동자의 상층부(대기업과 중견기업 정규직)도 포함된다.
문제는 이 파쇼체제에 대해 사회운동 좌파는 파쇼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면 사회운동 우파는 파쇼적 요소를 ‘개혁’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파쇼 체제를 혁명해야 할 그 무엇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들의 개혁주의이다.
이들은 87년 체제 하에서 정치권력을 전취하고 개혁을 해나가면 파쇼는 극복된다고 보며, 그럼으로써 87년 체제의 왼쪽 날개가 되고자 한다. “내가 집권하고 있으므로 국가보안법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라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폐기한 노무현의 발언이 이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들은 87년 체제 즉 천민자본주의 파쇼체제를 혁명적으로 타파하는 것에 반대하며, 기본적으로 그 체제를 유지하려고 하는 체제내적, 보수적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천민자본주의 파쇼체제로 인해 모순이 누적되어 있음을 모르지 않기 때문에 “세상을 바꾸자”거나 무슨무슨 ‘혁명’이라거나 하는 수사를 사용해서 민중을 기만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사회운동 좌파와 우파 모두와 생각을 달리 한다. 좌파는 대체로 노동자의 경제투쟁을 중시하며 반파쇼 정치투쟁을 경시한다. 좌파 일부에서 반파쇼 투쟁의 의의를 인정하기는 하나 그것을 하나의 혁명 과제로 사고하지는 않는다. 우파는 대체로 자주·민주·통일을 내세우며 반파쇼 민주화 투쟁의 의의를 인정한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그것을 하나의 혁명 과제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이런 이유로 사회운동 우파는 민주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면서 민주대개혁을 추구하고 있다. 이로써 이들은 모두 ‘사회대개혁’에 동의한다, 다만 좌파가 좀 더 친 노동적이라면 우파는 상대적으로 좀 더 친자본적이다.
사회운동의 목표와 방향에 대한 이런 차이가 전술적인 차이를 빚어내고 있다. 우리는 이번 윤석열의 친위 군사쿠데타를 천민자본주의 파쇼체제를 혁명하고 변혁하는 계기로 간주한다. 그러나 좌파든 우파든 사회운동의 대부분은 이 사태를 87년 체제 안에서 민주·진보세력의 입지를 키우고 수구보수세력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계기로 생각한다. 우파는 민주당이 집권하는 기회로 생각한다. 좌파는 “죽 쒀서 개주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권력 대안이 없기 때문에 ‘사회대개혁 특위’에서 친 노동적 의제를 담아내는 데 급급하다.
4. 민주당과 친민주당 사회운동의 전술: 하야의 길에서 탄핵 길로
이들의 전략은 요구 수준을 최대한 낮추어 목표실현을 쉽게 하자는 것이다. 그 요구가 정치경제적으로 얼마나 유의미한가는 둘째 문제이다. 말하자면 최소저항노선이다. 이들의 이데올로그인 김태일은 “탄핵을 넘어 사회개혁으로”와 “최소강령 최대연합”을 주장해 왔다. 이때의 최소강령은 혁명 안에서의 최소강령이 아니고 개혁 안에서의 최소강령이다. 이런 입장의 구체적 표현이 윤석열 퇴진과 사회대‘개혁’이었다. 이것은 제 사회운동권(시민운동과 민중운동, 좌파외 우파를 망라해서)이 윤석열 퇴진을 목표로 총결집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제안은 윤석열의 내란이 기도되기 이전에는 성사되지 못했다. 친 민주당이 이외의 사회운동은 여기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윤석열의 내란 이후 분위기가 일변해서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의 결성으로 성사되었다. 이런 개혁적 최소강령주의 전략에 따르는 전술노선은 로우-키(Low key)이다. 이 또한 요구 수준을 최대한 낮추어 목표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윤석열 즉시 사퇴(하야)를 배제하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 사태를 해결하는 것 즉 탄핵에 집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사회대개혁 수준을 민주당의 대선공약 수준으로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투쟁방향은 전략적으로만 아니라 전술적으로도 잘못되었다. 지금 조성된 정세는 87년 체제 안에서의 권력경쟁 국면이 아니다. 지금은 윤석열의 내란으로 인해 조성된 매우 특수한 정세로서 현재의 정치경제체제가 경성 파쇼체제로 후퇴하느냐 아니냐가 문제로 되고 있는 국면이다. 따라서 일차적으로는 이런 경성 군사파쇼 체제를 기도한 세력(국힘당 내 친윤파)을 고립시켜서 척결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것이 최소강령이 되어야 하고 이것에 함께 할 수 있는 세력을 최대한 광범위하게 연합해야 한다. 그러므로 최대연합 안에는 개혁신당은 물론이고 국힘당 안에서 현 체제를 경성파쇼체제로 되돌리려는 내란세력·반란세력(김탁환 칼럼.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여당과 야다의 대립이나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아니다. 무장 군인을 앞세워 민주공화국을 깡그리 짓밟으려 한, 반국가 세력이자 체제전복세력에겐 단 한줌의 미래도 용납해선 안 된다”)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포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태일의 최소강령과 최대연합은 현재의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 이번에 일어난 경성 파쇼체제를 향한 친위 군사쿠데타는 보수양당의 권력분점과 제왕적 대통권력 체제라는 87년 체제가 한계를 드러낸 데서 비롯되므로 이 체제를 해체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통치체제를 수립하는 것을 전술적 최대강령으로 설정해야 한다.(그러나 이것은 거시적 사회혁명의 관점에서 보자면 최소강령이다) 그것이 바로 천민자본주의 파쇼 정치경제 체제의 타파이고 그것의 하위 권력체제로서 87년 체제의 해체이다. 그러면 “최소강령 최대연합과 사회대개혁”은 이번 윤석열의 내란이 없었으면 타당한 전술인가? 아니다. 윤석열의 친위쿠데타가
이 투쟁방향은 전략적으로만 아니라 전술적으로도 잘못되었다. 지금 조성된 정세는 87년 체제 안에서의 권력경쟁 국면이 아니다. 지금은 윤석열의 내란으로 인해 조성된 매우 특수한 정세로서 현재의 정치경제체제가 경성 파쇼체제로 후퇴하느냐 아니냐가 문제로 되고 있는 국면이다. 따라서 일차적으로는 이런 경성 군사파쇼 체제를 기도한 세력(국힘당 내 친윤파)을 고립시켜서 척결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것이 최소강령이 되어야 하고 이것에 함께 할 수 있는 세력을 최대한 광범위하게 연합해야 한다. 그러므로 최대연합 안에는 개혁신당은 물론이고 국힘당 안에서 현 체제를 경성파쇼체제로 되돌리려는 내란세력·반란세력(김탁환 칼럼.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여당과 야다의 대립이나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아니다. 무장 군인을 앞세워 민주공화국을 깡그리 짓밟으려 한, 반국가 세력이자 체제전복세력에겐 단 한줌의 미래도 용납해선 안 된다”)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포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태일의 최소강령과 최대연합은 현재의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 이번에 일어난 경성 파쇼체제를 향한 친위 군사쿠데타는 보수양당의 권력분점과 제왕적 대통권력 체제라는 87년 체제가 한계를 드러낸 데서 비롯되므로 이 체제를 해체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통치체제를 수립하는 것을 전술적 최대강령으로 설정해야 한다.(그러나 이것은 거시적 사회혁명의 관점에서 보자면 최소강령이다) 그것이 바로 천민자본주의 파쇼 정치경제 체제의 타파이고 그것의 하위 권력체제로서 87년 체제의 해체이다.
그러면 “최소강령 최대연합과 사회대개혁”은 이번 윤석열의 내란이 없었으면 타당한 전술인가? 아니다. 윤석열의 친위쿠데타가 없었다면 우리 노동계급과 민중은 천민자본주의 파쇼 체제 안에서 수구보수를 꺾기 위해 자유주의 보수의 편에 총결집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현 체제의 차악 세력에게 모든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서 낡은 체제를 재생산하는 데 복무할 뿐이기 때문이다. 노동계급과 민중은 천민자본주의 파쇼체제를 타파하고 보수양당 독재를 타도하는 급진민주주의혁명을 사회혁명의 최소강령으로 하여 투쟁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최소강령 최대연합과 사회대개혁의 결합은 어느 모로 보나 사회와 역사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는다. 이런 비판적 관점 하에서 민주당과 ‘비상행동’의 투쟁을 되돌아보겠다.
민주당은 계엄령을 무산시킨 직후 윤석열의 즉시 하야를 국민의 명령으로 요구했다. 그 이전 민주당과 혁신당은 국회에서 윤석열 탄핵 국민청원을 받아들여 윤석열 탄핵 청문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니까 민주당과 야권은 윤석열과 김건희의 국정문란을 고리로 그를 탄핵하겠다고 압박해 왔다. 그 끄트머리에 김건희 특검법이 놓여 있었고, 거기에는 명태균과 관련된 폭발성 있는 부분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 법안이 한동훈의 ‘배반’으로 국회에서 통과될 듯하자 윤석열은 허겁지겁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친위 군사쿠데타를 기도했다. 그리고 다행히 그 기도가 무산되자 민주당은 즉각 탄핵 추진으로부터 하야 요구로 전환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과 야권은 이후 동요한다. 민주당은 12월 7일 국회에서 윤석열 탄핵안이 불성립으로 부결된 직후 이렇게 입장을 정리한다. 민주당은 12월 9일 최고위 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탄핵돼 권한이 정지되거나 사임하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 등의 수사를 받을 경우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이 대표는 그 회의에서 ‘대통령이 구속되면 직무가 정지돼냐’고 물었고 검사 출신 김철현 최고위원은 ‘현실적으로 옥중에서 집무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때까지지만 해도 민주당은 이렇게 구속을 배제하고 탄핵과 즉각 사퇴(즉 하야) 두 방도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었다.
12월 11일까지는 이러한 전술기조가 점차 탄핵 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사태를 해결하라는 내외의 압력이 있었다. 또 성사 여부가 불확실한 즉시 하야보다 조속한 탄핵을 통한 조기대선이 민주당의 집권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런 고민의 결과가 12월 11일 ‘비상행동’ 출범 선언문에서 하야를 배척하고 탄핵과 구속의 전술노선을 선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상행동’은 1) 탄핵, 2) 체포와 구속 그리고 3) 국힘당 해체를 주요 목표로 설정했다. 사실 그 이전에도 탄핵이 아니라 즉시 하야를 주장하는 12월 9일자 우리의 홍보물 배포에 대하여 집회현장에서 민주당 측으로 보이는 인사들의 방해가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요구인 ‘즉시 하야’를 국힘당에서 말하는 ‘질서 있는 퇴진’과 등치시키고 자신들이 계엄 해제 직후 주장했던 즉시 하야는 없었던 일처럼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그러나 ‘즉시 하야’는 계엄해체 직후 자신들 뿐 아니라 개혁신당 측에서도 요구한 바 있다.) 그 후 민주당과 ‘비상행동’의 이러한 기조는 계속됐다.
그러나 대통령 사퇴 즉 하야가 자리에서 물러나 시골에 내려가 편히 사는 것이라는 둥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는다는 둥 하는 이유로 하야에 반대하고 탄핵에 찬성하는 논리는 궁색하기 그지없었다. 민주당의 국회탄핵소추단 단장인 정청래 의원이 일전 국회에서 여당과 공방을 벌이면서 내란죄가 아니라 헌법위반으로 탄핵돼도 그것이 끝이 아니고 형사재판으로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라고 발언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민주당과 ‘비상행동’은 왜 하야 즉 대통령의 사퇴는 처벌 없이 시골 가서 편히 사는 것이라고 말했는가? 오직 탄핵의 길을 정당화하기 위한 강변이었던 것이다.
한편, 12월 7일 비상계엄 선포를 사과하는 담화문까지 발표했던 윤석열이 12월 12일 내란을 인정하기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겠다”는 장문의 담화문을 발표하고, 이에 국민들이 격하게 분노해서 더욱 크게 결집함으로써 그에 힘 받아 두 번째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그러자 민주당과 ‘비상행동’은 “이제는 헌재의 시간”이라고 선언했다. 탄핵 구호는 파면 구호로 바뀌었다.
그러나 2차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데는 윤석열의 내란죄 부인이 크게 작용했다. 윤석열의 내란 합리화와 또 다른 내란 기도를 막기 위해서는 일단 그의 직무를 정지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 국회의 탄핵소추 결정이 필요하다는 범국민적 공감대가 있었다. 따라서 ‘비상행동’은 일단 윤석열의 직무를 정지시켜 급한 불을 끈 만큼 그 여세를 몰아 윤석열을 즉각 사퇴(하야)시키는 노력을 강구했어야 했다. 그를 위해서는 국회 안에서 탄핵에 찬성했거나 당론에 묶여 찬성하지 못하고 기권한 의원들을 규합하여 윤석열의 즉각 사퇴(하야)를 요구하는 정치연합을 구성하는 공작이 필요했다. 이것은 윤석열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고 국회에서 2/3를 확보하는 데 꼭 필요한 방략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회 밖에서 윤석열 즉각 사퇴(하야)를 요구하는 광범위한 민중의 항쟁을 조직하는 것이 필요했다. 즉 ‘헌재의 시간’이 아니라 ‘광장정치의 시간’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비상행동’은 이런 길을 걷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들은 ‘조속한’ 탄핵과 그것을 통한 ‘조기 대선’의 길을 걸었다. 거기에 대중의 투쟁 욕구를 적절하게 받아 안는 요구로서 체포와 구속, 특히 체포 요구를 결합했다. 이들의 이런 전술기조는 이들이 민중의 절실한 이해와 요구(즉 윤석열 즉각 사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을 자신들의 정파적 이해와 요구, 즉 집권 욕구에 동원하는 집단임을 다시 한 번 더 확실하게 입증했다.
우리는 투쟁의 장소를 광화문과 헌재 사무소가 아니라 윤석열이 죽치고 있으면서 쿠데타를 계속 선동하고 있는 현장인 한남동 관저 부근으로 할 것을 주장해 왔다. 상시적으로 투쟁할 지점은 사태의 전개에 따라, 특히 공수처의 체포영장 발부 및 집행 시도에 따라 한남동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요구는 윤석열 즉시 하야가 아니라 윤석열 체포와 구속이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이것은 민주당의 초기의 전술에서 수정된 것이다. 이재명은 9일까지만 해도 구속은 윤석열의 직무를 정지시키지 못하므로 실효성이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일단 윤석열이 국회의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된다면 체포와 구속이 윤석열의 사퇴(하야)를 압박하는 유효한 방법으로 재평가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하여 민주당과 ‘비상행동’의 전술 기조는 탄핵심판 + 체포·구속 촉구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한 달 가까이 탄핵과 체포 등 헌법과 법률에 따른 사태해결을 추구해온 결과 윤석열에게 시간을 벌게 해 주었다. 이 전술은 헌법과 법률에 의한 문제해결 즉 정치의 사법화였다. 이에 맞서 윤석열은 사법의 정치화를 꾀했다. 그는 사법적 해결을 방해하면서 이번 사태가 이재명의 권력추구에서 비롯됐음을 집요하게 폭로하고 있다. 그리고 이재명이 사법 리스크를 피하고자 김건희 특검과 윤석열 탄핵을 기도했음을 강조했다. 이런 자신의 주장에 동조하는 세력을 관저 주변으로 결집시켰다. 그는 사법을 정치화한 것이다. 그 결과 12.3 내란이 달포가 지난 지금 윤석열의 지지율은 내란 이전보다 오히려 높은 이변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 1월 2일 ‘여론조사 공정’이 더퍼블릭·파이낸스투데이 공동으로 자동응답전화조사로 조사한 결과 윤석열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34.3%로 집계됐다.(디지털타임스 보도) 심지어 40%에 달한다는 보도도 있다.(한국여론평판연구소. 이 수치는 분명히 과장됐을 것이다.) 반면 탄핵에 대한 찬성은 78%에서 69%로 낮아지고 있다.(경향신문, 메타보이스, 12월 31일) 요컨대 우리가 우려했던 대로 윤석열은 정치적으로 기사회생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우리가 12월 9일자 홍보물 “윤석열 즉시 하야! 임시(과도)정부 수립!”이라는 제하의 홍보물에서 경고하고 예고했던 것이다.
이런 추세는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헌법과 법률에 의한 사태 해결 즉 각종 국가기구들에 의한 사태해결은 지지부진하다. 체포·구속은 공수처의 무책임과 무능으로 1차 실패했다. 공수처는 우왕좌왕 끝에 체포영장을 재차 발급받아(1월 7일) 2차 체포를 시도하겠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2차 체포시도가 성공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친 윤석열 세력의 기세는 높아지고 있다.
이런 문제는 헌법재판소 탄핵소추에서 내란죄를 제외하는 수정을 함으로써 더욱 심화되고 있다. 헌재는 조속한 탄핵절차를 밟고자 하는 것으로 보이고, 이런 기조 하에서 윤석열 측의 재판지연 전술에 구애받지 않고 재판을 진행하려 하고 있다. 변론준비기일을 두 차례 진행했고 5차례의 변론기일과 헌법재판관 임명 권한쟁의 심판 변론 등 재판일정도 결정했다. 이렇게 변론준비기일을 거치는 과정에서 헌재 측은 우회적으로 탄핵소추안에서 내란죄를 제외하는 것을 검토하라고 국회 측에 제의했다. 국회 측은 이 제의를 권고로 받아들여 채택했다. 이렇게 되면 헌재 심리는 속도를 내게 되고 잘하면 벚꽃 대선이 이루어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내란죄가 헌재의 판결에서 제외되면 조기 파면과 대선이 이루어질 때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가 내란인지 아닌지가 최대의 쟁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 사이에 이재명 항소심 재판이 진행된다면 이재명이 유죄냐 윤석열이 유죄냐 하는 싸움으로 전개될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 비록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국힘당과 내란세력은 궤멸되지 않고 살아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보수양당이 권력을 독(분)점하면서 노동계급과 민중을 파쇼적으로 통치하는 자본독재 체제 즉 87년 체제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과 친 민주당 사회운동은 이것을 승리라고 평가할 것이다. 윤석열이 형사법정에서 내란수괴로 판결 받는다면 박근혜 구속 때처럼 적폐를 청산하며 기세를 올릴 것이다. 그리고 이해찬이 호언장담했듯이 100년 집권을 전망할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이 적폐청산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과 민중의 삶은 달라지지 않고 5년 임기 끝에 정권을 넘겨주었듯이 또다시 내란세력 청산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민중의 지옥같은 삶은 계속되고 민주당은 수구보수 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주게 될 것이다.
5. 급진 민주주의 혁명의 전략과 전술
전략의 전환 없이 전술의 전환은 없다. 진보적 사회운동은 체제내적인 개혁주의 정당인 민주당과 거리를 두고 독자적인 목표를 세워야 한다. 민주당은 본질적으로 내외 지배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과두정치세력의 한 축임을 직시해야 한다. 더 이상 이 정당에게 진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친 민주당적인 경향을 갖는 중산층과 기득권 노동자층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지 말고 기층 노동자·민중의 시각에서 즉 흙수저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한국사회가 헬조선임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비록 낮은 수준에서이지만 혁명과 변혁에 의거하지 않고는 한국사회의 켜켜이 쌓여 있는 문제들은 결코 해결은커녕 개선될 수조차 없음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반세기만에 친위 군사쿠데타로 체제를 전복하려는 획책이 진행되고 있는 이 역사적 순간에 우리는 정권을 국힘당에서 민주당으로 넘겨주는 찻잔 속의 태풍을 일으키는 데 머무르고 말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죽 쒀서 개주는 것”이다.
며칠 전 사회개혁 특위에서 박석운 ‘비상행동’ 공동의장은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말했다. ‘비상행동’에서 논의하는 의제들이 실현되려면 민주당의 집권을 통해서 할 수밖에 없다고. 그러나 그렇게 민주당을 통해 해결되는 개혁과제는 문재인 정권이 선거공약으로 담아낸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또 인천지역의 한 진보당 활동가는 윤석열 퇴진투쟁에 주력해야지 사회대개혁 논의에 주력하는 것은 정세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말들에서 보듯이 친 민주당 사회운동은 현재의 정치경제 체제를 변혁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윤석열 정권을 퇴진시키고 민주당 정권을 수립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노동계급의 이해와 요구는 생존권 투쟁 수준에서만, 그리고 정치적으로 수렴하는 경우 기껏해야 조합주의적 정치의 수준에서만 하려고 한다. 세상을 바꾸려면 이것부터 바꾸어야 한다. 진보적 사회운동은 친자본 민주주의 개혁으로부터 반자본 민주주의 혁명으로 전략노선을 전환해야 한다. 이 지점은 여러 차례 말해 온 바이므로 이 정도에서 그치고자 한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그 87년 체제 즉 자본독재 체제, 자본 과두정 체제는 한국사회의 발전 상태와 너무나도 조응하지 못함으로 인해 극한적인 정쟁을 일삼다가 내란사태까지 빚었다. 이 체제는 지속될 수 없다. 이 체제는 기필코 무너질 것이다. 이것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은 통찰력의 결핍이다. 윤석열이 기도한 군사 파쇼체제가 한국사회에 들어서고 유지될 수 있을까? 이재명과 민주당이 추구하는 가짜 진보 정권이 지속될 수 있을까? 그들은 오직 상대방의 부정성 덕분에 존립할 뿐 아무 헤게모니도 없다. 지금은 ‘헤게모니 공위(空位: interregnum)’의 과도기이며 격변기이다. 최근 세계 유명인사가 된 테슬라 자동차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도 한국의 현 상황을 ‘난세’라고 묘사했다. 전 국무총리 정운찬은 “난세에 영웅이 필요하다. 나는 어느 시대에나 백마 탄 초인이 나타난다고 믿는다. 그를 맞을 준비를 하자. 그리고 우리 각자가 초인이 돼 보자”고 어느 일간지 칼럼에서 썼다.
전략적 목표를 급진 민주주의 혁명으로 설정한다면 전술적으로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 첫째 진보적 사회운동은 초지일관 윤석열의 즉각 사퇴 즉 즉시 하야를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윤석열 정권 타도 이후의 권력이 민주당의 집권이 아니라 민중권력 수립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런 권력 대안이 없는 모든 정치전술은 공허하다. 그것이 없으면 결국 ‘비상행동’ 박석운 공동의장의 말처럼 우리 노동계급과 민중은 자신의 미래를 민주당 집권에 의탁해야 한다. 그것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헬조선의 삶이 계속됨을 의미한다. 민중권력이 수립되었을 때에만 비로소 노동계급과 민중의 주도 아래 헬조선을 끝장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정직한 현실 인식이다.
둘째, 민중권력을 수립하는 일은 민중항쟁이 없이는 실현되지 못할 것이다. 민중항쟁으로 윤석열 정권이 무너진다면 임시(과도)정부가 수립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헌정을 중단하지 않으면서 ‘제7공화국’ 수립 운운하는 것은 공허한 말장난이다. 제6공화국은 6월 민중항쟁으로 전두환을 정점으로 하는 경성(硬性) 군사파쇼 체제가 패퇴함으로서 탄생했다. 그것은 전두환 헌법의 중단이었다. 체육관 선거가 없어지고 대통령 직선제가 채택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전두환이 정권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여야 합의로 개헌이 이루어졌다. 노동계급과 민중은 이 과정에서 1노3김에게 동원되었을 뿐이고 내용적으로는 배제되었다. 그 결과가 보수양당 독재(과두정), 제왕적 대통령제를 특징으로 하는 87년 체제의 지속과 그로 인한 한국사회의 헬조선화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노동계급과 민중의 역할과 나아가 주도성이 보장돼야 한다. 그 방도가 기성 보수 정치세력들 사이의 담합을 배제하고 노동자·민중의 의사와 요구가 반영된 과도권력 즉 임시정부를 세우는 것이다.
임시(과도)정부를 세워야 할 필요성은 조금만 생각해도 불가피하다.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나 그를 대행하는 최상목 권한대행 체제나 윤석열 없는 윤석열 체제이다. 이들이 행정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쿠데타 세력에 대한 사법적 처리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한다. 경호처가 윤석열 체포를 가로막고 있다. 권한대행은 특검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상설특검 후보 추천을 의뢰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최상목 권한대행을 탄핵소추하면 지배계급은 국정을 마비시킨다고 맹공할 것이다. 민주당과 비상행동은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 이럴 때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자세로 나아가지 못하면 결국 내란세력 척결은 실패할 것이다.
셋째. 임시정부가 쿠데타 세력을 척결하고 제헌의회를 소집하여 헌법을 새로 제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새 헌법에 따라 권력구조와 통치체제를 근본적으로 새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공허한 수사가 아니라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쿠데타 세력 척결은 문재인 정권의 적폐 청산 같은 방식으로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인적 청산과 더불어 제도적·체제적 개조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제도적·체제적 개조는 뒤로 미루고 검찰을 앞세워 인적 청산에 치중한 결과가 윤석열의 검찰총장화이고 그의 검찰개혁 거부와 이를 통한 윤석열의 등극이었다.
제헌의회 소집은 어떻게 가능한가? 현행 헌법에는 국민의 저항권이 보장되어 있지 않고 그와 연동되어 현행 헌법에 의거한 개헌 이외에는 민중의 요구에 의한 질적으로 다른 개헌 즉 제헌의 길은 가로막혀 있다. 이 장벽을 깨뜨려야 한다. 질적으로 새로운 민주헌법 즉 제헌은 현재의 국회가 아니라 제헌의회 소집을 통해 추진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 현행헌법에 제헌의회 소집에 관한 절차규정을 추가하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행헌법의 절차에 따라 원 포인트 개헌을 하면 될 것이다. 이것은 내용적으로는 헌정중단이면서 형식적으로는 헌정중단이 아닌 방식이라 할 것이다. 칠레에서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제헌의회가 소집된 바 있다. 그 밖의 중남미 나라들의 경험도 참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급진적 변화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면 물아보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윤석열 체포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윤석열이 임명한 경호처장은 국가에 충성하지 않고 개인 윤석열에 충성하여 공수처의 합법적인 윤석열 체포를 방해하고 있다. 법률에 의거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정치로 해결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법률로 할 일이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최상목을 비롯한 장관들을 모조리 탄핵해서 추방해야 한다. 경호처장이나 안보실장, 대통령실장 같은 쿠데타 동조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행정권력이 공백상태가 될 것이다. 그것이 두려우면 반윤석열 세력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헌재에서 탄핵소추안이 인용되는 것을 학수고대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발상을 바꾸어 쿠데타 세력을 권력에서 추방하면 임시(과도정부)를 수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야 무정부 상태를 면할 것이다. 민주당과 친 민주당 사회운동은 임시(과도)정부가 자신들의 권력이 되게 하려고 욕심내지 말아야 한다. 그들도 민중으로부터 경원시되는 혐오대상이 아니었던가? 민주당과 비 쿠데타 보수세력(이준석, 한동훈, 안철수, 유승민 등)이 겸손하게 손을 잡고 윤석열 즉시 하야와 임시정부 구성에 대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리고 친 민중적이고 제 정당과 정파에 중립적인 인물로 임시정부 수반을 삼아야 한다. 가능하면 국민투표로 동의를 받도록 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해서 제헌의회를 수립하고 이렇게 하여 제정된 새 헌법 안에서 제왕적 대통령 행정권력을 국민과 민중의 권력으로 회수하고(입법부와 나누어 갖거나 지방자치체에 나누어주는 식이 아니라), 보수양당이 의회권력을 독과점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국회의원 비례대표제를 과감하게 도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제의 경우에도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여 소수 정치세력도 정치권력에 참여할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노동자·진보정당이 의회권력과 행정권력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의회에서는 노동자·민중의 대표가 다수당이 되고, 노동자·민중의 대표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간평가제 등을 도입하면 대통령의 전횡을 국민과 민중이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처럼 선거 때에는 ‘공정과 상식’을 내세워 표를 얻고 당선 후에는 입을 싹 씻고 취임식에서 느닷없이 ‘자유와 연대’를 기치로 내세우고 파쇼통치로 내달리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사회단체의 정치활동을 자유화하고 경찰과 군인의 정치활동 자유도 보장해야 할 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서는 군인에게 정치활동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그래야 그들 국가기구 종사자들이 쿠데타와 파시즘의 도구가 되지 않을 것이다. 또 사상의 자유에 족쇄를 채우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에 족쇄를 채우는 노동악법을 철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기 위해 검사에 대한 인사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든지 하는 방법도 채택할 수 있을 것이다. 멕시코처럼 판사의 국민선출제를 도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 제정되는 헌법에는 노동자·민중의 생활상의 권리도 매우 구체적으로 충실하게 보장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병원·의원 국영화와 무상화, 대학을 비롯한 모든 교육기관의 전면 국영화와 무상화, 전월세 주택의 몰수와 재분배 및 택지 국유화, 노인 기초연금 월100만원 지급, 노동 내부 불평등 해소를 위한 독점재벌 해체와 차별금지법 제정 등등.
지금이야말로 내란세력을 제외한 모든 애국세력이 머리를 맞대고 힘과 지혜를 발동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치욕스러운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세간에서 사라질 것이다. 정운찬의 말처럼 우리 모두 영웅이 되자. 소영웅이 아니라 전태일 같은 진짜 영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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