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 연구소
정세와 투쟁방향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의 <정세와 투쟁방향>입니다.

분석 | 민주노조운동 혁신 토론회 발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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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9-03 15:33 조회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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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운동 혁신 토론회 발제문

 

1. 평가: 성공과 실패

2. 성공과 실패의 원인

3. 대안?

4. 대책?

 

1. 성공이냐 실패냐?

 

1) 평가의 기준과 개념

 

a. 계급형성

계급형성이란 “노동자 대중이 단순히 노동력을 팔고 임금을 받는 임금노동자가 되는 것을 넘어, 스스로 하나의 집단임을 깨닫고 사회적·정치적 주체로 성장하는 역사적 과정이다.” 이와 관련하여 마르크스는 즉자적 계급과 대자적 계급을 구분하여 단순히 자신의 집단적 이해관계를 자각하는 것을 넘어 역사적 사명을 자각하는 노동자 대중을 대자적 계급이라고 하고 그렇지 못한 상태의 노동자 대중을 즉자적 계급이라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아직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노동조합으로 단결한 노동자 대중은 여전히 즉자적 계급의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일정한 계급적 자각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노동계급 형성을 노동조합으로 단결하는 차원과(이것은 노동계급에 속한다는 의식이 낮거나 없는 대중까지 포괄한다. ‘피고용인’1) 의식을 가지고도 단결할 수 있다.)과 정치운동체의 주위에 결집하는 차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정치운동체를 형성하고 그 주위에 결집한 노동자 대중은 그 자체로 대자적 계급이 된 것은 아닐지라도 대자적 계급의 되는 첫걸음을 떼었다고 볼 수 있다.2)

 

b. 계급역량과 계급역관계

계급역량은 계급형성으로 확보한 힘을 말하며, 노동계급이 집단적 행동을 조직하고 실행하여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잠재력과 실제적 능력이다.

계급역관계는 노동계급의 역량과 자본가계급의 역량 사이의 상대적 힘의 균형이나 우열관계를 말한다. 이 관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사회·역사적 투쟁과 경제적·정치적 정세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바뀌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c. 사회질서(체제)의 변화와 생활상태 개선

여기서 말하는 사회질서의 변화는 조성된 계급역관계 하에서 형성된 계급역량을 사용하여 현존의 사회체제를 개혁 또는 변혁하는 것을 말한다.3) 생활상태의 개선은 사회질서의 변화에 의한 것이든 그 밖의 요인에 의한 것이든 계급역량의 향상과 결부되어 이루어진 생활상태의 개선을 말한다. 이것들은 노동운동이 존재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두 가지이다.

 

2) 민주노조운동은 계급형성에 성공했는가?

 

여러 학자와 노동운동가들이 한국의 노동운동은 계급형성에 실패했다고 평가한다. 사회진보연대에서에서 발행한 『한국노동운동사』(박형준, 2025)가 그렇고, 조돈문 교수의 『평등사회 프로젝트』(2026)가 그렇다. 필자는 큰 틀에서 이들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런 견해를 갖는 근거를 이하에서 살펴보겠다. 계급형성에 대한 고찰은 경제사회적 차원과 정치적 차원으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그리고 이 글의 주제가 갖는 한계로(민주노조운동에 대한 평가라는) 정치적 차원에 대해서도 민주노조운동의 정치세력화라는 시각에서 고찰하겠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계급형성의 두 차원 가운데 정치적 차원에서 그 실패가 매우 두드러진다. 그렇다고 경제사회적 차원에서 성공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래서 총체적인 실패다. 

 

a. 사회경제적 계급형성

이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는 노동조합 조직률이다.4) 둘째는 노동자의 계층별 구성이다. 셋째는 조직된 노동자의 의식과 실천력이다. 

 

<1> 낮은 조직률

한국 노동조합 조직률은 세계적으로 낮다. 정부 통계로 13%라고 하지만 분모가 과소 책정되어 있어 값이 과대하게 나타난 것이다. 정부 통계에 조직대상 노동자를 2024년 말 현재 2천1백만 명 정도(21,375천명)로 잡고 있다.5) 그러나 이 통계의 노조 조직대상자 수에는 여러 종류의 노동자가 포함되지 않고 있다. 첫째, 2024년 12월 기준 경제활동인구 2,915만6000명의 3.8% 약 111만5천 명의 실업자가 포함되지 않았다. 둘째, 고용통계에서 252만4,000만 명의 ‘쉬었음’, 35만8,000명의 구직단념자(그 밖에 60만8000명의 취업준비자도 넓은 의미에서 노동자다.)는 비경제활동인구라며 실업자 계산에 빠져 있다. 이들도 조직대상 노동자에 포함돼야 마땅하다. 셋째, 약 210만 명으로 추산되는(최대 870만 명이라는 추정도 있다.) 특수고용·플렛폼·프리렌서 노동자도 포함되지 않았다. 넷째, 이주노동자 110만 여명이 포함되지 않았다.6) 이들을 다 포함한다면 조직대상 노동자는 대략 2천8백57만 명에 이를 것이며, 조직률은 9.7%에 불과할 것이다.(정부 공식 통계로 2024년 말 기준 조직노동자는 277.7만 명 수준이다.) 만약 특수고용노동자 수를 2백만 명 이상으로 더 늘려잡는다면 조직률은 더욱 낮아질 것이다.

이것은 노조활동 규제법인 태프트-하틀리 법7)으로 노조활동 하기가 어려운 미국 다음으로 낮은 수치이다. 미국의 노조 조직률은 9.9%로서 OECD 나라들 가운데 가장 낮은 한자리수이다. 이것은 노조 조직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인 스웨덴의 70%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결론적으로 민주노조운동은 사회경제적 계급형성에서 실패했다. 물론 이와 같은 낮은 조직률과 그것의 이면인 사회경제적 계급형성 실패는 민주노조운동만의 책임은 아니다. 그것은 한국노총을 포함한 전체 노동조합운동의 책임이고 실패이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이 사회경제적 계급형성의 주역으로서 제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면 민주노총 조합원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노조 결성과 가입이 늘어났을 것이라는 점에서 민주노조운동의 책임이고 실패이다. 한국노총은 오래된 어용의 구태를 다 벗어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자주적 노동운동단체로서의 성격은 아직 부족한 반면, 민주노총은 공공연히 양대 노총으로 불릴 만큼 양적·질적으로 노동운동 안에서 주도적 위치를 확보했음에도 전체 노동자의 조직화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당하게 들릴 수 있다. 성공했는데, 실패했다고 하니까! 그러나 이것은 민주노조운동이 자신의 위상을 높이는 데 노력한 데 비해 광범위한 기층 노동자의 조직화에 응분의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음을, 그 일에 성공하지 못했음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역사적 사명에 비추어말하는 것이다. 

물론 노조 조직률은 노동운동의 역할에도 영향 받지만 자본과 정권의 공세와 탄압 여하에 의해 억제되기도 한다. 민주노총 시기가 갑자기 군사파쇼 통치로 되돌아가 무단적 탄압이 가해진 것이 아닌데도 이렇게 조직률이 낮아진 것은 자본과 정권의 신자유주의 공세와 탄압 탓이 크다. 그러나 자본과 정권의 공세와 탄압은 노동조합의 조직률 상승과 침체에 있어서 항상 존재하는 상수라 할 수 있다. 노동계급 정권이 아닌 자본계급 정권 하에서 정권이 노조를 지원해서 조직률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은 예외적이다. 자본이 노조 조직률 상승에 호의적인 것은 더욱 예외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과 정권의 반노조 정책이나 탄압으로 노조 조직률이 저하하고 낮은 수준에 머물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변호론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노조 조직화를 방해하는 노동악법이 문제라면 노동악법을 철폐하기 위해 가열차게 투쟁했어야 하고, 자본과 정권의 공세와 탄압이 문제라면 정권퇴진과 민중권력 수립을 내세우는 역공세로 받아쳤어야 하는 것이다.

노동악법 문제를 짚어보자. 1993년 전노협을 대신하여 전노대(전국노동조합 대표자회의)가 민주노조운동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면서부터 노동악법 철폐투쟁은 사실상 사라졌다. 사무전문직 노조들에게 있어서 노동악법 문제가 절박하지 않았다. 이들은 상급단체가 합법화되고 있었다. 1995년 민주노총이 건설되면서 노동악법이 다시 중요해졌다. 민주노총은 현행법상으로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김영삼 정권의 노개위(노사관계개혁위원회) 당시에는 민주노조운동 안에서 노동악법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때 쟁점으로 부각된 것은 민주노총 합법화(3조5호) 및 노조의 정치활동 자유 보장 여부였다. 절대다수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문제는 뒷전이었다. 노동 측의 주된 요구가 그러했던 반면 자본 측의 주요 요구는 개별적 노사관계에서의 개혁(실은 신자유주의적 개악)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더해 집단적 노사관계에서의 개악이었다. 예를 들어 무노동무임금 법제화, 비공인 파업 불법화, 전임자임금지급 금지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자본이 노동기본권 개악에 전념한 반면 노동의 관심의 초점이 뽁수노조 금지 철페에 있었기 때문에 노동기본권인 노동3권을 온전하게 확보하기 위한 투쟁은 뒷전에 밀렸다. 그 결과 영웅적인 96~97 노개투 총파업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합법화는 실현되었으나 그것과 함께 노동시장 유연화와 집단적 노사관계의 개악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이후 노동악법 철폐 투쟁은 사실상 실종됐다. 1988년 11월 13일에 시작된 전국노동자대회는 전태일 정신 계승과 노동악법 철폐를 위한 것이었는데, 전태일 정신 계승도 그렇거니와 노동악법 철폐 요구는 11월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더 이상 전면에 내세워지지 않았다. 첫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내걸어졌던 현수막과 지금의 대회 현수막을 비교해 보라! 노동기본권과 관련하여 의미있는 성과가 있기는 했다. 쌍용자동차 파업을 계기로 손배·가압류의 부당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이후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조직화가 진행되면서 노조법 2.3조 개정(노란봉투법)을 요구하는 운동이 확산되었다. 그리고 이재명 정부 하에서 그 일부가 개정되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노동자가, 중소·영세·비정규 노동자들이, 아직 노동조합으로 단결하여 투쟁할 수 있는 권리를,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박탈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현실은 크게 문제시조차 되지 못했다. 

다음으로 자본과 정권의 탄압 문제를 짚어보자. 예를 들어 자본과 정권의 탄압이 문제라면, 1987~89년까지 노조 조직률이 빠르게 향상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때에는 자본과 정권의 탄압이 없었는가? 물론, 그 시기에 총자본이 정치적으로 수세에 있었고 3저 호황으로 경기도 호조를 보이고 있었다. 즉 정치적·경제적 정세가 노조 조직 확대에 유리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 시기의 노조 조직률 증가를 3저 호황 덕분으로 돌리거나 군사독재의 후퇴 덕분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경기호황이 노조 조직화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한 측면은 있다. 그러나 호황이 노조운동에 반드시 유리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이어지려면 자본의 노조탄압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그 시기에 여전히 군사독재 정권이 정권창출 절차만 바꾸어 통치하고 있었으며, 해마다 5백 명 내외의 노동자가 감옥에 끌려갔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열사가 되었다. 5공때보다는 적었다 할지라도 결코 노조탄압이 약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시기 노조 조직률의 빠른 증기는 주로 경기호황에도 불구하고 지속된 열악한 노동조건(그런 열악한 노동조건은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하는 지금도 기층 노동자들에게는 강제되고 있다.)과 그에 대응하는 노동운동의 과감한 공세에 그 원인이 있었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경기호황이나 자본과 정권의  탄압 같은 ‘객관적’ 요인보다는 넓은 의미에서 ‘주체적’ 조건에 그 원인과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2008년 미국 발 경제위기가 도래하기 이전인 노무현 정권 때도 노조 조직률은 10%대의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8) 이것은 노무현 정권의 극심한 노조탄압 때문일까? 탈권위주의를 내세우고 국정원의 일일보고도 받아보지 않던 노무현 정권이 국가기구를 동원하여 노조를 고강도로 탄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시기의 낮은 노조 조직률은 그보다는 개별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노무현 정권이 정책적·정치적으로 동조한 데 기인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9) 그리하여 이 시기에 한진중공업 김주익 열사를 비롯하여 다수의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이런 수준의 저강도 탄압에 한국의 낮은 노조 조직률의 원인을 돌리려고 한다면 노조 조직률은 언제나 지금처럼 낮아야 할 것이다. 노조 조직률의 오름과 내림이든 노동운동의 고양과 침체든 결정적인 요인은 노동계급의 계급투쟁 의지와 역량이다. 한국에서는 그런 계급투쟁력을 비롯한 계급역량이 1990년대 초부터 급격하게 와해되었다. 그것이 이 시기 이후 조직률 저조의 주요 원인이다.10) 이 지점은 뒤에 민주노조운동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고찰하면서 다시 살펴볼 것이다.  

 

<2> 노동자 내부의 양극 분절

한국 노동자는 지난 30년을 거치며 심각하게 분절화 되었다. 그 분절은 성별, 세대별, 고용형태별, 기업규모별로 다기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기압규모별 즉 대기업과 기타 중소영세기업 노동자 사이의 분절이다. 그 분절은 임금과 그에 따른 생활상태의 분절이다. 그리고 임금노동자의 생활상태는 임금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임금이 지난 30년을 거치며 극심하게 분절되어 버렸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100이라면 대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60 내외이고 중소기업 정규직의 임금은 50 내외이다.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임금은 30 안팎이다.(비정규직의 월 노동시간이 정규직보다 짧다.)11)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다수는 중소기업에 고용되어 있다. 대기업에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15% 안팎이라면 중소영세기업에서는 그 비율이 40%를 넘는다.12) 여성의 경우 중소사업장에 고용되어 있는 비율이 높고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많다.13) 청년의 경우도 사정이 약간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비슷하다.14) 이에서 보듯이 그냥 여성과 청년의 임금이 열악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다수가 중소·영세 사업장에 고용되어 있거나 비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있으며, 그에 따라 임금소득이 낮은 것이다. 그러므로 추상적으로 남녀격차나 세대별 격차를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을 제대로 말해주지 못한다. 이들은 임금에서 차별받기 이전에 고용에서부터 차별받거나 진입이 봉쇄된다. 이들이 받는 차별은 임금차별이기보다 고용차별이거나 고용절벽이다. 어느 규모의 사업장에 어떤 형태로 고용되느냐가 임금의 수준을 좌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향상되면, 그들과 대기업 정규직 간의 격차가 축소되면, 그렇게 되어야만, 청년과 여성의 차별적이며 열악한 노동조건도 개선될 거라고 봐야 한다. 이와 관련한 상세한 정부 통계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 대략적인 상황은 모두가 알고 있다.

이런 결과와 모습은 누구의 책임인가? 일차적으로는 자본의 책임이고 구체적으로는 한국적 독점자본인 독점재벌과 그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천민자본주의 국가권력의 책임이다.  이것을 단순히 신자유주의 때문으로 돌릴 수는 없다. 이렇게 모든 책임을 신자유주의에 돌리는 것은 독점재벌에게 면죄부를 주는 셈이 된다. 같은 신자유주의 공세 하에서도 이웃 일본과 한국의 대기업 중소기업 임금격차와 정규직 비정규직 임금격차가 크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경제체제(생산양식 수준이 아니라 그 하위에 있는 체제 즉 천민자본주의 체제냐 아니냐 하는 차이)에 있다. 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맥아더 사령부에 의해 재벌이 해체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박정희 정권이 재벌을 경제개발의 주역으로 삼아서 키웠다. 그러면 모든 책임이 신자유주와 천민자본주의에만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회에서 노동내부의 양극화가 이처럼 극심해진 데는 노동운동의 책임이 적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15)  그런 양극화가 독점재벌의 비정규직 초과착취와 중소영세기업 수탈 및 그에 따른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정규직과 특히 비정규직)에 대한 초초과착취에 있음에도 민주노조운동이 독점재벌과 맞서 정면으로 투쟁하지 않았다는 지점이다. 나아가 어떤 지점에서는 그렇게 초과착취와 수탈을 통해 전유한 재벌의 초과이윤을 분배받는 데 급급했다는 지점이다. 이것은 고의는 아닐지라도 결과적으로 노동운동이 재벌과 담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소득(및 자산)의 심각한 분절 상태는 계급형성의 실패를 보여준다. 노동자 대중이 하나의 계급을 형성한다는 것은 노동자들 사이에 일정한 통일성이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 것이 와해된다면 같은 임금노동자라고 하더라도 위이화감 때문에 하나의 통일단결된 집단을 형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도 관리직 노동자와 같은 지위와 역할의 차이에 다른 것이 아니라 비슷한 질의 노동에 대해 현격하게 차등적인 임금과 생활수준을 누린다면 더욱 불공정하게 느껴지고 따라서 서로 간에 일체감을 갖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한국 노동계급의 상태는 바로 그런 지점에 있다. 아니, 그런 방향으로 계속 진행되어 왔다. 자본은 언제나 노동 내부를 분절화하고 그를 통해 초과착취를 하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노동운동은 노동에 대한 자본의 착취를 완화하거나 폐지하기 위해 투쟁해 왔다. 동시에 노동내부의 분절을 통한 착취에 맞서 투쟁해 왔다. 그것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다. 자본의 그런 분절화는 취약 노동자에 대한 초과착취를 의미하는 점에서 타파되어야 하는 동시에 총자본과의 투쟁을 위해서 총노동으로 단결하기 위해서도 완화하거나(비정규직 차별철폐) 폐지(비정규직 철폐)되었어야 했다. 민주노조운동은 이를 위해 치열하게 투쟁해야 했다. 그런데 지난 30년의 노동운동은 사회 전체적인 착취도를 크게 개선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16) 노동내부 양극적 분절화를 극복하지 못했다. 어떤 측면에서는 그것을 심화시켰다. 이것은 노동계급 형성에 실패한 또 하나의 중요한 지점이다. 이런 심각한 임금격차(이것은 ‘이익 격차’라 할 수 있다.)는 노조할 권리에서의 격차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중소·영세·비정규 노동자들은 임금과 근로조건에서 현격한 차별대우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기본권(노동3권)에서 심각한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

이 지점을 알아보기 위해 조직 노동자의 구성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한국의 노동조합원은 대부분이 대기업(민간과 공공) 정규직과 국가 공무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가운데 공공부문의 비중이 매우 높다. 그리고 공공부문은 노조 조직화 정도가 매우 높으나 민간부문은 그 비율이 매우 낮다. 그 다음으로 조직화된 것이 대사업장 부문에 직간접적으로 고용된 비정규직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인데, 이들은 아주 적다. 이는 노조운동이 상대적으로 조직하기 쉬운 부문에 치중되어 있음을, 노동운동이 취약 노동자 계층을 조직하는 사업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노조 조직된 노동자의 수가 늘어났지만 자본주의의 진전에 따라 임금노동자 수가 늘어나고 그에 따라 앞에서 얘기한 대기업(공공과 민간을 망라해) 부문의 노동자 수가 늘어나자 자연스럽게 조직 노동자 수도 늘어난 것으로 봐야 한다. 취약 노동자란 대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도 있지만 그 수는 많지 않고 대부분 중소영세 사업장의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수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1천5백만 명에 달한다.17) 그 다음이 최소 200만 명의 특수고용 노동자들이다.

한국의 노동자 구성과 규모별·부문별·고용형태별 노조 조직율의 차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노동자 구성부터 살펴보면, 한국의 노동자 구성에서 300인 이상 대기업 노동자는 14~16%이고, 정부·공공기관·학교 등 공공 부문이 20%, 65%가 민간부문 중소·영세 기업 노동자이다. 공공부문에도 사립학교와 같이 3백인 이하 사업장이 다수 존재한다. 이 부분까지 포함하면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의 비중은 70%에 상당할 것이다.

다음으로 노조 조직률을 살펴보자. 먼저 기업 규모별로 살펴보면, 즉 대기업 노동자의 조직화 정도와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의 조직화 정도를 비교해 보면, 300인 이상 사업장(대기업) 35.1%, 100~299인 사업장 5.4%, 30~99인 사업장 1.3%, 30인 미만 사업장 0.1%이다. 이것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격차다. 노조 조직이 대기업에 심하게 편중되어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조합원 가운데, 대기업 노동자 비율이 얼마인지는 정부통계에는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정부 및 민주노동연구원 등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민주노총 조합원 중 300인 이상 대기업(및 대규모 공공부문) 종사자의 비중은 약 70% 내외로 매우 높게 추정된다. 하지만 현실은 이 통계보다 더 심할 것이다. 고용노동부 ‘전국노동조합 조직현황’에 따르면, 한국 전체 노조원 중 300인 이상 대형 사업장 소속 비중은 전체의 80% 이상으로 압도적으로 높다. 민주노총 역시 이와 유사한 대규모 사업장 편중 구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불능력이 낮은 중소사업장 노조는 한국노총 쪽이 더 많고 민주노총에는 조합원 5천 명 이상의 거대기업 노조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그렇다.

한편, 노조 조직률을 부문별로 살펴보면 노조 조직률은 공공부문 72%, 공무원 부문 66%, 교원 32%, 민간부문 9.8%이다. 그런데, 조합원의 부문별 구성을 보면 민주노총의 경우 민간부문이 약 60%, 공공부문이 약 40%를 차지한다. 공공부문의 조직률이 높아서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안에서 과잉 대표되고 있는 것이다.18) 이는 미국처럼 민간부문보다 공공부문에서 노조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달리 말하면 한국도 미국처럼 민간부문에서 노조활동이 심하게 억압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다음으로 노조 조직률을 고용형태별로 살펴보면 정규직은 20%에 근접하지만, 비정규직은 3% 미만이다.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노조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소규모 사업장에 집중되어 있어 노조가입 기회나 접근성이 차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조합원 구성을 고용형태별로 보면 정규직이 2/3, 비정규직이 1/3에 상당한다.19) 이렇게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것은 한국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이 워낙 높은 구성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노총 비정규직 조합원의 많은 부분은 민간대기업과 공공부문 대기업에 직간접적으로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이다. 중소·영세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그런데 이들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부분이다.

이제 이런 이익과 권리 양 측면 모두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런 심각한 양극적 분절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와 관련, 민주노총 조합원은 지난 30년 동안 2.5배가량 늘어났으므로 조직화에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과연 그런가? 그 기간 동안 조직대상 노동자 수도 2배가량 늘어났으므로 노동자 수 전체 증가와 민주노총 조합원의 증가 비율이 크게 다르지 않다. 20) 그러므로 민주노총 역시 조직대상 노동자의 증가에 따라 자연스럽게 조직이 늘어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노총 조합원과 한국노총 조합원 사이의 비율에서 격차가 현저히 줄어든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그것은 조직대상 노동자 수의 증가에 따라 민주노총에서는 자연스럽게 조합원이 늘어났으나 한국노총에서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21) 양대 노총에 속하지 않는 노동조합원 수가 50만 명에 달한다. 그러므로 민주노총이 노동자 조직화에 별반 노력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수정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노동조합원의 구성에서 비교적 조직화가 쉬운 부문(이 부문은 사용자 측에서 지불능력도 상대적으로 높고, 노동자 측에서도 노동자 수가 많아서 투쟁능력도 있으며, 사회적 지위가 높아서 사회적 압력에 민감한 부분이다.)의 노동자들로 이루어지면서 조직 구성이 양극화된 것과 나란히 노동자의 근로조건과 생활조건도 양극화되었다. 조직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와 기타 취약 노동자 사이의 양극화 말이다. 이 지점에 대해서는 노동계급 형성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 모두가 심각한 문제로 인정하고 있다. 노동운동은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주범은 아니지만 이런 상태를 만들어내는 데 결과적으로 일조를 했다. 취약 노동자들에 대한 초과착취로 초과이윤을 누리는 독점대기업의 착취와 수탈에 대해 눈감으며(독점재벌 해체 같은 반독점 투쟁을 하지 않고), 그 초과이윤의 일부를 분배받으며 자기들의 근로조건과 생활조건을 개선하는 데만 노력했고, 초과착취 당하고 있는 취약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대변하는 일을 소흘히 했다. 그리고 이렇게 노동계급의 삶의 조건과 상태가 심하게 분절되고 그 결과 심리적으로 분리된 것은(이것이 양대 노총에 대한 높은 조합원과 국민대중의 비호감으로 표현되고 있다.) 계급형성의 측면에서 볼 때 심각한 후퇴이다.22) 노동대중의 계급형성은 이들이 하나로 조직되면서 통일단결 되는 것인데, 이러한 분절은 그 통일단결이 와해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b. 정치적·사상적 계급형성의 실패

한국 노동계급이 지난 30년 동안 정치적 계급형성에서 실패했다는 것은 긴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민주노조운동과 그에 의거한 노동자정치운동 또는 진보정치운동은 모두 의회주의 정치 형태로 정치적 계급형성을 꾀해 왔다. 그 프로젝트를 흔히 정치세력화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일단 그 의회주의 형태의 정치세력화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통해서 정치적 계급형성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심한 정파적 분열이다. 진보정당 가운데 굳이 노동자·농민 등 기층 민중에 의거한다고 주장하지 않는 녹색당 같은 부분을 제외하면 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정도가 노동계급에 의거하는 정당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세 정당은 극심하게 분열되어 있다. 이들은 여러 차례 통합과 분열 과정을 반복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 분열이 어떤 이유와 원인 때문이었는지 한번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하나는 노선 때문이다. NL(민족해방), PD(민중민주) 정치노선 때문이기도 하고 노동운동의 투쟁노선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 분열은 민주노총이 책임있는 의사결정을 하지 못할 정도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 대선에서 정치방침을 정하지 못한 것이다. 조돈문은 이것을 ‘결정장애’라고 이름 붙였다. 이 대선방침 관련한 결정장애는 정치노선과 관련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투쟁노선과 관련한 것이다. 이른바 좌파가 총파업 제일주의라면 우파23)는 사회적 합의주의를 추구하거나(국민파) 그것에 대해 정면 반대하지 않는다.(자주파) 그러나 그 같은 분열은 노선에 있어서의 차이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이들 셋 또는 네 정파는 모두 의회주의 정치세력화를 지지하고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의회주의 정치실천을 하는 과정에서는 고도의 도덕성을 견지하지 않는 한 의원이든 행정기관 책임자든 권력이 있는 자리를 둘러싸고 각축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고, 그 과정에서 비운동적 성향인 출세주의가 끼어들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런 비운동적 요소들이 다시 노선에 따른 정파적 분열을 더욱 강화하고 고착시켰다. 그 둘은 악순환을 그리며 전개됐다. 그 전형적인 사례가 민주노동당의 분열과 통합진보당의 분열이다. 이것은 NL파와 PD파의 분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분열은 민족해방파 안에서도 일어났고 민중민주파 안에서도 일어났다. 통합진보당 해산 후 그 세력은 분열하여 두 개의 정당이 되었다가 재통합했고, 재통합한 현 진보당은 지난 대선 후유증으로 다시 분열했다. 민중민주파 안에서도 통합진보당으로 재결집하는 문제로 분열이 일어나 노동당이 생겨났다. 이 고질적 분열 문제가 노동계급의 정치적 계급형성을 실패하게 만든 하나의 큰 요인이었다. 아니, 심한 정파적 분열 그 자체가 계급형성의 실패다. 하나의 계급을 형성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하나로 통일·단결하는 것이다.           

둘째, 진보정당(들)에 대한 국민의(그 대다수는 미조직 노동자대중이다!) 지지가 극히 낮은 점이다. 일반 국민대중(그 대다수는 노동자다!) 속에서 정당 지지율이 3%를 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에서 3% 미만 득표한 정당에게 비례의석을 배분하지 못하도록 봉쇄한 법률은 헌법에 어긋나는 것으로 판결이 났지만 그와 무관하게 3% 미만은 낮은 지지율이다. 그런데 현재 여론조사에서 가장 많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진보당도 지지율이 2% 수준이다. 2018~2020년 기간에 5% 이상의 지지를 받던 정의당의 지지율은 지금 1% 미만이다. 노동당은 정부통게에 집계·발표되지도 못한다. 지난 30년 간 민주노조운동이 정치세력화를 추진했는데 이 정도밖에 안 된다니 참담하다. 이 정당들의 이런 낮은 국민지지율을 민주노조운동 정치세력화의 실패와 직결시킬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 시대에 들어와서 거의 모든 정파들이 민주노총을 기반으로 해서, 그 안에서 당원이나 정파의 구성원들을 모으고 지지자를 결집한 다음 선거에 임했다. 옛 청년진보당의 경우 조금 달랐지만 크게 보면 모두 다 민주노총을 숙주로 했다.24) 이 점에서 19세기 후반 독일의 사회민주당이 노조 밖에서 만들어진 다음 그 진보정당의 주도하에 노동조합을 건설한 경로와 다르다. 이것은 또 전노협 시기의 진보정치운동과도 다르다. 그때에는 사노맹이든 민중당이든 한사노당이든 노동조합 밖에서 정당을 만들고 그 정당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노동조합 조직과 조합원들을 획득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학생운동 출신 정파 활동가 주도의 진보정치세력화 시도들은 계급기반 취약으로 실패했다. 그런 시도들이 실패한 다음 노동조합 주도하에 정당을 만드는 접근방법이 활동가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동의되었다. 그리하여 1997년 민주노총이 참여하고 주도한 가운데 국민승리21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이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했다.25) 이렇게 노동조합이 창당과정에서나 그 이후에나 주도적 또는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민주노동당은 영국노동당의 경우와 비슷한 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정당들의 실패는 그들만의 실패가 아니라 민주노총의 실패, 민주노총 정치세력화의 실패이기도 하다.

셋째, 진보정당들은 자신들이 의거하는 민주노총 조합원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진보정당들은 민주노총 조합원들 안에서 10%대의 지지 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26) 민주노총 지도부는 자신의 조합원들에게 진보정당들에게 투표하도록 만들지 못하고 있다. 선거 때면 민주노총은 진보정당들을 지지하라고 정치방침을 내란다. 그런데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지하라고 내리는 지침을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따르지 않는다. 계급투표는 언감생심이다. 뿐만이 아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선거에서 대부분 자유주의 보수 정당인 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을 찍고 일부는 극우보수 국힘당을 찍는다. 진보당의 경우 조합원 가입과 동시에 반강제 입당시키는 경우가 많아서 당원들조차 자기가 속한 정당을 찍지 않는다. 정의당은 환골탈태하는 혁신을 하겠다고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고, 조합원들도 그렇게 혁신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정당을 표방한 노동당은 아예 존재감이 없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민주노총이 조합원들을 정치적으로 의식화·조직화하여 정치활동의 주체로 ‘변혁’되게 이끌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27) 이것은 또 민주노총이 만들어질 때 정치세력화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을 정치활동의 주체로 세워내지 못하고 경제투쟁에만 매몰되거나 정치투쟁에 수동적으로 동원했음을 뜻한다. 이것이 “돈 대고 몸 댔다”는 말의 의미이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이렇게 탈정치화·비진보정치화된 것은 의회주의 방식의 정치세력화 모델이 잘못된 길이었기 때문인가, 길은 올바른 것이었는데 그 길을 이끈 사람들, 지도자들, 활동가들의 잘못된 실천 때문인가? 어쨌든 민주노총의 의회주의 방식에 의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조직 노동자의 지지를 받지도 못하는 지점에 이르러 있다. 이런 결과는 분명히 실패이다. 그런데 이 실패는 민주노총의 ‘성공’과도 맞물려 있다. 민주노총이 경제주의 투쟁에 성공하여 대기업 정규직 조합원들을 ‘노동귀족’화 시켰는데, 이들이 자신들의 협소한 집단적(계급적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입각해서 진보정당이 아니라 민주당을 지지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면 노동운동은 이 시기에 의회주의를 통한 정치세력화 말고 다른 방도를 추구한 것은 없었는가? 합법 의회주의 정당이 아니라 대중투쟁을 이끄는 정치전선체를 추구한 부분이 있다.  이런 움직임은 군사독재 시기 민통련(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노태우정권 시기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과 전국연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으로 거슬려 올라간다. 그런 맥을 이은 것이 현재의 한국진보연대다. 그런데 한국진보연대는 비의회주의 정치전선체로 역할하고자 했으나 특정 정파의 영향 하에 있는 대중단체들로 구성되어 있어서(민주노총만 가입하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 대신 노조활동가 조직인 민주노동자전국회의가 참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들 진보연대 소속 대중단체들과 함께 민중공동행동를 구성해서 거기에 참여하고 있다.) 변혁적 정치전선체 역할을 하기에는 원천적으로 부족하다. 무엇보다 중심이 되는 변혁적 정치조직이 없기 때문이다. 의회주의 정당이 변혁적 거리·광장 투쟁을 담당하는 전선체 안에서 구심체 역할을 할 수도 없다. 노동조합이나 노동조합 현장조직이 그런 역할을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한국진보연대는 민중공동행동과 마찬가지로 대중운동단체들의 결집체에 불과하게 되어 있다. 그 결과 지난 윤석열 퇴진 투쟁 과정에서 보듯이 거리·광장 투쟁에서 대중의 계급성과 변혁지향성을 고양시키기는커녕 그것을 통제하는 역할을 하는 민주당 2중대에 불과함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런 전선체 부분의 모습까지 종합해 판단해 볼 때 지난 30년 동안 노동계급의 정치적 계급형성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평가된다.    

정치운동이 그처럼 무너졌는데 사상투쟁 전선에서 노동계급 사상이 힘을 쓸 수 있었겠는가? 노동계급의 정치적 계급형성은 양적인 측면에서 처참하게 좌절되었을 뿐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그 운동이 표현하는 사상의 측면에서도 좌절되었다. 노동계급의 사상이란 무엇인가? 하나는 사회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혁명이다. 사회주의는 현존질서를 타파하고 만들고자 하는 사회의 생산양식 또는 사회구성체라는 틀이고, 혁명은 그것을 이루어 내는 방도이다. 그런데 정치운동을 하고 있는 정당이나 단체들을 보면 사상적으로 대개 민족주의자이거나 사회민주주의자이다. 이런 사상과 이념으로는 자본주의 모순이 극도로 심화되어 있는 헬조선에서 노동대중을 혁명적·변혁적 투쟁으로 떨쳐나서게 할 수 없다. 민족주의 운동은 선진자본주의에 이른 한국에서 혁명적이기 어렵다. 이것은 민족해방파 정치운동의 행보에서 확인된다. 이들은 자유주의 보수정권인 민주당과 정치적으로 밀착되어 있다. 그런데 자유주의 보수정권은 안으로나 밖으로나 진보적이지 않고 보수적이다. 그렇다면 민족주의 운동은 잘해야 개혁적이다. 그것도 진보개혁이 아니라 민주개혁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주의 이념과 사상은 이제 낡았다. 그러면 사회주의 사상이념을 표방하거나(노동당) 선전하면(사회주의자) 잘 될 것인가? 그것도 잘 되지 않고 있다. 사회주의 사상이념이 노동자 대중 속에 널리 확산되려면 그런 사상이념을 표방하거나 선전하는 것으로는 태부족하다. 최소강령28)에 입각한 당면 혁명운동 속에서, 그것과 결합하여 교육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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