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 연구소
정세와 투쟁방향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의 <정세와 투쟁방향>입니다.

세계정세(각국의 계급투쟁과 국제정치) | [남아공18]마지막으로 석방되는 광산노동자들의 기쁨과 저항의 눈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시포 롱과네 작성일12-09-30 00:00 조회1,819회 댓글0건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첨부파일

본문

마지막으로 석방되는 광산노동자들의 기쁨과 저항의 눈물


 

<데일리 마버릭(Daily Maverick)>

2012년 9월 7일 02: 54(남아프리카공화국)

시포 롱과네 (Sipho Hlongwane)


 

목요일(9월 6일), 마리카나(Marikana)에서 연행되었던 광산노동자들 중 마지막까지 억류되었던 자들이 기다리고 있던 가족과 친구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석방된 광산노동들은 8월 16일의 학살과 경찰 수감 중의 만행에 대해 말했다. 파업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생활이 편안해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012-09-07-cfakepathsipho-on-the-last-ma 

<사진: 석방된  마리카나 광산노동자들이 가란쿠와(Ga-Rankuwa) 지방법원 건물밖에 서 있는 모습. 시포 롱가네 (Sipho Hlongwane)>


 

검찰이 마리카나에서 연행된 광산노동자들을 대부분 보석금 없이 석방할 것이라고 발표한 후, 첫 석방자들이 월요일(9월3일)에 풀려났다. 연행자 수(총 270명)도 많았고, 담당 공무원의 행정적 실수도 있어서 석방은 4일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러나 목요일에는 “공동목적(common purpose)” 조항(어떤 집단에서 범죄가 발생하면 구성원들을 공범으로 간주하며, 무장한 사람이 경찰 등과 충돌해 사망자가 발생하면 살인혐의를 적용하는 법으로  과거 소수 백인이 남아공을 지배하기 위해 만든 조항)에 의해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고발되었던 자들 중 마지막 수감자들이 풀려났다. 이들은 2013년 2월에 공중폭력죄(public violence)에 대한 심판을 받기 위해 법정에 다시 서야 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이날 가란쿠와 지방법원 앞에 마중 나온 가족 및 친구들과 눈물겹게 상봉한 한 석방자들의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아프리카민족회의 청년연맹 (Friends of the ANC Youth League)의 친구들’의 대표들도 이들을 맞이했는데, 이 단체는 석방자들이 마리카나로 돌아가는데 경찰 트럭에 실려 가는 원치 않는 구경거리를 안 만들려고  이동차량을 마련했다. 8월 16일에 연행되지 않았던 몇몇 광산노동자들도 거기에 있었고 여비를 마련할 수 있었던 아내와 엄마들도 있었다.


455_edu_0928093316656.jpg\" 

 

사진: 가란쿠와 지방법원에서 막 석방된 뒤  음질리카지(Mzilikazi)가 모친과 상봉하고 있다.

  

이 만남은 예상대로 기쁨에 찬 자리였다. 한 나이든 여인은 자신의 아들 음질리카지(Mzilikazi)가 정말 살아서 풀려나는지 보려고 그 자리에 왔다고 했다. 학살과 연행이 이루어진 직후의 며칠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가족이 병원에 있는지, 감옥에 있는지, 영안실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불안했었다. 그녀가 너무나도 흥분해 있어서 아들을 만나기 전에 그녀로부터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정보는 아들의 이름뿐이었다.


 

상봉이 이루어진 후, 그녀는 아들을 데리고 기다리고 있던 언론사 카메라 앞으로 와서 그가 연행된 이후 어떤 일을 당했는지를 말할 수 있도록 했다. 그의 이야기는 월요일에 풀려난 이들의 이야기와 비슷했다. 연행된 후, 제대로 된 수감시설로 옮겨질 때까지 경찰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했고, 그곳에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상]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E-dswOFrb8k

막 풀려난 마리카나 광산노동자 음질리카지(Mzilikazi)의 방송인터뷰 장면


 

자신의 이름을 밝히거나 사진 찍는 것을 거부한 또 다른  여성은 남편을 만나기 위해 거기에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제이콥 주마(Jacob Zuma) 대통령 의 고향으로, 은칸들라 북쪽으로 약 100 킬로미터 떨어진) 크와줄루 나탈(KwaZulu-Natal)의 은퀴투(Nquthu) 출신이지만 마리카나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남편이 연행된 이후 생활이 훨씬 더 견디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녁 식사 대신 물을 먹고 잡니다. 가장들이 연행됐지 않습니까?” 그녀가 말했다. “남편이 돌아와서 정말 기뻐요. 앞으로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저 남편과 함께 집에 돌아가고 싶어요.”


 

그녀는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그녀가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게 하기 위해(KwaZulu-Natal에 자녀들이 있다), 이제 론민(Lonmin)광산이 광부들이 요구했던 12,500랜드(약200만 원)의 월급을 남편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마리카나로부터 그녀와 동행한 한 친구는 다시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에게 표를 던져야 할지 매우 회의적이지만, 만일 “주마(Zuma) 대통령은 우리를 도우려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른 대통령이 선출된다면 마아도 (ANC에게) 표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남편은 법원에서 석방된 후, 포켕(Phokeng) 경찰서에서 구타를 당했고 다른 사람들이 구타당하는 것도 목격했다고 했다.


 

나중에 나는 34 명의 사망자와 78 명의 부상자 대다수가 총에 맞았다고 강하게 추정하고 있는 작은 언덕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무시무시한 증언을 제공한 두 남성에게 말을 걸었다. (경찰은 아직도 TV 카메라에 촬영되지 않은 사망자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보도했던 다른 목격자들이 말한 것들이 사실임을 확인해 주었다.


455_edu_0928093316933.jpg\" 

 

사진: 마리카나 파업 노동자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  주마 대통령 반대, 전국광산노동자연합(NUM) 반대 시위에서 막 석방된 동료들을 이끌고 있다.


 

자신을 킹(King)이라고 밝힌 한 어떤 남성은 자신이 경찰의 공격이 시작되었을 당시에 원더콥(Wonderkop)에 있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장갑트럭들과  철조망으로 봉쇄된 것을 본 광산 노동자들은 작은 언덕 쪽으로 달려갔다. 거기로 가는 중에, 경찰 헬리콥터가 착륙해서 몇 명의 경찰들이 내리더니 곧바로 달아나는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언덕에 도달한 사람들은 반대쪽 길은 더 많은 장갑트럭들과 경찰견들(dog units)로 봉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숨기로 했다. 그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고 했다. 위장색을 한 “하마”(군용장갑차량) 한 대가 가까이 오자, 바위 뒤에 숨어 있던 한 사람이 두 손을 들고 벌떡 일어섰는데 그는 오른쪽 손과 가슴에 총을 맞았다. 다시, 그가 일어섰는데 오른쪽 허벅지에 총을 맞았다.


 

 바위사이에서 숨어 있던 그 사람이 일어선 이유는 함께 숨어있던 다른 연장자가 항복해야 한다고 말해서였다고 킹(King)은  말했다. 역시 두 손을 들고 일어선 그 연장자도 머리에 총을 맞았다.


 

이 증언은 데일리 마버릭(Daily Maverick)이 인터뷰한 다른 목격자의 증언과 일치한다.


 455_edu_0928093355847.jpg\"

 

사진: 석방된 광산노동자 중 한 사람은 목발을 짚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마리카나에서 총에 맞았고,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체포되었다고 말했다.


 

석방된 자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지 못했다. 이들이 기자들에게 분명하게 확언한 것은, 회사가 그들이 원하는 대로 12,500랜드의 임금을 주지 않는 한 작업에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들이 대기하고 있던 택시가 채워질 때까지도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 열띠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기자가 인터뷰 한 두 남성은 마지막에야 차에 탔지만, 결국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하는 기자를 남겨두고 떠나갔다. 총격이 있던 직후에 벌어진 일에 대한 이들의 기억은 다소 흐릿하지만 -그들은 절대적인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증언은 모두 하나같이 같은 내용이었고 충격적이다. 작은 언덕에서 있었던 사건이 잔혹한 학살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대기 중인 택시를 향해 가면서, 이들은 주마(Zuma) 대통령과 전국광산노동자연합(NUM)의 대표인 센제니 조콰나(Senzeni Zokwana)를 맹렬히 비난하는 노래를 불렀다.


 

*원문 출처:

http://dailymaverick.co.za/article/2012-09-07-tears-of-joy-and-defiance-as-the-last-miners-are-freed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