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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정세(경제) | 피케테의 통계학적 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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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시스트 연구센터 작성일15-01-31 00:00 조회1,9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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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의 통계학적 미신*

 

*최근에 도착한, 맑시스트 연구 센터(런던 소재)에서 발행하는 월간 회보 Internationalist 2014년 10월호(153호)를 번역한 것입니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 1권을 출판하는 데 엄청난 고생을 겪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이 전투적인 과학적 저작이 출판되었을 때 학계는 침묵의 벽으로 그 책을 맞이했다. 마르크스의 책에 대한 이런 냉대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저작인 21세기 자본주의에 대한 출판계나 학계의 태도는 기묘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피케티의 이 책은 하룻밤 사이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출판된 지 석 달 만에 영국 및 미국 시장에서 50만 부가 팔렸고 불어판으로 12만 부가 팔렸다. 학계에서 수 백 개의 서평이 나오고, 수 백 회의 토크 쇼 및 학술회의가 열렸다. 심지어 정계와 관계에서도 피케티의 저작을 판촉(販促)했다.

미국의 전 재무장관 래리 서머스(Larry Summers)는 이 젊은 파리경제대학(Paris School of Economics) 경제학자의 성공을 강대국의 흥망(1987)이라는 책의 저자인 폴 케네디(Paul Kennedy)의 성공에 비견했다. 그는 두 사람 모두 타이밍(시점을 포착하는) 감각이 탁월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인 폴 케네디는 레이건 행정부 말기에 미국이 아메리카 제국의 과잉확장을 거부하려던 낌새를 제때에 포착했다면, 프랑스의 경제학 교수인 피케티는 미국을 비롯한 부국(富國)들에서 불평등 증대로 인해 여러 문제들이 야기되려는 조짐을 제때에 포착했다는 것이다.

 

쿠즈네츠의 "동화(童話)"

 

피케티는 선진국들의 소득과 부에 관해 막대한 량의 통계자료를 모으고 또 그것들을 정연하게 정리하였다. 그리고 소득과 부가 한 세기에 걸쳐 어떻게 소수의 손에 집중되어 왔는지 조사했다. 소득에 대한 연구에서 그는 경제성장에 대한 양적(量的) 분석의 지도적 발의자인 미국의 사이먼 쿠즈네츠(Simon Kuznet)를 본받았다. 사이먼 쿠즈네츠는 전간기(戰間期)의 소득세 보고서와 국민총생산 추계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런 조사를 통해 쿠즈네츠는 미국의 소득분배 구조가 일정 시점에서 급격하게 변했음을 발견했다.(1953년) 최상위 10%에게 돌아간 국민총생산의 몫은 20세기 전반에는 45~50% 수준이던 것이 2차 세계대전 말기와 전후시기에 이르면 30~35%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크게 보아서 몇몇 일시적인 조건들 및 1930년대의 경제위기와 제2차 세계대전의 반작용에 힘입은 것이었다. 피케티 스스로가 자신의 책에서 그렇게 썼다. 그러나 벨라루스(Belarus) 출신의 경제학자인 사이먼 쿠즈네츠는 이 사실로부터 소득분배의 전개에 대한 일반(보편)이론을 이끌어냈다. 즉 쿠즈네츠에 따르면, 산업화 초기 단계에는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자연"증가 하지만, 이후 "선진 단계"에 이르면 흐름이 바뀌어, [전체주의 세계에 가지 않고/역자] "자유세계 안에" 확고하게 남아 있는 한 불평등은 현저하게 감소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평등에 관한 "쿠즈네츠의 곡선"("U자 형의 곡선"을 뒤집어 놓은 곡선)은 하나의 "동화"에 불과하며 "냉전의 산물"이었을 따름이다.

쿠즈네츠가 내린 결론은 근거가 박약하데, 그것은 그가 자본주의의 발전을 생산관계의 깊이에까지 심층적으로 파고들어가지 않고 피상적으로 소득분배관계를 통해서 이해하고자 했던 데서, 즉 잘못된 분석방법에 의거했던 데서 비롯된다. 피케티는 쿠즈네츠의 이 잘못된 방법론에 대해 어떤 의심도 품지 않고 있다. 피케티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의 저작은 크게 보아서 쿠즈네츠의 혁신적이고 개척자적인 저작이 지니고 있는 시간적·공간적 한계를 확장한 것일 따름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쿠즈네츠의 곡선"은 다시 뒤집어져서 [뒤집어진 U자 형이 아니라 뒤집어지지 않은/역자] U자 형으로 되어 있다. 즉 시간이 갈수록 불평등이 완화되는 쪽이 아니라 심화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20세기 중반 덜 불평등한 분배가 30년가량 지속되었지만(이른바 "30년의 황금기")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시작으로 미국에서는 상위 10%가 차지하는 몫이 점점 커지면서 분배 불평등이 심화되는 빠른 반전(反轉) 과정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 결과 2000년에서 2010년에 걸친 기간에 이르면 이들 상위 10%가 차지하는 분배 몫은 20세기 초반의 비율[45~50%/역자]을 넘어서게 되었다.

 

생산관계와 분배관계

 

피케티는 프랑스에서의 부의 분배에 대해 연구함에 있어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미국의 로버트 램프맨(Robert Lampman)과 영국의 안쏘니 애트킨슨(Anthony Atkinson) 및 앨런 해리슨(Alan Harrison) 같은 선행 연구자들이 개척한 길, 즉 재산상속 명세서를 면밀히 조사하는 방법을 뒤따랐다. 그러나 피케티는 [학자적 양심이 있다면/역자], 마르크스가 백년도 더 이전에 이미,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이후 대토지 소유가 대대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영국정부가 발행한 재산상속 통계들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마땅하다.

피케티에게는 자본과 부(富)는 동의어이다. 그의 개념정의에 의하면 국부(national wealth)” 또는 국민자본(national capital)”은 모든 재산(property)의 합이다. 모든 금융적 및 비금융적, 사적 및 공적, 각종 부채를 뺀 순 자산들의 합이다. 피케티의 자본 개념은 실물적(physical)이다. 즉 건물, 땅, 광산, 집, 기계, 주식, 은행계좌, 보험증서,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한 각종 기금 등이다. 마치 크로에수스(Croesus)나 스크루지 맥덕(Scrooge McDuck)이 그렇게 했듯이 게걸스럽게 긁어모았거나 긁어모은 것들이다. 피케티는 이것들을 모두 시장가격으로 계산한다. [그런데 피케티와 같은 학파의/역자] 케인스주의 경제학자 제임스 갤브레이스(James K. Galbrath)에 의하면 실물자본의 "금융적" 수량화는 터무니없는 혼동의 원천이다. 그렇게 실물을 금융으로 무조건 수량화할 때 금융거품과 실물축적이 동일시되고, 전쟁 중에 일어난 실물자본의 되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 금융시장에서의 되돌이킬 수 있는 손실과 똑같은 것으로 간주된다.

마르크스주의는 주류 경제학의 주관주의적 왜곡에 의해 빚어진, 가치와 자본에 관한 고전적 이론의 통속화를 거부한다. 마르크스에게는 자본은 "집중된 사회적 힘", “한쪽은 노동 및 생활의 수단을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있고 그 반대쪽은 살아 있는 생산 에너지만을 가지고 있는 식으로 사람들이 양극으로 분열되어 있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집중된 사회적 힘이다.(마르크스, 제1인터내셔널 "임시 총평의회 대의원들에게 보내는 지침")

"자본의 일반공식은 M-C-M'이다. 다시 말해서 자본은 더 많은 액수의 가치를 뽑아내기 위하여 유통에 투하된 가치 액수이다. 이렇게 더 많은 금액을 만들어내는 것이 자본의 생산이다. 그렇게 생산된 잉여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자본의 유통이다." (<자본> 3권) 자본은 생산관계(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이고, 계급관계(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이며, 권력관계이다.

 

미다스의 법칙

 

피케티는 분배관계라는 굴절된 렌즈를 통해 경제를 바라보는 나머지 자본축적과 불평등을 근검절약, 탐욕, 재산상속,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에 의해 좌우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그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의 불평등 심화는 무엇보다도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정치적 변화 때문에 초래된 것이며, 특히 재정 및 예산 문제 때문에 일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피케티는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하고 있다.

앵글로색슨 제국주의 모국들에서 감세와 탈규제 등 신자유주의를 채택한 것은 구 열강들 - 유럽과 일본 - 이 제국주의 각축 무대에 복귀한 것에 대한 대응이면서, 석유-지대(地代)를 추구하는 신생 산유국들, 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 그리고 십억여 명의 신규 노동자를 자본관계라는 용광로 속에 던져 넣은 중국의 세계시장 난입 등에 대한 대응이었다. 제국주의 모국들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계층 세습화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범세계적인 외연적 확대와 내포적 심화를 빼놓고는 이해될 수 없다. 젊은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주의의 미스테리를 풀 수 있는 공식을 찾고 있지만, 그 답을 마르크스가 연구해서 밝힌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와 그 상쇄의 경향에서 구하지 않고 그 역시도 또 [다른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처럼/역자] 분배관계의 영역에서 구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자본주의 체제의 내적 논리상의 모순은 r(이윤율)>g(성장률)라는 공식으로 요약된다. 이 공식에 대해 피케티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본에 대한 보수의 비율 즉 이윤율 r는 정상적인 경우에도 이미 성장률 g보다 높은데, 경제가 상대적으로 저성장 경제로 되돌아감에 따라 r과 g 사이의 격차가 상대적으로 더 벌어질 것이다. 이처럼 인구 감소와 생산성 정체로 인해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있는데도,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힘을 증대시키고 자신들의 우월적 지위를 영속시키기 위해 또는 자신들의 생활수준이 이미 매우 높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매년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겠다고 고집하고 있다.” 이런 피케티의 이론은 과학적 통찰이라기보다 부자가 더 큰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는 ‘미다스 왕의 신화’(myth of King Midas)의 재발견에 불과하다.

이 프랑스 경제학자의 테제는 탈(脫)성장 이론을 생산량 수준이 아니라 성장률 수준에 적용한 것이다. 그는 성장률이 현행 3.5%에서 21세기 말에는 1.5%로 떨어질 거라고 예측한다. 반면 자본의 수익률(이윤율)은 역사적인 평균에 상당하는 4.5% 수준에서 안정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불평등은 계속 악화될 것인데/역자], 끝없는 불평등화의 나선(spiral)”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자본에 대한 전 지구적인 누진세(부유세)가 필요할 것이다. 피케티는 전 지구적 세습 자본주의를 규제하기 위한 유럽 제국주의 차원의 수단으로서 범 유럽적으로 부유세 도입을 제안하기 위해 이 유용한 유토피아를 이용한다. 그러나 이 범 유럽 부유세는 실제로는, 불평등 축소가 진짜 목적이 아니고, 전 지구적 경쟁 속에서 유럽 제국주의가 살아남기 위해 금리생활자들을 먹여 살리는 짐을 덜려는 것이 숨겨진 진짜 목적이다.

 

계급, 소득 및 부()

 

피케티는 "계급투쟁"을 백분위의 투쟁으로 대치시킨다. 그리고 인구를 소득에 따라 나눈다. 즉 "하층계급"(부유하지 못한 50%), "상층계급"(가장 부유한 10%) - 극히 부유한 1%("지배계급")와 9%의 "부유한 계급") - 그리고 "중간계급"(나머지 40%)으로.

피케티는 "10분위 및 백분위 구분의 좋은 점은 그런 구분법이 아니고는 비교할 수 없는 불평등들을 서로 비교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유럽에서는 1차 세계대전 직전에 불평등이 역사상 최고점에 도달했다. 당시 최상위 10%가 총 소득의 50%를 차지했으며 재산의 90%를 소유했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은 나눠먹을 케이크의 크기가 줄어들게 했다. 반면 하위 계층들에게 베어서 나눠주는 케이크 조각들은 더 커졌다. 그 결과 경제성장률은 높아졌다. 피케티는 이것이 경기침체에 대한 제국주의의 현실적 대안임을 잘 알고 있다. 오늘날 미국은 불평등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 국민소득의 50%(유럽에서는 35%), 재산의 70%(유럽은 60%)가 최상위 10%에게 돌아가고 있다. 이런 양극화는 "중간계급"에게서 반발을 유발시키고 있다. 심지어 "부유한 계급"에서도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 1970년 이후 최상위 10%가 더 가져간 15%포인트(총소득의 35%에서 50%로) 가운데 11%가 1%의 극히 부유한 지배층에게 돌아갔던 것이다.

부의 집중 또한 대체로 이와 비슷하다. 대기업집단들은 소득과 부의 양극화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그들은 아마 중국의 도전에 대한 미국 내부의 합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피케티는 이른바 선진국들의 위험은 내부의 과두 지배층에게서 비롯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또 2030년이 되면 세계 자본 총액 가운데 아시아가 차지하는 금액이 미국과 유럽이 차지하는 금액보다 더 많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서구 제국주의에게 부의 불평등보다 더 큰 걱정거리다. 피케티는 이런 진실을 숨기고 있다/역자]

 

불평등과 노동력 재생산 문제

 

로스차일드가의 린 포스터(Lynn Foster)와 유니레버의 최고경영자 폴 폴만(Paul Polman)이 런던에서 공동 조직한 '"포용적 자본주의(inclusive capitalism)"에 관한 5월 회의(May conference on "inclusive capitalism")'에 30조 달러의 자산을 주무르는 여러 기관의 경영자들이 참가했다. 참가자 중의 한 사람인 잉글랜드 은행(Bank of England)의 지배인 마크 카니(Mark Carney)는 "시장 근본주의가 자본주의 자신의 장기적 활력 유지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사회적 자본을 먹어 삼켜버릴 수 있다"며 시장근본주의에게 맹비난을 퍼부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재닛 옐런(Janet Yellen) 의장은 최근 보스턴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자본주의가 지니고 있는 이 활력의 결정적 측면[사회적 자본/역자]에 대해 길게 이야기했다. 즉 매3년마다 발표하는 미국 가계의 소득과 재산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그녀는 "소득 불평등의 증대는 세대간 이동성(mobility) 감소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고 역설했다. 재산소유 피라미드에서 중간선 이하에 속하는 가계이면서 자녀를 가진 가계의 평균 순 재산(net wealth)은 2007년 이후 1만3천 달러에서 8천 달러로 40%나 감소했다. 더 놀라운 것은, 피라미드의 중상위권에 속하는 45% 가계의 평균 재산 또한 34만 4천 달러에서 22만 9천 달러로 1/3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가계 재산의 이러한 감소는 그 가계에서 자녀들의 고등교육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저하시키고 있다. 대학생들이 [학자금 융자로/역자] 국가에 지고 있는 빚 총액은 지난 10년 사이에 2,690억 달러에서 1조 1천억 달러로 네 배나 늘었다. 자녀교육 때문에 지게 된 빚은 재산이 중간 이하인 가계에서 소득의 26%에서 58%로 뛰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노동력 재생산 문제다. 미국에서는 지금, 부와 소득의 불평등 심화와 그에 따른 고등교육의 위축으로 인해 공업과 서비스 부문의 기술집약적이고 전문화된 발전에 필요한 노동력이 재생산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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