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 연구소
정세와 투쟁방향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의 <정세와 투쟁방향>입니다.

국내정세(정치) | 새누리당=자본천국=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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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1-07 11:58 조회1,0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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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에 연재되고 있는 김승호의 노동세상(11월 7일자) 글입니다. 


새누리당=자본천국=헬조선 


김승호(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대표) 


온 누리가 최순실 사건으로 뒤숭숭하다. 정윤회와 십상시가 비선실세인 줄 알았더니 죽은 무당 최태민의 딸인 산 무당 최순실이 대통령을 수렴청정하는 나라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박근혜씨가 어린아이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완전히 이 무당들의 꼭두각시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수렴청정이라는 표현도 꼭 적합하지는 않다. 그가 간절히 절대권력을 원했던 것과 그렇게 절대권력을 누릴 수 있다고,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고 세뇌한 죽은 무당의 최면술(영혼합일법)이 합해졌기에 현재와 같은 사태가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박근혜씨가 절대권력을 염원한 것은 그의 아버지 박정희씨 밑에서 그리고 나란히 그것을 누리면서 일찍부터 그것에 세뇌됐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태는 박정희의 혼과 최태민의 혼이 대를 이어 합작해서 만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죽은 두 사람에게 공통된 것은 무엇인가. 1940년대에 친일을 했다. 한 사람은 경찰로, 다른 한 사람은 장교로. 1960년대에 둘 다 중앙정보부가 만든 공화당에서 같이 정치를 했다. 그 노선은 일본을 따라 배우는 반공주의 조국근대화였다. 1970년대에 둘 다 국수주의를 기치로 유신체제로 치달았다. 그 역시 일본을 벤치마킹한 천왕제였다. 이렇게 그 둘은 정신적으로 동지였다. 두 사람 사이에 다른 점은 최태민은 국회와 정부 같은 국가기구에서 한발 벗어나 그 외곽에서 기독교를 빙자한 사이비 종교정치로 역할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가 박정희와 다른 점은 박정희는 사이비 종교와 손을 잡았지만 박근혜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사이비 종교에 심취했다는 것이다. “제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거나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했지만, 이 말이 거꾸로 그가 사이비 종교에 세뇌·포섭돼 왔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의 말에서 진실은 눈곱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들이 이루고자 한 세상은 어떤 것일까. 박정희와 최태민의 반공주의를 보거나 박근혜와 최순실의 반노동자주의를 보거나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세상은 노동자·민중이 어떤 저항도 하지 않는 자본의 천국이다. 그리고 노동자·민중에게는 지옥이다. 박정희와 최태민은 유신체제로 그런 상태를 이룬 바가 있다. 자본이 마음대로 노동을 착취하고 국가는 노동을 무제한으로 억압해서 그것을 보장해 주며, 그 대가로 자본은 권력자에게 거금을 상납하는 관계 말이다. 그들은 그런 상태를 영구화하고 싶어 했다. 박근혜와 최순실도 그런 상태를 이뤄서 그것을 영구화하고 싶어 했다. 이메일 주소가 greatpark1819라는 것이 이를 엿보게 해 준다. 그들은 일차로 개헌을 해서 대통령으로 연임한 다음 유신과 같은 쿠데타를 해서 영구집권을 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꿈은 이루어질 수 없는 헛된 꿈이었다. 간절히 원한다고 모든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박정희와 최태민의 꿈은 10년도 못 가서 중도에 파국을 맞았다. 박근혜와 최순실의 꿈도 5년도 못 가서 그렇게 되고 있다. 한번은 궁정동의 비극으로, 한번은 부속실의 소극으로. 그런데 문제는 왜 이런 파국이 되풀이됐을까 하는 점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런 희·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박근혜·최순실 무당 현상은 한국 사회의 근본적 구조에서 파생한 산물이다. 한국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식민지적으로 종속돼 있고 남북으로 분단돼 있는 비정상적인 자본주의 사회다. 그 분단은 민족적 입장의 차이와 계급적 입장의 차이가 중첩돼 있다. 그리고 남한은 그 두 가지 점에서 모두 큰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 약점을 가진 채 안으로는 노동자·민중의 저항에 대처하고 밖으로는 북한과의 체제경쟁 및 대립에 대처해야 한다. 이런 비정상적 상태 아래서 자본주의도 소수의 재벌에게 부가 초고도로 집중되는 재벌공화국으로 나타나게 되고, 정치권력도 일당과 일인에게 초고도로 집중되는 독재권력이 그 토대에 조응하게 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아래로부터의 민중의 통제라는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고 다수 자본의 존재라는 다원주의적 평등을 그 원리로 하고 있다. 이 두 가지는 재벌공화국과 독재정권이라는 지배형태와 끊임없이 충돌한다. 이로 인해 체제는 항상적으로 위기를 맞이한다. 자본주의가 위기를 달고 산다(crisis-ridden)는 말이 있지만 한국 사회야말로 위기를 달고 사는 사회다.
 

그러므로 이런 사회·정치의 체제적 형태를 변혁하지 않는 한 박근혜 정권이 물러나고 민주적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머지않아 자본독재의 파쇼정권으로 회귀하고 위기가 재현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극우 정치세력이 준동하고 약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토대에서의 자본축적 위기가 한 조건이지만, 결정적인 것은 민주적 또는 진보적 정당들이 점점 우경화해 우익과 별대차가 없어지면서 극우세력이 약진할 이데올로기 지형을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우리나라 야당들 또한 그렇게 우경화해 오지 않았는가. 또 그렇게 되지 않을 보장이 있는가. 재벌독점의 천민자본주의와 파쇼적 정치체제를 청산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매달 자는 노동계급 그 자신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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