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 연구소
정세와 투쟁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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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정세(정치) | 기무사는 개혁될 수 없고 해체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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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7-30 10:38 조회8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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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에 연재되고 있는 김승호의 노동세상(730일자) 글입니다

 

기무사는 개혁될 수 없고 해체될 수 있을 뿐이다.

 

김승호(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대표)

 

보안사는 국군보안사령부의 약칭이다. 보안사는 1977년 육군, 해군, 공군에 흩어져 있던 보안부대와 방첩부대를 통합하여 창설됐다. 유신 파쇼통치(4) 말기에 박정희 정권이 통치위기에 처하자 중앙정보부와 쌍벽을 이루어 국민을 감시·처벌하는 또 하나의 비밀경찰기구로서 보안사를 출범시킨 것이다. 보안사는 전두환을 정점으로 하는 하나회 신군부가 장악한 가운데 79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한 박정희 살해 이후 1212일의 군사반란, 80517일의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와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 설치 등 군사쿠데타를 주도했다. 3·4공 체제의 버팀목이 중앙정보부였다면 5·6공 체제의 버팀목은 보안사였다.

 

기무사는 국군기무사령부의 약칭이다. 기무사는 199010월 국군보안사령부 소속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의 청명계획을 폭로한 후폭풍으로 명칭이 기무사로 바뀜으로써 생겨났다. 이 폭로에 대해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사건이라고도 하고 윤석양 이병 양심선언 사건이라고도 한다. 이 사건은 학생운동으로 제적된 후 강제 징집되어 군복무를 하던 중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던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 사찰대상 민간인 목록이 담긴 디스크를 들고 탈영해 자신의 프락치 활동을 양심선언하고 사찰대상 목록을 공개한 사건을 말한다. 이 디스크에는 정계와 노동계, 종교계 등 1,303명에 대한 사찰 기록이 담겨 있었으며, 노무현, 문동환, 박현채 등의 개인 신상카드에는 인적사항은 물론이고 자택의 담장 높이, 비상탈출구, 예상도주로 및 은신처까지 들어 있었다.

 

청명계획이란 무엇인가. 19894월 노태우 정권이 통치위기에 처했을 당시 보안사가 김영삼, 김대중 등 계엄령에 의한 친위쿠테타를 성공시키는 데 방해가 될 만한 반정부인사의 목록을 만들고 이들을 개별적으로 사찰해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D-day를 전후로 전원 검거한다는 예비검속 작전명이다. 이 계획이 폭로된 것을 계기로 노태우 정권 퇴진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고,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내각제 개헌 포기, 지방자치제 실시, 보안사 해체 등을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다. 이에 노태우 정권은 다음날 국방장관과 보안사령관을 전격 교체했고, 보안사는 서빙고 분실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윤석양 이병은 이에 대해 서빙고 분실은 인천으로 이전할 계획 하에 이미 폐쇄됐다며 보안사 발표의 기만성을 폭로했다. 하지만 보안사는 이름이 바뀐 것을 제하고 아무런 수술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영삼 정권 들어와서 정치군부 집단 하나회가 해체되고 나서 그 본거지인 기무사도 약화됐다. 기무사령관은 중장에서 소장으로 격하됐으나 곧 원상으로 복귀됐다.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서는 대통령 독대가 사라졌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들어서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대면보고도 부활했다. 그리고 마침내 박근혜 정권하에서 세월호 유족을 사찰하고 헌법재판소 탄핵결정을 앞두고 비상계엄 실시를 계획했다.

 

민주화가 진행되던 지난 한 세대를 거치며 기무사는 이름만 바뀌었을 뿐 전혀 개혁되지 않았다. 이 역사적 경험에는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수구보수 정권은 그렇다 치고 민주적이고 개혁적이라고 자처하던 김영삼 문민정부도, 김대중 국민의 정부도, 노무현 참여정부도 보안사·기무사가 군 보안유지 및 군사첩보 수집이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개혁하지 못했다면, 또 수구보수 정권이 집권하면서 5·6공 군사독재정권 당시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면, 앞으로도 민주개혁적 정부에 의해서는 이 비밀경찰기구를 개혁하기 어려울 거라고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지금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이 폭로돼 커다란 정치쟁점이 되고 있다. 이는 1989년 당시 노태우 정권이 계엄령을 통한 친위쿠데타를 계획했고, 그것이 1990년에 폭로돼 커다란 정치쟁점이 됐던 것에 비견된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는데, 노태우 정권과 파쇼세력은 그 청명계획이 쿠데타 계획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문건을 작성한 기무사 장성들이 20172~3월에 작성된 계엄령 계획이 실행계획이 아니라 대비계획에 불과하다며 쿠데타 기도를 부인하고 있는 점이다. 박근혜 탄핵이 기각될 경우를 대비해 계엄을 계획한 것은 맞지만 실행할 의사는 없었다는 이야기인데, 실행할 의사도 없는 계획을 국방부장관과 기무사령관(중장)이 지시하고 기무사의 장성들(소장과 준장)이 비밀리에 태스크포스를 구성해서 작성한단 말인가. 67쪽 짜리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한번만 읽어보면 이들이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국민을 우롱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실행할 의사가 없었던 게 아니라 실행할 의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탄핵 인용으로 실행할 수 없었을 뿐이다. 실패한 쿠데타인 것이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이들의 친위 쿠데타 음모를 발각하고도 단호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계엄령 관련 문건이 지난 3월에 이미 국방부장관과 청와대 비서실에 알려졌음에도 이러저런 이유로 그 사실을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공개한 이후에도 또다시 인원 30% 감축과 명칭을 국군정보지원사령부로 변경하는 것을 개혁으로 내세우며 넘어가려 하고 있다. 과거 실패한 안기부 개혁의 데자뷰다. 이유가 어떠하든 그런 유약한 접근자세를 가지고는 수구체제와 수구세력을 청산·척결할 수 없을 것이다. 수구체제의 적폐를 청산한다고 하지만 가지만 치고 뿌리는 그대로 남겨두는 식의 실패한 민주개혁을 되풀이 할까 걱정된다. 그런 미지근한 접근자세로는 구체제 변혁은커녕 적폐 청산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할 것이다.

 

기무사는 개혁이 아니라 해체함으로써만 제자리에 갖다놓을 수 있다. ‘해체는 자유주의 정권 혼자서가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투쟁과 함께함으로써만 실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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