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 연구소
정세와 투쟁방향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의 <정세와 투쟁방향>입니다.

세계정세(경제) | 새로운 ‘민주주의 혁명’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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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02-08 10:33 조회7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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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에 연재되고 있는 김승호의 노동세상(28) 글입니다.

 

새로운 민주주의 혁명이 요구된다

 

김승호(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대표)

 

올해에도 경제불황은 계속될 것이다. 언제 끝날지도 불확실하다. 1977년 미 하버드대학 존 갤브레이스 교수가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유명한 제목의 책을 펴냈지만 지금이야말로 그런 시대다. 갤브레이스 교수는 앞서 1958<풍요로운 사회>라는 책을 펴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르자 자본주의 황금기가 끝나고 석유파동과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대변되는 경제위기가 왔다. 황금기를 이끌던 케인스주의 경제학이 조종을 고하고 미래가 불확실했다. 그의 책은 이런 시대상황을 반영했다.

 

케인스주의 경제학을 대체해 자본주의를 인도해 온 것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이었다. 하지만 1980년 미국·영국에서 레이건·대처 정권이 등장한 이래 자본주의 인도자 역할을 해 온 이 경제학 또한 2008년 미국발 금융공황으로 파산했다. 이후 자본주의는 14년째 골이 깊고 파장이 긴 장기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하지만 부르주아 경제학 안에는 이 위기를 극복하게 해 줄 정책도, 그런 정책을 안내해 줄 이론도 없다. 아니 불가능하다.

 

지금 시대는 1930년대 대불황에 비견된다. 당시 10년 가까이 경제대불황이 계속됐다. 자본주의 체제가 빚은 과잉생산·과소소비 때문이었다. 이 대불황은 자유방임주의에 종언을 고한 케인스주의 국가개입과 2차 세계대전으로 간신히 극복됐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대불황도 그와 유사한 바가 있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빈부 양극화가 극도로 심화했고 이로 인한 과소소비가 자본축적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 문제를 지난 10년간 계속해 온 제로금리+양적완화나 그것을 잇는 무제한적인 재정지출로 극복할 수 있을까. 미국의 신임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가 지난 연말 서명한 9천억달러의 경기부양 지출에 더해 19천억달러의 추가 경기부양 지출을 의회에 제출해 놓고 있다. 28천억달러는 2008년 금융공황 당시 오바마 정부가 내놓은 경기부양 지출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다. 게다가 그는 최저임금 두 배 인상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파격적 정책으로 지금의 경제대불황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제대불황은 단지 분배 양극화에 따른 과소소비 때문만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원인에 의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내재하고 있는 이윤율 저하 경향이 그 이유다. 기업의 노동생산성이 고도화할수록 한 사람의 노동자가 기계와 원료 같은 생산수단을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인건비에 비한 생산수단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즉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한다. 이때 자본의 착취도가 계속 높아지지 않는 한 이윤율은 저하한다. 그런데 착취도 제고에는 경제적·사회적 한계가 있다. 필자는 마르크스의 이 이론에 기본적으로 동조한다. 왜냐. 자본이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중국이나 신흥시장으로 생산기지를 대거 옮긴 이유가 무엇인가. 이윤율이 낮아졌기 때문 아닌가. 그래서 생산기지를 본국에 그대로 두면서 신흥시장으로 확장한 것이 아니라 아예 이전한 것이다. 그러면 왜 선진자본주의 경제에서 이윤율이 낮아졌는가. 신자유주의 30년간 미국에서는 노동생산성 향상에도 시간당 실질임금은 거의 불변이었으므로 노동자에 대한 착취도(이윤/임금)는 계속 높아졌다. 그런데도 이윤율이 높아지지 않고 오히려 저하했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 고도화 말고 이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지금 미국에서 고이윤을 누리는 기업은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같이 생산수단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 유기적 구성이 낮은 IT기업들이다. 그리고 IT기업 가운데도 애플과 같이 물적 재화를 생산하는 기업은 국내가 아니라 임금이 싼 해외에서 제조한다. 여기에서 보듯이 문제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 고도화에 따른 이윤율 저하다. 미국 산업이 공동화한 것도 이윤율 저하에 대한 자본의 상쇄작용 결과다.

 

이처럼 자본의 내재적 법칙에 따라 초래하고 있는 이번 대불황은 마이너스 금리나 현대화폐이론(MMT) 같은 파격적 재정·금융정책을 총동원해도 극복할 수 없다. 이 대불황은 인간의 필요충족이 아니라 자본의 이윤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필연적 귀결이다. 따라서 불의하고 무능한 이 생산양식은 인간의 필요충족을 목적으로 하는 생산양식으로 대체돼야만 한다.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역사적 전환기다. 신흥시장에 속하는 한국에서는 이런 인식이 아직 피부에 와 닿지 않을 뿐이다.

 

새해 들어 몇몇 진보언론에서 논객들이 사회양극화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분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앙일보 같은 재벌언론에서조차 그런 내용의 오피니언이 실린다. 그러나 이들에게 공통된 것은 한국의 천민자본주의 파쇼체제 자체를 변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배제하는 점이다. 허나 미국을 비롯한 선진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지 않고는 경제를 지속할 수 없듯이, 한국에서도 현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상태에서 경제와 민생을 영위할 수 없다. 어디서나 문제는 체제다.

 

이런 맥락에서 요즘 체제를 변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노동운동 안에서 늘어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그 변혁이 어떤 변혁인가가 중요하다. 분단·예속·파쇼 같은 모순이 켜켜이 중첩돼 있는 한국 사회에서 변혁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 머물러서도 안 되지만, 자본주의 체제 너머만을 겨냥해서도 안 된다. 재벌을 둘러싼 특권계급이 주인으로 군림하는 천민자본주의 변혁을 당면목표로 하되 자본주의 자체의 변혁까지 전망목표로 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변혁은 자본독재에 불과한 기존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권력을 해체하고 노동자·민중이 실질적으로 정치의 주인이 되는 민중권력을 창출해 내는 새로운 민주주의 혁명에 의해서만 궤도에 오를 수 있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이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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