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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투쟁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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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정세(각국의 계급투쟁과 국제정치) | 전진하는 라틴아메리카, 자주와 진보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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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9-05 22:31 조회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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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하는 라틴아메리카, 자주와 진보의 물결

 

2023년 8월 31일

김승호(전태일 노동대학 대표)

 

* 지난 6월 22일 사월혁명회 강연 원고를 수정·보완한 글입니다.

 

<1> 라틴 아메리카를 바라보는 입장과 관점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주류의 관점은 대부분 정복자, 지배자들의 것이다.

주체적 입장이 없는 객관적 관점은 세상에 없다. 그런 순수 객관성은 허구이다.

라틴 아메리카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지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과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나누어진다. 그 가운데 후자의 것이 사태의 진실을 보여준다. 전자의 것은 진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한다.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사태를 바라보는 것은 사회와 인류의 진보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그것은 진실하면서 정의롭다. 그 반대는 그 반대다.

그러므로 나는 철저히 라틴아메리카 피지배자들의 입장에서 현 상황을 바라보고 이야기할 것이다.

 

<2> 전진해 온 라틴아메리카(과거)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알고자 하면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를 빼놓고는 제대로 알 수 없다. 다른 대륙이나 나라의 경우에도 그러하겠지만 라틴아메리카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과거의 역사가 지금도 이 대륙 사람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즉 자신이 선택한 상황 하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려받은 상황 아래서 만든다. 모든 죽은 세대들의 전통은 마치 꿈속의 악마처럼, 살아 있는 세대들의 머리를 짓누른다.” (마르크스,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 1절)

 

유럽인의 입장이 아니라 이 대륙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이 대륙의 역사는 2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몽골계 현생인류가 베링해협을 거쳐 이 대륙으로 넘어갔다. 1만 년 전에 빙하가 녹자 이들은 북미로 진출하고 수천 년에 걸쳐 이 대륙의 남단까지 나아갔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기원이다.

 

유럽인인 콜럼버스가 이 지역에 도착한 1492년 당시 이 지역에는 여러 개의 문명이 존재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아즈텍 문명과 잉카 문명이다. 그러나 당시 아즈텍 문명 주변에도 청동기를 사용하는 타라스칸 문명이 존재했고, 잉카문명 주변인 오늘날의 콜롬비아 지역에 무이스카 문명이 존재했다. 또 침략 당시에 현존하던 이들 문명 이외에, 마야문명과 같이 그 이전에 존재하다가 사라진 문명도 있었다. 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은 계급이 존재하고 국가가 존재했다는 것을 말한다. 비록 생산수단은 주로 석기였고 무기는 간혹 청동기를 사용했지만 엄연히 국가가 존재했다. 유물사관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이 문명들은 아시아적 생산양식에 해당했다. 물론 문명이 아닌 문화만 존재한 지역, 즉 원시공산제 사회도 광범위하게 존재했다.

 

이곳에 당도한 유럽인들은 이 지역 문명과 문화를 정복했다.(앵글로색슨족을 비롯한 유럽인들에 의한 북미 지역 정복에 대해서는 이곳에서는 생략한다.) 겉으로는 기독교 전파를 위해서, 실질적으로는 향료와 금은보화를 얻기 위해서였다. 이 과정은 “정복” “절멸” “식민”이라는 단어로 압축된다. 이것을 실행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콜럼버스(서인도제도), 코르테스(북미 멕시코), 피사로(남미 페루)를 들 수 있다. 이들에 의해 정복된 지도자로는 아스텍의 황제 몬테수마 2세, 잉카의 황제 아타우알파, 쿠바의 타이노 족 추장 하투에이가 있다. 복종하지 않는 자는 무자비하게 불태우거나 베어서 죽이고, 천연두 같은 전염병으로 죽였으며, 살아남은 자는 유럽으로 데려가서 팔았다. 콜럼버스가 정복한 히스파니올라 섬에서는 30만 명의 원주민이 25년 사이에 5백 명으로 줄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절멸”이고, “학살”이고, “인종청소”다.

 

정복자들이 눌러앉거나 그들의 뒤를 이어 유럽인들이 원주민을 지배하기 위해 이 대륙에 들어왔다. “식민”이다. 이들은 원주민을 물건처럼 전리품으로 나눠가졌다. 이를 레파르티멘토(분배)라고 했다. 그리고 글자그대로 노예로 삼았다. 이러한 정복과 학살의 역사는 정복자 종족의 한 가톨릭 사제의 폭로로 세상에 많이 알려졌다. 그가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다. 그의 노력으로 스페인 국왕은 1542년 법으로 원주민의 노예화를 금지했다. 원주민도 사람임을 인정하고 부부와 자식을 떼어서 팔지 못하게 했지만 자유민으로 대접한 것은 아니다.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이 지배하는 엔코미엔다1)에 살며 지배자들에게 공물을 바치고 부역을 하며 노예처럼 부려졌다. 사실상의 노예였다. 이런 가혹한 착취로 인해 원주민의 수가 늘어나지 않자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흑인노예를 사들여서 인력을 보충했다. 이것도 스페인 왕이 내린 처분에 의해서였다. 이것이 서인도제도와 라틴 아메리카에 흑인이 많은 이유다. 이들이 금·은과 함께 사탕이나 담배 같은 유럽에 희소한 물품을 생산해 본국에 보냈다. 이런 노예적 지배에는 정복자들과 함께 가톨릭 사제들이 한몫을 했다. 스페인은 육체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원주민을 지배했다. 이런 노예상태가 18세기 말까지 3백년이나 계속됐다.

 

원주민에 대한 이런 노예제적 지배는 유럽에 부르주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흔들렸다. 이 대륙 사람들에게도 계몽사상이 퍼지고, 18세기 말 미국 독립(1776)과 프랑스혁명(1789)이 알려졌다. 제일 먼저 1791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히스파니올라 섬 산토도밍고의 흑인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독립전쟁 10년 후 독립을 쟁취했다. 아이티다. 그 지도자는 투생 루베르튀르였다. 이런 것들이 스페인 식민지에도 영향을 미쳤다. 현지에 식민으로 와서 사는 스페인 백인(이들을 크리오요2)라 불렀다.)들이 미국인들이 영국에 대해 저항하여 독립했듯이 스페인에 독립하고자 봉기했다. 일부 원주민과 메스티조 및 백인 사제들도 동참했다. 계기는 나폴레옹의 스페인 지배였다. 1810년부터 십수 년 간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고 1820년대에 대부분 독립에 성공했다. 그러나 하나의 나라로 독립하지 못하고 지역별로 여러 작은 나라들로 나누어졌다. 이 독립전쟁의 영웅으로 남미 북부의 볼리바르와 남부의 산 마르틴이 대표적이다.

 

독립으로 이 대륙은 스페인 왕의 지배에서 벗어났으나 피지배자들이 해방된 것은 아니었다. 해방된 것은 백인인 크리오요였다. 그들은 흑인노예 해방을 선언하고 원주민의 신분적 자유를 선언했다. 그러나 선언은 선언일 뿐이고 피지배자들은 여전히 실질적으로 노예상태였다. 엔코미엔다가 아시엔다로 바뀌었을 뿐이다. 엔코미엔다가 원주민의 노동력을 직접 소유했다면 아시엔다는 대토지 소유를 매개로 원주민 노동력을 지배했다. 방법은 채무노예제였다. 17~18세기에 걸쳐 늘어나던 아시엔다는 독립 이후 급격히 늘어났다. 그 소유주들이 크리오요였다. 그들 가운데 독립전쟁에서 지도자가 된 자들을 카우디요(caudillo)라고 불렀다. 독립된 나라의 정치권력은 카우디요들의 것이었다. 정치권력은 한동안 카우디요들이 지역적으로 할거하며 나눠갖다가(caudillismo: 카우딜리스모) 1인 독재정치로 나가다가, 자유당·보수당 양대 정당으로 나뉘어 권력투쟁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민주정치를 한 것은 아니다. 대통령과 고위직은 돈이 많은 자들에게 자격을 제한하고 투표권도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 국한됐다. 이 시기는 이렇게 카우디요, 독재(dictadura), 과두제(oligarquia)의 시대였다. 그러나 진보도 없지 않았다. 19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자유주의가 보수주의를 꺾고 득세했다. 이에 따라 점차 흑인노예제가 폐지되고 그와 병행하여 아시엔다 안에서 원주민의 법적·사회적 지위도 향상되었다. 그러나 쿠바의 경우 1차 독립전쟁을 종전하면서 맺은 산혼조약으로 1878년에 와서야 간신히 노예제가 폐지되었고, 브라질은 더 늦게 1888년에야 노예제가 폐지되었다. 이 세기를 거치면서 이 대륙은 스페인·포르투갈의 지배로부터 영·미국 지배로 넘어갔다. 그리고 유럽 자본주의에 필요한 원료를 생산하는 기지로 재편되었다. 19세기는 자유무역 제국주의 시대였다.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이 지역은 또 한 번 큰 변화를 겪었다. 독점자본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리고 미국이 영국을 제치고 최강의 제국주의 국가로 부상하면서 이 대륙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19세기 중엽(1846~1848)에 전쟁으로 멕시코 땅을 대거 빼앗더니 서부개척이 완료되자 중남미대륙을 침략해 갔다. 19세기 말 미서 전쟁으로 쿠바와 푸에르토리코를 식민지화했다. 중미·카리브 지역 여러 곳에 해병대를 파견해 식민지화하고 청과물 플랜테이션으로 원주민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온두라스와 니카라과에 대한 군사개입이 그런 전형이었다.3) 그리고 남미 지역에도 투자를 늘여갔다. 독점자본 제국주의는 이렇게 이 지역에 자본주의를 이식했다. 그러자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이후 이 대륙에도 노동자·농민들의 혁명운동이 고조됐다. 멕시코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판초 비야와 에밀리아노 사파타가 그 영웅들이다. 멕시코와 쿠바에 공산당이 결성됐다. 멕시코에서는 1917년 인디오 혁명가인 마나벤드라 라사 로이의 주도로 ‘사회주의 노동당’이 결성되었고4), 쿠바에서는 1925년 훌리오 안토니오 메야가 쿠바 공산당 창당을 주도했다. 마리아 떼기가 페루에 사회주의를 전파하여 1928년 페루 사회당을 창당했다. 한편 1930년대 이후 미 제국주의의 침탈과 세계대공황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노동자·농민의 투쟁이 고양되자 민중주의 정권들이 등장했다. 멕시코의 라사로 카르데나스(1930년대 후반), 브라질의 제툴리우 바르가스(1934~1946), 아르헨티나의 도밍고 페론(1940년대) 등이 그들이다.

 

이런 변화는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또 한 번 변화했다. 전후에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이 고양됐다. 그것이 1955년 반둥회의로 모아졌다. 그리고 1959년 쿠바혁명이 일어났다. 이것이 이 대륙에 큰 소용돌이를 가져왔다. 쿠바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으로 발전했다. 미 제국주의는 한편으로는 ‘진보를 위한 동맹’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군사적 지배로 나아갔다. 당근과 채찍이다. 이런 신식민주의로 한동안 친미 군사독재 정권이 이 지역에 발호했다. 20세기 후반기에는 이 두 흐름, 사회주의와 신식민주의 사이의 사활을 건 각축전이 벌어졌다. 민중의 혁명적 투쟁이 폭발적으로 고양됐다. 1961년에 니카라과에서 미국의 앞잡이 소모자 정권에 맞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이 결성됐다. 1964년 아르헨티나에서 호르헤 리카르도 마세티가 게릴라전을 시작했다. 1966년 콜롬비아에서 공산당이 이끄는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이 결성됐다. 이후 민족해방군(ELN)과 ‘M-19’도 결성됐다. 이 조직들의 일부는 지금도 무장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 시기 베네수엘라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이 체 게바라의 ‘포코이론’에 따라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이들은 이후 농촌에서 축출된 농민들과 함께 도시로 옮겨와서 1989년 카라카소 봉기를 일으켰다. 1966년에는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에서 게릴라전을 개시했다. 다른 한편으로 1970년에 칠레에서 합법적으로 사회주의 아옌데정권이 집권하고 사회주의 이행을 시도했으나 미 CIA가 사주한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좌절됐다. 1980년에는 엘살바도르에서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이 결성돼 무장투쟁을 벌였다. 이 시기에 에콰도르에서도 알파로 비베 이 코라호(AVC)가 무장투쟁을 벌였다. 1980년에는 페루에서 마오주의 혁명조직 ‘센데로 루미노소’(빛나는 길)이 게릴라전을 개시했다. 이 시기에 도시지역에서는 ‘투팍아마루 혁명운동’이 게릴라전을 벌였다. 1994년 1월1일에는 멕시코 치아파스 주에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이 봉기했다. 이처럼 이 지역에서는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투쟁이 벌어지지 않은 나라가 없었다. 그 대부분은 무장투쟁이었다. 

 

이 과정에서 1979년 니카라과에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의 혁명이 성공했다 쿠바 혁명 20년 만이었다. 그리고 그 20년 후인 1999년에 베네수엘라에서 볼리바리안 혁명을 표방하는 차베스 정권이 등장했다. 독점자본 제국주의 시대에 라틴 아메리카는 최강 제국주의인 미 제국주의 악독한 지배하에 들어갔으나 피지배 민중은 민족해방과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혁명운동으로 이것을 받아쳤다. 더구나 1999년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 2006년 볼리비아 사회주의운동당(MAS) 모랄레스 정권 등장에서 보듯이 유라시아 대륙에서 소련이 붕괴하면서 혁명운동이 급격하게 퇴조하던 시기에 이 대륙에서는 반제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신을 지켜내면서 오히려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요컨대 라틴아메리카 민중은 계속 전진해 왔다. 독립을 쟁취한 19세기 초반 이후부터 꾸준히, 그리고 특히 1959년 쿠바 혁명이 성공한 이후인 20세기 후반기에, 그리고 21세기 초에도.

 

3. 전진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현재)

 

<좌파 정권의 확산: 핑크 타이드>

 

2022년 하반기에 이 말이 널리 쓰였다. 작년 8월 필자는 ‘중남미 ‘핑크 타이드’의 빛과 그늘‘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라틴아메리카에 제2차 핑크 타이드가 물결치고 있다. 2018년 12월 멕시코에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줄여서 암로)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중남미 주요국 가운데 10여개 국에서 좌파가 집권했다. 종래에 사회주의 세력이 집권해 온 쿠바, 니카라과, 베네수엘라에, 볼리비아5)에 더하여 남미의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콜롬비아, 중미의 온두라스에서 좌파세력이 집권했다. 숫자로 10여개 국가이지만 인구 규모가 큰 나라들 대부분에서 좌파(앞의 네 나라를 제외한 나라들은 사실은 중도좌파다)가 집권한 것이다.

 

남미를 보면, 아르헨티나에서 2019년 12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정부가 집권했다. 페론주의 정당인 정의당 후보였다. 이것은 좌파 12년(네스토르 키르치네르 4년, 그의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8년) 우파 4년 후 좌파의 재집권이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는 현 정부의 부통령이다. 페루에서는 2021년 7월 페드로 카스티요 정부가 들어섰다. 그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인 자유페루당(Peru Libre) 후보이며 원주민 빈농 출신에 교사노조 투쟁을 이끈 인물이었다. 그는 인디오로서는 이 나라에서 두 번째 대통령이다. 그는 당선이 확정되자 “이 나라를 정의롭고 자주적인 나라로 만들려는 노력에 함께 참여해 달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칠레에서는 2019년 10월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의 성과로 2021년 5월 제헌의회 선거가 치러지고 그해 7월 잉카제국의 지배종족인 마푸체족 여성 엘리사 롱콘을 의장으로 선출하여 제헌의회가 출범한 가운데, 대선에서 이 항쟁을 주도한 세력의 대표자로 가브리엘 보리치 후보가 2022년 3월 집권했다. 또 2022년 8월에는 오랫동안 우파가 통치해온, 좌파가 한 번도 집권한 적이 없는 콜롬비아에서 M-19 게릴라 출신 좌파 정치인 구스타보 페트로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리고 2023년 초 브라질에서 노동자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이하 룰라)가 재집권했다. 그는 브라질 노동자당 후보로 2003년, 2007년 집권했고, 그의 후계자로 지우마 호세프가 2011년, 2015년 연임했으나, 2016년 8월 31일 부패혐의로 탄핵됐었다. 이어 룰라도 2016년 3월 부패혐의로 구속됐다가 2019년 11월 연방대법원 판결로 석방되고, 최종적으로 2021년 3월 연방대대법원의 실형무효 판결을 받았다. 이렇게 남미 경제규모 상위 국가들에서 일제히 좌파정부가 들어섰다. 남미 12개국 가운데 우루과이, 파라과이와 에콰도르 세 나라를 제하고 아홉 나라에 좌파 정부가 집권했다. 영국 식민지를 거친 가이아나와 네덜란드 식민지를 거친 수리남은 인구 백만 명 이하의 소국인데, 전통적으로 좌파적이다. 남미에는 확실히 핑크 타이드가 거세게 물결치고 있다.

 

한편 2022년 1월 중미 온두라스에서 좌파 시오마라 카스트로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2021년 12월 치러진 대선에서 마누엘 셀라야(2005년 대통령 취임 이후 친 쿠바 국제연대기구 ALBA에 참여했다. 그 보복으로 2009년 6월 미국이 조종한 쿠데타로 축출된 바 있다.) 전 대통령의 부인인 자유재건당의 시오마라 카스트로 후보가 여당 후보를 크게 앞서면서 승리했다. 카스트로는 대선 과정에서 공약한 대로 2023년 3월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했다. 그리고 6월 10일 국빈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하였다. 현재 중남미 제2차 핑크 타이드 물결에 힘입어 시오마라 카스트로 정부 역시 좌경화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니카라과, 쿠바 등과 밀월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을 인정하고, 니카라과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과는 대통령 가족의 사적 친분이 있으며, 중남미 사회주의 진영의 모임인 ALBA가 수행했던 쿠바 인력 제공 프로그램을 도입하고자 시도 중이다. (이 글이 작성된 이후인 지난 8월 중미의 과테말라에서 ‘풀뿌리운동’ 소속 베르나르도 아레발로 후보가 압도적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의 부친은1944년 과테말라 혁명 이후 ‘첫 민선 대통령’으로 1945~51년간 재임한 후안 호세 아레발로 베르메호다. 그는 ‘과테말라 민주화의 봄’을 개시한 지도자였으나 1954년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로 국외로 망명했다. 그도 우루과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는 부친에 이어 부자가 대통령에 당선된 케이스다. 그는 아버지의 유산을 잇겠다며 진보적 정치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갖겠다고 공약했다. 이렇게 중미 지역에도 핑크 타이드가 물결치고 있다.)

 

카리브 해 지역에는 13개 나라가 중남미·카리브 국가공동체에 참가하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 몇몇은 쿠바와 베네수엘라가 주도하는 ‘우리 아메리카를 위한 볼리바리안 동맹’(ALBA)에 가담하고 있다. 안티구아 바부다, 도미니카 연방, 그레나다, 세인트 키츠네비스, 세인트 루시아,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등 6개국이다. 그 가운데 한 나라인 세인트 루시아에서 2021년 좌파정부가 들어섰다. 이것도 핑크 타이드의 하나라고 봐야 할 것이다.

 

2023년에 들어 핑크 타이드는 일진일퇴 양상을 보이고 있다. 페루에서는 작년 말 의회 쿠데타가 일어나 카스티요 대통령이 축출되고 볼루아르테 정권이 들어섰다. 이 쿠데타에 저항하는 민중투쟁이 전개돼 60여 명이 사망했다. 저항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달 3차 수도로의 행진이 조직되었다.) 그러나 볼루아르테 정권은 조속한 총선에 동의하지 않고 현상유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볼루아르테는 연내에 총선을 하자는 생각이지만 보수파가 장악하고 있는 의회는 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지금 선거를 하면 보수파의 패배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는 남미국가들의 정상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보수파가 지배하는 의회가 그의 이 정상회의 참가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70년간 우파의 텃밭이었던 파라과이에도 지난 4월30일 치러진 대선에서 친중 노선을 표방한 좌파 후보가 승리할 듯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파라과이는 남미 대륙의 유일한 대만 수교국으로 남게 됐다. 이 나라에 우파의 기반이 탄탄함이 확인됐다. 반면, 에콰도르에서는 현 우파정권이 지도력을 상실하여 조기 대선과 총선을 치르기로 되었다. 8월 선거가 예정되어 있는데, 코레아 전 대통령(그는 경제학자 출신이지만 ALBA에 참가했다.)을 계승하는 정당이 승리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러면 에콰도르에도 좌파정권이 집권하게 된다.(에콰도르에서는 8월 치러진 대통령 보궐선거에서 코레아 전 대통령을 계승하는 ‘시민혁명운동’ 소속 루이사 곤살레스 후보(여성이다)가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재벌 2세 국회의원 다니엘 노보아 후보다. 10월에 결선투표가 이루어진다. 현재의 추세대로 라면 루이사 곤살레스의 당선이 유력하다) 온두라스의 이웃 과테말라에서도 6월 25일 대선에서 산드라 토레스 후보가 1위를 차지해 8을 최종결선을 치를 예정이다. 그는 보 알바로 콜롬 전 대통령의 전 부인으로 중도좌파 성향이다. 그는 2019년과 2015년에도 출마했으나 결선투표에서 패배했다. 만약 이번에 그녀가 승리하여 과테말라에서 좌파 정권이 들어선다면 남미에 이어 중미에까지 핑크 타이드가 확산되는 셈이다.(앞에서 얘기했듯이 결선투표에서 그녀보다 더 진보적인 베르나르도 아레발로 후보가 당선됐다.) 과테말라는 1954년 미국이 주도한 쿠데타로 민족민주적인 변혁을 추진하던 하코보 아르벤스 구스만 정권이 전복된 바 있다. 그는 장군 출신이었지만 진보적이었다. 체 게바라라도 이 혁명에 참가했다가 쿠데타가 일어나자 멕시코로 피신했다.

 

<남미국가연합을 향한 도전>

 

지난 5월 30일 남미 11개국 정상이 브라질에 모여서 회합을 했다.(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에콰도르, 가이아나, 파라과이, 수리남,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11개국. 페루6)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의회의 허가 없이 출국할 수 없는 규정 때문에 불참했다.) 그 동안 미국에 의해 국제적으로 고립 당했던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도 참석했다. 룰라 브라질 대통령이 주도한 이 회의에서 정상들은 남미 공동통화 창설과 국가통합을 추진하기로 했다.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개회사에서 “우리는 이념이 우리를 분열시키고 통합노력을 방해하도록 내버려 뒀다” “그간 우리는 대화와 협력의 메커니즘을 포기했고, 그것으로 우리는 모두 패배한 것과 다름없다” “어떤 나라도 현재의 다양한 위협에 홀로 맞설 수는 없을 것”이라며 “우리가 함께 행동해야만 극복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지난 실패를 교훈으로 진영논리를 배제하고 단결하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서지 않고 독자의 길을 가자고 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주최국인 브라질은 이번 정상회의가 남미협력 의제를 재활성화 하는 데 초점이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개최국 정상인 룰라 대통령은 “지역 외 통화에 대한 의존을 줄이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달러 대신 지역 공동화폐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취임 전 ‘수르’(스페인어로 남쪽 이라는 뜻)라는 구체적인 화폐명칭 구상까지 밝혔던 바가 있다. 그는 또 개발은행7)을 통한 남미 내 저축 서비스 구상, 남미 보건연구소 강화, 학생·교수의 자유로운 이동 프로그램 등 10가지 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취임 전부터 강조했던 남미국가연합(UNASUR) 재건 노력을 강조했다. 남미 국가연합은 2008년 룰라 2기 정부 당시 브라질리아에서의 합의에 따라 남미 12개국 참여로 창설되었으나 미국의 방해로 간판만 남아 있는 상태다. 한편 룰라 대통령은 정상회의 하루 전인 5월 29일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과 단독 정상회담을 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지난 1월 취임 직후 베네수엘라와의 외교관계를 복원했다. 전임 자이르 보우소나루 정권은 베네수엘라 사회주의 정권과의 외교관계를 차단했었다. 룰라가 이렇게 마두로 대통령을 특별대우 한 것은 미국의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제가 부당한 탄압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동시에 자신이 고 차베스 대통령과 함께 추진했던 남미국가연합을 재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파 우루과이 대통령은 마두로 대통령의 정상회담 참가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현했고, 특히 칠레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에 대한 룰라의 접근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며 비판해서 눈길을 끌었다. 그의 정치적 정체성을 엿보게 하는 장면이다.

 

남미국가연합의 구성과 설립경위는 다음과 같다.

 

<구성>

회원국: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칠레, 가이아나, 수리만

옵저버: 멕시코, 파나마

 

<설립경위>

 

2004. 12 남아메리카 12개국 대표들이 페루 쿠스코에서 모인 제3차 남아메리카 정상 회의에서 남미 정상들은 쿠스코 선언문을 채택하고 남미국가연합(UNASUR)의 전신인 남미국가공동체(CSN)을 창설

2007. 4 제1차 남미 에너지정상회의 시, 남미국가공동체를 남미국가연합으로 대체하기로 합의

2008 .5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정상 회의를 통해 남미국가연합 기본헌장(창설 조약))에 서명함으로써 출범을 선언

2011. 3. 출범 규정에 따라 12개국 중 9개국이 이 헌장에 비준함으로써 2011년 3월 11일 남미 국가연합기본헌장이 발표되면서 남미국가연합이 국제기구로 공식 출범.

 

<리마그룹 해체와 미 제국주의의 고립>

 

이렇게 이 대륙에서 자주와 진보의 물결이 고조되자 미국은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2022년 6월초 LA에서 열린 미주정상회의에 미국이 니카라과, 쿠바, 베네수엘라를 초청하지 않았다. (이 나라들은 미 안보보좌관 볼튼이 ‘폭정의 트로이카’라고 낙인찍은 나라들이다./옮긴이) 그러자 멕시코, 볼리비아 등이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핑크 타이드 간의 연대가 강조되는 모양새다.”8) 이런 미 제국주의의 사회주의 세력 고립화 기도에도 불구하고 미 제국주의는 오히려 고립되고 있다. 미국은 1차 핑크 타이드가 퇴조하는 시기에 그 화근을 제거하고자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을 무너뜨려 했고, 이를 위해 리마그룹을 만들어서 노골적으로 개입했었다. 리마그룹은 베네수엘라를 중심으로 단결하고 있는 남미국가연합을 무너뜨리려는 것이기도 했다. “2017년 8월에 베네수엘라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리마 그룹(Lima Group)을 결성한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콜롬비아, 파라과이, 페루 6개국 대표들이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가 독재와 비슷한 권위주의 정치를 통해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남미 국가 연합은 위기를 맞게 된다. 2018년 4월 20일에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콜롬비아, 파라과이, 페루 6개국이 남미 국가 연합 회원국 활동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2018년 8월 28일에는 콜롬비아가 남미 국가 연합을 탈퇴했고 2019년 3월 13일에는 에콰도르가 남미 국가 연합을 탈퇴했다. 2020년 3월 10일에는 우루과이가 남미 국가 연합을 탈퇴했다.”

 

“리마그룹은 트럼프 정권 시절인 2017년 베네수엘라 문제에 개입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기구다. 주로 우파 정권이 들어선 국가들이 참여하였고, 핑크 타이드로 대변되던 좌파정권들이 하나 둘 무너지던 상황이었다. 우경화돼 가는 남미에서는 리마 그룹을 중심으로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2019년 초 베네수엘라에 ‘두 대통령 사태’에서 정점을 찍었다. 리마그룹은 2019년 마두로 정권의 퇴진과 자유롭고 공정한 총선을 요구하면서 베네수엘라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이 미국의 쿠데타 기도를 물리치고, 또 2020년부터 2차 핑크 타이드가 시작되자 “리마그룹은 그 영향력이 빠르게 축소됐다. 2021년 8월부터 베네수엘라 여야 간 협상이 노르웨이 중재로 멕시코에서 재개되면서 베네수엘라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마저 흔들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2차 핑크 타이드가 시작되자 “2021년 3월 아르헨티나 정부는 성명을 통해 베네수엘라에 대한 고립정책을 주도하는 리마그룹에 탈퇴한다고 밝혔다.” 이 성명은 “리마 그룹이 베네수엘라를 고립시키기 위해서 국제적 수준에서 추진한 행동은 아무 성과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카스티요가 이끄는 페루 신정부는 2021년 8월 7일 리마그룹 탈퇴를 선언했다.” “작은 섬나라 세인트 루이스 또한 좌파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서 리마그룹 탈퇴를 선언했다. ... 신 정부 외무부 장관 알바 밥티스트는 그의 첫 번째 업무는 리마그룹을 탈퇴하고 베네수엘라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리마그룹을 몽구스9) 갱단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상이 그간의 전개이다.

 

4. 라틴 아메리카 핑크 타이드의 미래: 전진은 계속될 것이다. 

 

<국제적 측면>

 

요즘 미·서구 제국주의 패권에 대하여 다극 질서로 가야한다는 주장이 국제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 제안에 다수의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제국주의와 강대국들에 의한 질서이다. 이에 비해 대륙 차원에서 모든 국가가 연합·단결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다극화로 가는 길이다. 브릭스처럼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 가운데 힘센 나라들이 결집하는 것은 제국주의·자본주의 패권쟁탈전을 격화시키고 그 구조를 고착시킬 뿐 패권이 사라지게 하지 못한다.10) 이에 비해 대륙 단위로 모든 나라들이 단결하여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패권을 사라지게 하고 궁극적으로 제국주의를 사라지게 하는 길이다. 이 길은 베네수엘라의 고 차베스 대통령이 추진하다가 의문의 죽음에 이르게 한 길이며, 또 아프리카연합을 강화하여 아프리카 대륙 차원에서 서구 제국주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리비아 카다피 대통령이 추구했던 길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미·서구 제국주의의 공작에 의해 살해되었다.

 

남미 국가연합은 그동안 유명부실화 돼 있었다. 미 제국주의는 이것을 깨뜨리고자 그 중심에 있던 베네수엘라 사회주의 정권과 차베스 대통령을 집요하게 공략했다. 차베스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후에도 마두로 정권을 심하게 흔들었다. 꼭두각시 과이도를 임시대통령으로 내세워 군사쿠데타를 기도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미 부통령 펜스와 볼튼 국가안보 보좌관이 직접 나서서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또 이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리고 베네수엘라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미국은 남미국가연합을 무력화시키고 그 대신 리마그룹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이런 지점을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 이번에는 남미국가연합을 형식적인 연합을 넘어서 실질적인 정치경제연합으로 발전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실질적 국가연합을 만드는 데는 좌우 정치성향의 차이가 존재하므로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이루어내지 않고는 중남미 각국은 민족적 자주를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브라질 같은 강대국조차도. 요컨대 중남미대륙에서 민족적 자주는 중남미 대륙 차원에서, 일차적으로는 남미 차원에서, 그리고 나아가서는 중남미·카리브 전체 차원에서, 국가연합이 이뤄짐으로써 실현될 수 있다. 일국적으로는 미 제국주의에 의한 종속으로부터 벗어나기도 극히 어렵고, 벗어나더라도 경제적·정치적·군사적 압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므로 대륙 차원의 국가연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우파정권이 집권하는 나라들에서 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정권, 즉 좌파정권이 집권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룰라가 아무리 진영논리를 배격하여 단결하자고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남미대륙에만 국한하더라도 지금도 우루과이와 파라과이에는 우파정권이 집권하고 있다. 페루에는 쿠데타로 좌파 카스티요 정권이 무너지고 배반자 볼루아르테를 앞세운 친미 우피가 집권하고 있다. 에콰도르에도 아직 좌파정권이 집권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나라들에서 좌파가 집권해야만 남미 차원의 국가연합 재건도 본격화될 수 있다. 미 제국주의에 맞서는 자주는 각 나라 안에서의 사회진보를 통해서, 그리고 대륙적인 국가연합을 통해서, 실현될 것이다.     
 

<국내적 측면>

 

이 나라들에서 좌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중도좌파 정권이 대거 집권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나라들에서도 우리나라에서와 비슷하게 좌쪽이 집권해서 실망하면 우쪽이 집권하고, 우쪽이 집권해서 잘못하면 좌쪽이 집권하는 식으로 바람이 이쪽으로 불다가 저쪽으로 불다가 하는 듯하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1차 핑크 타이드가 썰물처럼 빠지고 우파가 선거에서 휩쓸었는데, 특별한 이유 없이 좌파가 다시 선거에서 휩쓸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좌파가 득세하는 데 특별하게 유리한 동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국내적으로 계급투쟁이 특별히 고양된 동향도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이 2차 핑크 타이드가 유지되고 발전하려면 좌파 안에서 종래의 한계를 극복한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전세는 또다시 역전될 수 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다분하다. 예를 들어서 브라질의 경우 지난 좌파정부 시기에 중도우파 브라질민주운동당(PMDB)과 연립해서 집권하고 노동자당 자신이 체제내화 하여 부패에 물들었다. 이것을 우파 쪽에서 파고들어서 연정이 깨지고,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되고, 룰라 전 대통령이 구속됐다. 아르헨티나에서도 3번에 걸쳐 부부가 집권한 키르치네르 정권이 구조적·정세적 요구에 부합하지 못했다. 한 번은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두 번은 부인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대통령이 12년 연임을 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는 현 정부의 부통령이기도 하다. 12년의 키르치네르 정권은 급진적 페론주의 정책을 펴서 퍼주기 정책을 펼 뿐 이 나라 경제의 생산관계를 변화시키고 그것을 통해 생산력을 제고시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페론주의 식의 포퓰리즘 정치를 폈던 것이다. 이런 포퓰리즘은 자원가격이 높을 때는 유효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무력하다. 또 키르치네르 정권은 낡은 연방주의 정치체제도 고치지 않았다. 이 체제는 과두세력을 유지시키는 것이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부통령은 부패혐의로 법원에서 6년형을 선고받았으며, 암살직전의 상황까지 겪었다. 이런 여러 지점들이 극복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가?

 

그 다음으로는 좌파가 집권한 나라들에서 좌파의 집권이 불가역적으로 되어야 한다. 좌파가 국내정치에서 실패하여 다시 우파 정권들이 들어서면 핑크 타이드는 도로아미타불이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중도좌파정권은 불가역적으로 될 수 있는가?

 

브라질의 노동자당 정부(룰라와 지우마 대통령 포함 13년)나 아르헨티나의 키르치네르(네스토르와 크리스티나 포함 12년) 정부는 반면교사다. 지금 룰라는 다시 대통령이 되어 있고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는 지금 부통령이 되어 있다.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둘 다 기존의 정치체제 안에서 집권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득을 지원하는 정책에 머물렀다. 이것은 기득권층에게는 큰 반감을 사면서 구조적으로는 노동자·민중을 좌파의 지지층으로는 만들었다. 그러나 노동자·민중을 변화의 주체로 세워내지 못했다. 아니, 그렇게 되지 못하게 했다. 그 결과 일차산품 붐이 사라지고 지배세력의 공격이 가해지자 무너졌다. 이는, 이 시기 미 제국주의와 우파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이 그들의 공격을 버텨낸 것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또 미 제국주의 및 그들과 결탁된 우파의 쿠데타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통해 다시 사회주의운동당이 권력을 되찾은 볼리비아와도 대비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좌파정권이 집권하는 과정에 가열찬 대중투쟁이 있었다는 것과 집권 후에 제헌의회를 소집하여 헌법을 새로 제정함으로써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체제를 일정하게 변혁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런 과정이 없이 기존 정치체제 안에서 정권만 교체하고 그 다음 퍼주기 포퓰리즘으로 정권유지를 꾀하는 것은 실패를 되풀이 하는 지름길이다. 대륙 차원의 국가연합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각 나라의 정치·경제 체제가 문제인 것이다.

 

이와 관련 국내 차원에서도 1차 핑크 타이드 때와는 다른 모습이 보이고는 있다. “경제, 사회적 부문에서도 1차와 다르게 2차는 산업구조 개편과 빈곤층 교육기획 확대와 녹색성장 등 국가의 기반을 다지려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1차의 한계점이 자원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해 결국 중남미가 가지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에 타산지석을 삼아 2차는 산업구조 다변화와 녹색성장을 위시한 신성장 전략과 빈곤층의 교육기회 확대로 중남미의 근본적 사회구조를 바꾸려고 하는 점에서 1차와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페루에서는 의회쿠데타로 민선 카스티요 정부가 정권을 찬탈당하고 있는데, 민중의 끈질긴 투쟁이 요구된다. 카스티요는 현행 정치체제에서 선거로 집권했지만 바로 위에 말한 대로 기존 의회를 해산하고 제헌의회를 소집하려다가 쿠데타를 맞이했던 것이다. 칠레의 경우도 비슷한데, 기존 체제에서 당선된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은 세계 최연소 대통령으로 각광을 받았으나 제헌의회에서 채택한 헌법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돼 힘을 잃고 있다. 그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를 뒷전으로 하고 신좌파적인 소수자 문제에 역점을 두다가 민심을 잃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다시 제헌의회를 소집할 수 있지만 이 지점이 고쳐지지 않으면 잃어버린 30년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런 지점은 멕시코에서부터 중미의 온두라스, 남미의 콜롬비아 같이 처음으로 좌파가 집권한 나라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요컨대 정치 체제 변화가 없는 좌파는 사회변혁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사회변혁 없는 좌파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1차 핑크 타이드 실패를 쓰라린 교훈으로 삼아 이번에는 진정한 사회진보를 통해 진정한 민족자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5. 전진의 미래: 자본주의·제국주의의 쇠퇴와 사멸 

 

인류 역사는 진보한다. 자본주의가 하나의 역사적 생산양식인 이상 그것은 필연적으로 언젠가는 그 수명을 다하고 더욱 고도로 발전한 다른 생산양식에 의해 교체된다. 자본주의는 지금, 특히 선진자본주의는 쇠퇴하는 모습을 뚜렷하게 보이고 있다. 자본주의 고유한 법칙인 이윤율 저하경향 법칙이 작동하여 이윤율이 감소함에 따라 생산시설을 임금이 싼 후발 자본주의 나라들로 이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세계화인데, 이는 자본주의의 확대이기보다 공간이전이다. 그 결과 이 나라들의 경제는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었다. 미국이 조금 상태가 나으나 미국의 경제성장도 주로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업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자본주의는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고자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 왔는데, 이것은 노동자의 삶의 질을 저하시켰다. 일자리는 줄고 일자리의 질은 나빠지고 ... 그러자 이 나라의 노동자들은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 최근 <이코노미스트>지는 부유한 나라들에서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렇게 생산가능인구가 줄면 자본에게는 투자할 기회가 줄어든다. 인구가 늘어나야 새로운 도시도 만들고, 새로운 주택도 짓고, 학교도 짓고 병원도 짓고 할 텐데 말이다. 이것이 제로성장 시대를 열고 있다. 이렇게 하여 선진자본주의 권역에 관한 한 자본주의는 누구의 눈에도 쇠퇴하고 있다. 그리고 쇠퇴의 끝은 사멸이다.  

 

선진자본주의 권역에서 자본주의가 쇠퇴하면 이들의 제국주의 지배력 또한 쇠퇴한다. 더구나 후발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이들의 패권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패권적 지위는 더욱 불안하다. 이 위기를 타개하고자 그들은 후발 자본주의 강대국 즉 신흥 제국주의 세력과 패권쟁탈전을 촉발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세계대전을 불사하려 하고 있다. 패권 제국주의의 이런 야만을 인류가 묵묵히 받아들일 리가 없다. 패권 제국주의 즉 미·서구 제국주의는 더 이상 정당성을 주장하기 어렵게 되어 가고 있다. 자본주의가 사멸하기 전에 미·서구 제국주의의 패권이 무너지고 있다. 최근 미국의 중국에 대한 유화적 태도를 보라! 대세는 이미 기울어져 있다.

 

이런 서구 제국주의의 쇠퇴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이 라틴아메리카다. 이 대륙에서 핑크 타이드로 미 제국주의의 지배력은 급속하게 쇠퇴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최근 원주민 인디오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점이다. 이것은 제국주의의 야만뿐만이 아니라 국내 자본주의의 야만, 그리고 나아가 서구문명의 야만을 고발하는 움직임이다. 그러므로 이 움직임은 아주 근본적이다. 미 제국주의에 대해서 뿐 아니라 자본주의에 대해서 그리고 서구문명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한다. 에콰도르,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칠레의 정치는 이 지점을 보여준다. 서구문명이 인류를 문명화한다며 벌인 5백년의 야만의 역사가 심판을 받고 저물고 있다. 세계사가 다시 쓰이려 하고 있다.

 

다른 한편 이 대륙에는 사회주의 정권이 다수 존재하고 또 늘어나고 있다. 쿠바가 그 선두에 서 있다면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볼리비아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서구 좌파는 혁명성을 상실했다. 그 영향을 많이 받는 아시아 좌파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대륙에는 혁명의 전통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 미국이 ‘폭정의 트로이카’라고 악명을 붙인 쿠바, 니카라과, 베네수엘라가 그들이다. 이 나라 혁명운동이 전 대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대륙 사람들은 거의 다 스페인어를 쓰고(브라질만 포르투갈어를 쓰지만 언어적으로 상당히 가깝다.) 또 대부분 가톨릭교를 믿고 있다. 그러므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가 쉽다. 이런 점에서도 이 대륙은 혁명이 확산될 가능성이 가장 많은 곳이다. 민족자주든 사회주의든 혁명의 용광로를 거치지 않고는 실현될 수 없다.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은 말할 것도 없고 현 단계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은 노동자와 근로민중이 주도하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 신식민주의 하에서 부르주아들은 더 이상 혁명적이지 않다. 그리고 노동자와 근로민중이 동맹을 맺어 추진하는 혁명은 민주주의 혁명과 민족해방 혁명을 거쳐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는 것이 합법칙적이다. 그 연속혁명들은 사회주의운동이 헤게모니를 갖는다. 이런 점에서 라틴아메리카는 현 시기 세계혁명의 진앙지가 되고 있다. 그 혁명은 아주 근본적일 것이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와 착취에 대한 완전한 폐지를 지향하는 세계사적 혁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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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엔코미엔다(스페인어: Encomienda)는 스페인령 식민지에서 실시된 식민지 통치제도로, 스페인은 자국 출신의 식민 통치자에게 원주민 보호를 조건으로 하여 식민지의 토지와 원주민에 대한 통치권 일체를 위탁하였다. 1503년에 제정된 이 제도의 목적은 아메리칸 인디언의 지위를 규정하여 신대륙 발견직후에 행해진 강제 노역의 악습을 줄이려는 데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디언을 노예화하는 제도로 악용되었다. 원주민들을 해적이나 적대관계에 있는 부족으로부터 보호하는 대신에 그들에게 조공과 노동을 요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원주민들은 이 제도로 인해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원주민을 보호하고 개종시킨 후 종교적으로 교육시킬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종교적 교화를 통한 영혼의 구제와 보호라는 명분을 제공했을 뿐이었고, 실질적으로 이 제도는 노동력 착취를 위한 노예제의 또 다른 형태였다. 스페인 군주나 교회는 이 제도를 크게 반기지는 않았는데, 봉건적 구조로 발전하여 세습이 이루어지는 것을 꺼렸으며, 가혹한 노동착취가 가톨릭 윤리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는 1542년에 엔코미엔다를 폐지하고 신법(新法)을 공포하여 원주민의 노예화와 강제노역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식민 통치 기간 내내 이 제도는 지속되었으며, 18세기 이후에 대토지 소유 제도인 아시엔다가 나타나면서 점차 소멸되었다. <위키백과>에서 옮김.

 

2) 라틴아메리카 현지에서 태어난 스페인 사람을 말한다. 이들과 인디오의 혼혈은 메스티소, 이들과 흑인의 혼혈은 물라토, 흑인과 인디오의 혼혈은 삼보라고 불렀다. 흑인은 아프리카에서 ‘사냥’되어 노예로 팔려온 사람들이다.

 

3) 「잘 나가던 미국 장군의 고백 “전쟁은 사기다. ‘전쟁국가 미국’ <1> 스메들리 버틀러 장군의 통렬한 전쟁 고발”」, 프레시안, “‘바나나 전쟁’이란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승리 이후 중미 및 카리브 해 국가들(파나마, 온두라스, 니카라과, 멕시코, 아이티, 도미니카공화국 등)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을 말한다. ‘바나나전쟁’이란 말은 이 지역 국가들이 바나나나 키우는 미개한 국가라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다. 군사개입은 미국 대기업 및 금융기관들의 진출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 대부분 미국 해병대가 수행했으며 때로는 해군이 함포사격으로 지원을 하고 육군 병력이 투입되기도 했다. 바로 함포외교였다. 군사개입 사태가 너무도 많아 미군은 1921년 <작은 전쟁의 전략과 전술>이라는 매뉴얼을 펴내기도 했다.  ... 그는 1935년 잡지 <커먼 센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자신의 군 생활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나는 현역군인으로 33년 4개월을 복무했으며 그 대부분을 대기업과 월가, 은행가들을 위한 고급조폭(a high class muscle man)으로 일했다. 한 마디로 나는 자본주의를 위한 사기꾼, 조폭이었다. 1914년 나는 멕시코, 특히 탐피코를 미국 석유업계가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아이티와 쿠바를 내셔널시티뱅크가 돈을 긁어모으기에 적당한 장소로 변모시키는 것을 도왔다. 월가의 이익을 위해 중미 6개 국가를 침탈하는 것을 도왔고, 1902~1912년에는 브라운브라더스국제은행을 위해니카라과 소탕을 도왔다. 1916년 미국 설탕업계가 도미니카공화국에 진출하는 것을 도왔으며, 1903년에는 온두라스를 미국 과일 기업들이 활동하기에 적당한 곳으로 만들어 주었다. 1927년에는 스탠더드오일이 아무런 방해 없이 중국에서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알 카포네에게 한마디 조언을 해 줄 것을,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기껏해야 시카고의 3개 구역에서 사기행각을 벌였지만 나는 세 대륙에 걸쳐 그 짓을 했으니 말이다.’”

 

4) 이 당은 1919년에 이름을 ‘멕시코 공산당’으로 바꾸었다.

 

5) 볼리비아에서는 2019년 대선에서 에보 모랄레스 현 대통령이 당선되었으나, 미국이 관장한 미주기구가 개입하여 부정선거로 규정하고 이에 군과 경찰이 동조하는 형태로 쿠데타가 일어나 그가 대통령 직에서 축출되었다. 그 후 법원에서 임시대통령이 지명되었으나 의회의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민중의 끈질긴 저항으로 2020년 10월 선거가 다시 치뤄져서 사회주의운동당의 루이스 아르셰 후보가 승리하여 사회주의 세력이 재집권했다. 이로써 미 제국주의 및 그와 결탁한 국내 지배세력의 쿠데타는 1년 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6) 페루에서는 근년에 여러 명의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 가운데 내란혐의로 탄핵된 카스티요와 함께 쿠진스키와 비스카라는 부패혐의로 의회에서 탄핵되거나 탄핵위기에 몰려 사임했다. 또 알란 가르시아 전 대통령은 부패혐의로 추적당하다가 자살했고, 인디오 출신 톨레도 전 대통령 또한 부패혐의로 수배되어 미국에서 송환돼 구속됐다. 또 독재자 후지모리는 인권유린을 비롯한 각종 범죄 혐의로 구속돼 있다.

 

7) 남미국가연합이 작동하던 당시 남미개발은행이 건설됐다. 이름은 Banco der Sur였다. 남미은행에 관해서는 외교부 홈페이지 ‘외교정책’ 중남미협력과, 자료를 참조하시오. 제목: 남미은행, 작성일: 2016-09-28 21:08:00

 

1. 설립 경위

 

ㅇ 90년대부터 중남미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발이 확산되는 한편, 좌파정권의 득세와 함께 역내 경제통합 움직임이 가시화

 

ㅇ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IMF나 세계은행 등 미국주도의 금융질서에 반대, 남미 지역만의 금융기구 필요성을 주장하며 남미은행 설립 제안

 

※ 설립연혁

- 2004.8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 지역은행 창설 제안

- 2007.2 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 정상회담에서 남미은행 추진 합의

- 2007.4.16 남미국가공동체 에너지 정상회담에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남미 은행 창설 제의, 공식 의제화- 2007.5.22 메르코수르 회원국 외교·경제장관 회담에서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볼리비아, 파라과이에 이어 브라질이 참여의사 확정

- 2007.6.11 남미은행 창설관련 실무회의 개최. 남미은행의 설립목적, 기능 및 조직, 운영 방안, 출자금 출연 방식 등 협의

- 2007.12.9 아르헨티나 Cristina Kirchner 대통령 취임식 계기 남미은행 창설문서 (Acta fundacional)에 서명

- 2009.5.8 남미 7개국 경제장관들이 아르헨티나에서 남미은행 운영을 위한 협정에 최종 합의

 

* 초기 출연금으로 아르헨티나, 브라질, 베네수엘라가 각각 20억 달러를 출연하고 우루과이, 에콰도르가 각각 4억 달러, 볼리비아, 파라과이가 각각 2억 달러를 출연하기로 합의

- 2009.9.26 남미은행 회원국 정상, 은행설립 협정 서명

- 2012.3.3 남미은행 설립협정 발효

- 2013.6.12 남미은행 회원국 재정장관 회담

- 2016.12.27. 공식 출범

 

2. 설립 목적 및 기능

 

ㅇ IMF를 대체하는 남미지역 금융기구

ㅇ 회원국의 경제 및 사회개발 지원

ㅇ 회원국 간 역내 통합 강화 및 불균형 해소(균등한 투자)

ㅇ UNASUR 내 인프라 확충 및 에너지 개발사업 지원

ㅇ 회원국 경제위기시 금융지원 및 거시경제 안정 도모

 

3. 회원국 현황(총 7개국)

 

ㅇ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브라질, 에콰도르, 볼리비아, 파라과이, 우루과이.(이하 생략)

 

8) 이하 따옴표로 인용한 글들은 <나무위키>에서 옮긴 것임.

 

9) 고양이 족제비

 

10) 지난 8월 24일 남아공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내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이란, 이집트, 에티오피아 등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5개국과 아르헨티나가 가입히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미 제국주의의 유일패권에 부정적 작용을 하겠지만 사태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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